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장무 총장이 자신의 임기인 2010년 7월까지 서울대 법인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장의 선언은 서울대가 국립대라는 위치와 고등교육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비춰볼 때, 교육계에서는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가만히 있어도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수사(修辭)가 저절로 따라붙는 마당에 왜 굳이 이 시점에서 법인화하겠다는 것인지 그 의도를 알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국립대 법인화란 지배구조, 성과평과, 조직운영, 재정운영, 인사운영에 있어 기업운영방식으로 바꾸어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대학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일례로 인사운영의 경우 국립대는 국가공무원법과 교육공무원법에 의해 제한을 받지만 법인으로 전환하면 대학의 발전 방향에 적합한 인재를 수시로 채용하여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국립대는 정부산하기관으로 각종 규제와 간섭을 받고 있다. 예산을 편성하거나 조직을 개편할 때도 정부의 법령을 따라야 한다. 심지어 칸막이 하나를 설치하는 데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정도다. 이처럼 경직된 의사결정구조는 국립대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최고라는 서울대의 경쟁력이 세계 10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이유도 이같은 이유가 가장 크다.
사실 국립대 법인화 논의는 1987년 교육개혁심의위원회가 보고서를 만들어 국립대 법인화의 필요성을 권고했으나 20년 넘게 제자리걸음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지난해 6월 국회에 ‘국립대학 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제출됐으나, 전국 국․공립대교수협의회 등 관련 단체들의 거센 반발로 상임위에 상정되지도 못한 채 무산되고 말았다. 틈만나면 대학의 자율성을 주장하던 대학이 스스로 정부의 하급기관으로 남겠다고 반발하는 모습이야말로 이익단체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이를 지키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국립대 법인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등록금 인상으로 저소득층 자녀의 교육기회를 박탈하고 실용중심의 학문으로 인하여 기초 학문이 고사(枯死)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나 법인화된 사립대학의 경우 등록금이 비싸더라도 장학제도가 충분히 갖춰져 있고 기초 학문을 홀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기우에 불과하다.
국립대 법인화의 실질적인 걸림돌은 안정된 공무원 신분의 해체로 인하여 고용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 구성원들이 국립대 법인화에는 공감대를 갖고 있으나 선뜻 나서서 추진하기 어려운 이유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공부원 신분 변화에 따른 불안 요소는 정부가 공무원 신분선택권 보장을 제시하고 있어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다.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립대 법인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웃나라 일본도 지난 2004년에 87개 국립대를 모두 법인화했다. 일본 대학도 당초의 우려와는 달리 법인화로 전환하자 수익 경영과 비용 절감 등으로 대부분 이익을 냈다. 일본 국립대학 법인화의 상징으로 꼽히는 도쿄대의 경우 법인화 이전보다 신기술 개발 건수가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하며 각종 특허 수입과, 연구지원금 수입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2006년에는 일본 최대의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최고투자등급인 트리플 A를 받기도 했다.
정체에 빠진 국립대를 법인화하지 않고서는 대학 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의사 결정의 권한도 없고 아무런 자극도 받지 않은 채 조직에 안주하는 시스템으로는 발전은 커녕 퇴보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 학내 구성원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임기내에 서울대 법인화를 추진하겠다는 이장무 총장의 결단이 그래서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이다. 국립대 법인화는 대학 자율화 및 교육 선진화의 핵심 요인이라는 점에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국가적 과제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