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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고민을 풀어낼 쉼터 공간이 없는 우리나라 학교


6월의 축축 처지는 날씨, 미지근한 선풍기 바람 앞에서 아이들이 교복 단추를 풀어헤치고 책상에 엎드려 자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아직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지도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소금에 절인 배춧잎마냥 늘어진다.

딱딱한 교실, 이곳은 이 나라 청소년들의 사춘기가 묻혀 있는 곳이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부터 소름처럼 여드름이 송송 나는 고교시절까지 남자 아이들은 주체할 수 없는 기운을 교실과 먼지 폴폴 나는 작은 운동장에서 보낸다.



여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초등학교 5, 6학년이면 가슴은 봉긋하게 올라온다. 중고 시절을 보내면서 아이들은 신체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성숙한 몸, 아직 덜 성숙된 마음, 그 속에서 아이들은 우정을 쌓고, 이성에 또는 사랑에 눈을 뜨기도 한다. 때론 또래 친구들과 관계에서 갈등을 겪기도 하고 여러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호기심 천국, 고민의 천국, 웬 천국타령 하겠지만 이게 아이들의 모습이다. 아이들은 사소한 것에 행복해 하기도 하고 우울해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시시때때로 부딪히는 문제에 고민을 한다. 그러한 고민을 친구에게, 부모에게, 때론 선생님에게 털어놓고 상담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다. 또 내면의 비밀스런 것들은 속으로 삼키고 쌓다가 방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고민들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때가 없다. 그것도 고민이다. 이러한 청소년들의 고민을 부끄럼 없이 때론 시원스레 이야기해주고 있는 책이 있다. ‘꼭 알고 싶지만 민망해서 물어보지 못한 10대들의 인생질문’이라는 부재가 붙은 <바보 같은 어른이 되지 않는 법>이다.

이 책에는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138개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들이 들어 있다. 우정, 어느 날 찾아오는 사랑의 감정, 몸의 변화에 따른 생리적 변화, 사춘기를 보내면서 느끼는 고민의 흔적, 가족과의 갈등과 이해, 그리고 바보가 되지 않고 멋진 모습으로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궁금증과 고민들에 대해 딱딱하지 않는 말투로 전해주고 있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남자 친구가 생기면 바로 키스를 해야 하나요?

요즘 아이들은 솔직하다. 또 관계가 분명하다. 그냥 친구와 남자 친구는 엄연히 구별된다. 아무런 감정 없이 함께 어울리다가 마음에 끌리면 “야, 너 나하고 사귈래?” 하고 묻는다. 그리고 상대방의 오케이 신호가 떨어지면 그냥 친구에서 ‘남자 친구’가 된다.

이때부터 둘은 서로를 챙겨주고 며칠 사귀었는지 숫자를 새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스킨십도 이루어진다. 이때 처음 이성간의 사귐을 시작한 친구들은 고민을 한다. 남자 친구가 자꾸 키스를 하자는데 어떻게 해야 되지? 하고 말이다. 그리고 남자 친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자기 곁을 떠날 것 같다는 생각에 불안해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키스를 하려니 뭔가 걸린다.

이런 고민에 빠진 친구에게 저자는 서두르지 말라고 한다. '키스를 해야 되나요?' 라는 질문 자체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허락은 혐오감을 준다고 한다. 친구와의 관계도 망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키스를 한다는 것이 지나치게 친밀한 관계로 느껴지거나 두렵게 느껴진다면 남자 친구에게 조금 기다려 달라고 말하라고 조언한다. 만약 기다릴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절대 억지로 하지 말라고 한다. 왜 그 남자 친구는 받을 자격이 없으니까.

공부도 하기 싫고 학교도 다니기 싫어요

얼마 전, 아이들에게 ‘학교 다니기가 즐거운 사람?’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하고 물은 적이 있다. 이에 첫 번째 물음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친구들은 삼십 명 중 두세 명, 두 번째 물음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친구들은 다섯 명 정도였다.

반대로 ‘학교 다니기 싫은 사람?’ 하고 물었더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학교 규율이 너무 엄격해서’ ‘학교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냥 재미없어서’ ‘공부하기 싫어서’ 등등 다양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럼 왜 다니느냐고. 이번에도 ‘고등학교는 나와야 하니까’ ‘대학에 가기 위해서’ ‘취직하기 위해서’ ‘엄마 아빠가 다니라고 하니까’ 등 답은 다양했다. 물론 와중에도 자신의 삶의 목표가 분명하여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닌다는 아이도 몇 몇 나왔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청소년들 중 정말 학교에 다니기 좋아서 다니는 학생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니지 않으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힘드니까 다닌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여 이런저런 이유로 수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

그런데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 중엔 부적응으로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성적이 뛰어나고 자기 관리를 잘 하는 아이들도 떠나기도 한다. 이 아이들은 검정고시 봐서 대학가면 되지 하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경우다. 때론 틀에 박힌 학교 교육이 싫어서 말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진로나 자유에 대한 멋진 계획이 있거나, 검정고시로 진학할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규 학교 과정을 마치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의 다양한 관계, 여러 경험과 추억을 만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정말 학교가 싫거나, 적응하기가 어렵고, 불량학생으로 찍혀 자퇴를 했을 경우에 직업이나 대안학교를 찾아 새롭게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이때도 자신의 적성이나 성향을 따져 그에 알맞은 곳을 찾아가라고 이야기한다.

이밖에도 여학생들이 고민하는 생리 같은 생리적 현상과 동성, 이성 문제, 사춘기시절 한 번 쯤 유혹을 받았을 흡연과 자살 충동 문제, 남자 아이들의 일상적인 고민인 자위행위나, 털, 여드름 문제 같은 다양한 상황들이 나와 있다.

고민을 풀어낼 쉼터 공간이 없는 우리나라 학교

책을 읽으며 학교라는 공간에 갇혀 지내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자신의 고민을 풀어낼 쉼터공간이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

사실 우리나라 초등학교에서부터 중고등학교엔 아이들과 상담할 공간이 적다. 공간뿐만 아니라 전문상담교사도 거의 없다. 상담을 담당하는 교사가 있긴 있지만 전문 상담교사가 아니다. 몇 십 시간의 상담 연수를 받은 교사가 자신의 교과 수업을 다한 다음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 상담을 하는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상담할 수 있는 분위기도 형성되지 못한다. 상담이라는 것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상담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남학생의 경우보다 여학생의 경우엔 비밀을 보장해줘야 하는 경우나 드러내지 말아야 할 내용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교 실정은 아이들의 여러 고민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 대부분 입시라는 틀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또는 학부모들에게 고민 해결의 작은 위안이 되는 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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