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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절세미녀 수로부인의 유혹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만일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
- 삼국유사 <가락국기조> 중 구지가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 내 놓아라/남의 아내 훔쳐간 그 죄 얼마나 크냐
네 만일 거역하고 내놓지 않으면/그물로 너를 잡아 구워먹겠다.
- 삼국유사 <수로부인조>

참 이상한 일이다. 시간과 거리의 경계가 뚜렷한 두 노래가 이렇게도 유사한 내용을 가지다니. 구지가는 구지봉에서 아홉 촌장들이 부른 노래이고, 수로부인조의 노래는 강릉 백성들이 부인을 끌고 간 용을 질타하면서 부른 노래이다. 시대적으로 보면 구지가는 기원전의 노래이고, 수로부인 노래는 신라 성덕왕대에 불려진 것이다. 시간상으로 보면 무려 7~8백년의 차이가 난다. 그러나 두 노래는 우연의 일치인지 내용이 너무 흡사하다. 도대체 두 노래에 나오는 거북이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국문학자였던 고 정병욱 교수는 거북이의 머리가 남성기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거북이의 머리는 남성기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몸통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양이 발기된 음경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선덕여왕이 여근곡에 숨어든 백제군이 죽는 이유를 '男性이 女性의 몸 안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다'고 설명한 것과 유사한 분위기를 풍긴다.

강릉시 정동진에서 심곡 마을을 거쳐 해안가를 따라 가면, 기암절벽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해안도로가 나타난다. 이 도로를 따라 계속 가다보면 금진항이 나타나는데, 절벽에 핀 쑥부쟁이와 들국화, 철쭉꽃이 아슬아슬한 자태로 지나가는 사람을 유혹하는 곳이다. 이 도로를 일명 ‘헌화로’라고 하는데, 이 헌화로에는 수로부인의 유혹이 진득하게 남아 있다.




성덕왕대에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던 길이었다. 순정공 일행은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해안가에 자리를 펴고 향긋한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순정공의 부인께서 뭇 남성들을 시험하는 도발적인 제안을 하나 내놓았다. 칼처럼 뾰족한 절벽 위에 핀 꽃-철쭉꽃으로 추정-을 자기에게 꺾어 바칠 사람이 없냐며 아리따운 눈을 슬며시 내리깐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절세미녀의 유혹이라 해도 목숨을 내걸고서 절벽 위로 올라갈 남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나서지 않자 수로부인은 한숨을 내쉬며 실망어린 표정을 날렸다. 아마 수로부인은 대단한 공주병 환자였던 것 같다.

그렇게 수로부인이 헛웃음을 날리며 동해의 옥색 바다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노옹이 용감하게 나섰다. 노인은 손에 임신한 암소를 끌고 있었는데, 수로부인의 청을 받아들여 주저 없이 절벽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붉은 철쭉꽃을 한 아름 따서 그녀에게 주면서 아름다운 노래도 지어 바쳤다.

자줏빛 바위 가에/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을진댄/제 꽃 꺾어 바치오리다.

노인은 <헌화가>라는 이 노래를 부른 후 미련 없이 수로부인 곁을 떠났다. 요즘말로 하면 '쿨'한 사람인 것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바치는 행위는 성적인 행위를 하고 싶다는 의사표시이다. 꽃은 처녀를 상징하는 것이며 꽃을 꺾는 행위는 처녀성을 정복하고 싶다는 심리적 표현이다. 결국 헌화가를 부른 노인은 수로부인에게 강한 성적 메시지를 전달한 후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수로부인은 처용의 아내와 같은 영광(?)을 많이 겪은 미인이다. 그녀가 가는 곳마다 역신과 용, 괴물들이 주야로 나타나 그녀를 납치했다. 점심을 먹은 순정공 일행이 어느 바닷가에 당도했는데, 갑자기 사나운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물고 물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일행들이 어쩔 줄 몰라 할 때 또 다른 노인이 나타나 여러 입으로 함께 떠들자고 선동했단다. 백성들을 불러 모아 막대기로 언덕을 두드리면서 항의의 노래를 부르면 부인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수로부인조에 나오는 노래를 부르면서 협박하였는데, 얼마 후 용이 수로부인을 돌려주었다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거북이는 수로부인의 미모를 탐하는 남성의 성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결국 삼국유사 수로부인조의 노래는 성적인 상징이 곳곳에 배어 있는 노래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헌화가에도 성적 상징이 있다. 선문대 국어국문학과 구사회 교수는 '자줏빛 바위 가에'의 원문인 자포암호(慈布岩乎)를 재미있게 해석했다. 자포는 자색이 아니라 '자지'로 구개음화가 이루어지는 '자디'라는 것이다. 즉, 자포암은 '발기했을 때의 검붉은 색을 띠는 남성기'를 표현한 것이며 헌화가는 남근석을 숭배하는 노래라는 것이다.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제의인 남근숭배사상이 헌화가에 깔려 있으며 절벽 위의 꽃은 생명의 잉태를 가져다주는 주술적 상관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노옹이 손에 잡고 있는 암소는 생명력을 수태할 수 있는 여성성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렃듯 헌화가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정동진의 옥색바다와 수로부인의 치명적인 유혹이 해풍에 담겨 있는 헌화로. 쿨하면서도 매혹적인 미소가 나부끼는 헌화로를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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