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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등록금 폭탄, '기여 입학제'를 제안한다

바야흐로 등록금 천 만원 시대로 접어들었다. 일부 사립대는 이미 몇 년 전에 천 만원을 훌쩍 넘어선지 오래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물가상승률은 2.5%에 그쳤는데 대학 등록금 인상률은 6.6%로 치솟았다. 2007년 3/4분기 통계청이 발표한 전국 가구의 월평균 소득이 328만 2천원인 것과 비교할 때, 세 달 치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등록금 조달이 가능하다.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대부분 금융권을 통하여 등록금을 조달한다. 대출이 늘어날수록 가계(家計)는 부실해지고 노후 대비는 꿈도 못꾼다. 그러니 학부모들의 등골은 휘다못해 부러질 지경이다. 주변을 보면 등록금 폭탄이 두려워 자식을 유학 보내겠다는 부모들도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나고 있다. 명문 대학을 보내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교육 여건이 우수하고 학비가 저렴한 외국 대학으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학이 등록금을 인하하거나 동결할 수도 없는 처지다. 교육활동의 대부분을 등록금으로 충당하는 대학으로서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투자를 미룰 수 없다. 정부 지원도 한계가 있고, 이마저도 사립대학은 기대하기 힘들다. 대학은 등록금을 인상하지 않을 수 없고 총학생회와 시민단체들은 연례행사처럼 등록금 저지 투쟁에 나서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미궁에 빠진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 선진국의 사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세계 최고의 대학이 몰려있는 미국의 경우, 이미 오래 전부터 기여 입학제를 시행하고 있다. 학력고사(SAT) 성적이 1000점 미만인 저득점자가 명문대학에 합격한 이면에는 부자 부모가 있다는 말이 나오지만 대부분의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오히려 기부금을 내고 자녀를 입학시키는 재력가들로 인하여 가난한 학생들이 더 많은 장학금 혜택을 받고 있다며 환영한다.

한국에서는 기여 입학이라는 말만 나와도 당장 사회 윤리나 정의가 무너져 내릴 것처럼 얼굴부터 붉히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과는 전혀 딴판이다. 무엇보다도 공정해야 할 입시에서 어떻게 대학입학을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느냐는 명분 앞에서는 그 어떤 반론도 설자리를 잃은 채 매도당하기 일쑤다.

미국의 대학이 기부금을 받고 입학을 허가하는 것은 철저한 학사관리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즉 부모의 재력으로 대학에 입학 하더라도 졸업만큼은 엄격하다는 점이다. 능력에 미치지 못하면 중도 탈락하거나 아예 졸업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돈 많은 부모가 낸 기부금은 가난한 학생들이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각종 장학금으로 활용된다. 또한 훌륭한 학자를 초빙하거나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도 쓰인다. 그러니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소리가 나올만도 하다.

요즘 대학가의 최대 화두는 ‘등록금 폭탄’이다. 어느 대학을 가든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는 현수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인상된 등록금을 돌려달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한창 공부에 전념해야 할 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학입시 자율화에 따라 일부 대학에서 기초생활수급권자 및 차상위 계층 학생을 대상으로 ‘기회균형선발’ 등 사회적 배려자를 위한 전형을 확대 시행하고 있다. 대학이 사회 통합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일정한 기준을 정하여 기여 입학과 관련한 전형을 허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재력가들이 해외에 나가 골프치는 데 쓸 돈을 대학에 투자한다면 해마다 등록금을 큰 폭으로 올리지 않아도 된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전면적으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의 경쟁력도 예외는 아니다. 투자가 곧 교육의 질을 좌우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해묵은 논쟁만 되풀이할 것인가. 특히 악화 일로에 있는 가정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등록금 문제만큼은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기여 입학제’에 대한 공론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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