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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광우병 파문, 그리운 딸깍발이

미국 쇠고기 협상 논란을 둘러싸고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청계광장에는 연일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지방에서도 쇠고기 재협상을 주장하는 시민단체의 성명이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도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변죽만 울릴뿐 정작 핵심 쟁점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출범한 지 석 달 밖에 안 된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은 20%대로 떨어져 정권 퇴진 위기로까지 몰리고 있다.

이번 쇠고기 협상의 문제는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수출주도형 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에서 다른 나라의 물건을 수입하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것도 최대 수출국인 미국이라면. 그래서 정부내 협상팀에서는 자동차나 가전 제품을 미국 시장에 더 많이 팔기 위해서라면 미국이 그토록 몸달아하는 쇠고기 쯤은 얼마든지 내줄 수 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까짓 쇠고기가 들어온다고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닐테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세계화에 따른 국가 간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상품의 유통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쇠고기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으니. 그러나 무역도 궁극적으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수단의 하나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의 건강권보다 우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정부 협상팀은 바로 이점을 간과한 것이다.

인간광우병은 치사율 100%의 무서운 질병이다.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은 단백질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가 전염성을 가지고 스스로 복제를 하며 종(種) 간의 벽을 넘나들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위험한 병원체인 ‘프리온’은 주로 소의 특정 부위(SRM)에 포함되어 있고, 특히 월령이 높은 소(30개월 이상)일수록 ‘프리온’에 노출될 가능성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광우병 위험물질로 의심받는 부분과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는 수입하면 안 된다. 그런데도 이를 수용하고 말았다. 게다가 조공의 성격이 짙은 부실 협상을 해놓고도 잘못을 인정하기는 커녕 미국에서 광우병 환자가 3명 밖에 발생하지 않았으니 크게 염려할 일이 아니라고 하면 어떤 국민이 이를 믿겠는가. 건강에 관한 문제는 수치상으로 드러난 것보다는 잠재적인 위험성이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 밥상에 오르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한 나라의 농정과 식품을 관리하는 장관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고시까지 속전속결로 마쳤으니 더 이상 피할 도리가 없게 된 셈이다. 도대체 글을 배워 관직에 오른 사람은 백성의 편에 서서 봉사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선현의 가르침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것인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런 때일수록 앙큼한 자존심과 꼬장꼬장한 고지식으로 지조와 청렴개결을 생활신조로 삼았던 남산골 딸깍발이가 떠오른다. 그들은 사대주의에 젖어 중국인처럼 행세하던 일부 관료들과는 달리 목이 부러져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던 기개가 있었다. 서슬퍼런 수양대군의 회유에도 꿈쩍하지 않고 일편단심 단종을 따랐던 사육신이나 병자호란 때 목숨 걸고 청나라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했던 삼학사 그리고 일사조약을 반대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자결했던 충정공 민영환이 바로 그들이다.

만약 협상을 주도했던 담당자들이 조금이라도 축산 농가의 기막힌 심정을 헤아려 보았거나 내 가족이 먹을 음식이라고 여겼다면 이 정도까지 국민들의 분노를 촉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 자존을 훼손하면서까지 국가의 이익을 추구할 명분은 그 어느 곳에도 없다. 구한 말엽 단발령이 내렸을 적에, 딸깍발이들은 목숨을 걸고 반대 상소를 올렸다. 머리 깍는 일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불효를 저지르고는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 간의 협상을 파기하는 것은 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부당한 압력에 의해 이루어졌고 또 국민의 뜻을 수렴하지 않았다면 이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은 지금 국가의 자존을 걸고 이 문제를 풀어줄 딸깍발이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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