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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경쟁률, 그건 숫자에 불과하다

금요일(8월 8일) 아침, 출근하자 한 아이가 교무실 복도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아직 수업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도 일찍 등교를 한 것을 보니 무슨 사정이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다름 아닌 우리 반의 ○○이였다.

“아침 일찍부터 네가 웬일이니?”

그 아이는 대답 대신 음료수 하나를 내게 내밀며 말을 했다.

“선생님, 오늘이잖아요.”
“아니 뭐가 말이니?”
“1단계 발표…?”

순간 내 시선은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주시했다. 달력 위에는 우리 반 아이들이 지원한 대학의 이름이 날짜별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8일 날짜에 ‘○○대학 1단계 발표’라고 적힌 적색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그러고 보니 오늘이구나. 좋은 꿈 꿨니?”
“아니오.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

그 아이는 잠을 제대로 못 잔 듯 눈이 많이 부어 있었다. 그리고 걱정이 되어 날이 밝자마자 학교로 왔다는 것이었다.

서울 모(某) 대학 ○○○학과에 지원한 그 아이는 고등학교 입학을 하면서부터 이 대학에 가기로 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대학에 대한 모든 정보(모집요강, 입시결과 등)를 찾아 스크랩해 두었다고 하였다. 그래서일까? 녀석은 이 대학에 대해 담임인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원서접수 마감결과(7월 14일), 녀석이 지원한 대학의 경쟁률(36:17)이 장난이 아니었다. 경쟁률이 높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치솟을 줄은 몰랐다. 녀석 또한 경쟁률에 다소 주눅이 든 것 같았다. 그러나 녀석은 웃음을 잃지 않았으며 방학 보충학습에 열심히 참여를 하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심층면접 준비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였다.

사실 녀석의 원서접수 이후, 1단계 발표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마도 그건 높은 경쟁률 때문에 합격보다 불합격할 것이라는 생각이 더 집요해 녀석의 합격 여부는 내게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녀석은 포기하지 않고 발표 일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합격을 기대했다가 떨어져 그 후유증이 2학기까지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녀석을 볼 때마다 큰 기대를 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였다. 그때마다 녀석은 자신을 믿는다며 오히려 나를 위안하였다.

녀석은 매시간 교무실로 내려와 합격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요구했다. 녀석의 요구에 못 이겨 대학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여러 번 확인을 시도해 보았으나 검색 창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만 떴다.

“합격자 발표기간이 아닙니다.”




발표 시간이 오후 2시인 만큼 차분하게 기다려보라고 이야기하면 녀석은 초조해서 기다릴 수가 없다며 대학에 직접 전화를 해보라며 아부까지 하였다. 할 수 없이 녀석의 성화에 못 이겨 전화를 해보았다. 해본 결과 발표시간을 앞당길 수 없다는 대학 측의 입장이 있었다.

그럼에도, 녀석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로 내려와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녀석이 내려오기 전에 컴퓨터 모니터에 그 대학의 홈페이지를 열어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허탕을 치고 돌아갔지만 모름지기 녀석은 오전까지 7번 이상이나 교무실로 내려왔다 갔으리라. 한편으로 수험생의 이런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하는 대학 측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교무실로 돌아오자 언제 와 있었는지 녀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은?”
“확인을 하고 난 뒤 먹겠습니다.”

교무실의 시계는 벌써 2시를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발표시간이 조금 넘어선 시간이었다. 나와는 달리 녀석의 얼굴은 불안과 초조로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의 모니터를 켰다. 모니터에는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에 열어 두었던 그 대학의 합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창이 그대로 나타났다. 그리고 녀석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타자하였다. 확인 버튼을 누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녀석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녀석은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결코 실망해서는 안 된다. 알았지?”
“선생님, 걱정하지 마시고 눌러 보세요. 분명히 합격했을 거예요.”

녀석에게 다짐을 받아두고 난 뒤, 조심스럽게 확인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녀석이 당당하게 1단계 합격을 한 것이 아닌가. 녀석은 내 손을 잡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리고 감격에 겨워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사실 높은 경쟁률 때문에 지레짐작 불합격하리라 생각했던 내 예상을 뒤집어 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녀석의 생각이 적중된 것이었다. 녀석은 마지막 순간까지 합격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지 않았던가. 결국, 긍정적인 사고와 자신감이 녀석을 합격하게 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종 합격하기까지 녀석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녀석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좋은 결실을 보리라. 내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다음 고지를 향해 뛰어가는 녀석의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워 보일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제자야, 넌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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