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부권 최대의 방어기지, 청주 상당산성
산성(山城). 산에 있는 성인 산성의 일차적인 기능은 방어 기능에 있다. 전쟁이 날 경우, 성 주변에 있는 민중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자 적의 진격을 막아주는 전략적·전술적 요충지인 것이다. 이 성을 사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병사들과 민중들이 죽음의 문턱에 드나들었을까? 먼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산성들은 시민들의 훌륭한 쉼터가 되었지만 그 옛날에는 성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청주에 위치한 상당산성을 오른다. 부산의 금정산에 있는 금정산성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중부권 최대의 산성인 이곳은 금정산성과 마찬가지로 돌로 쌓아놓은 석성이다. 이곳에 오르면 청주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저 멀리 중부권의 지형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임란 시 서울로 가는 진격로인 이곳을 사수하기 위해 이름 없는 병사들과 민중들은 지긋지긋하게 쳐들어오는 왜병과 혈투를 벌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산성들은 그 유려한 성벽에서 살짝 뿜어 나오는 곡선이 아름답다. 가까이서 보면 무가치한 돌들로 쌓아놓은 벽들이지만 그 벽들이 모여 기다란 곡선을 유지하는 모습은 변증법적인 미학을 안겨준다. 돌 하나하나가 모여 새롭게 창조된 유려한 곡선미. 그 곡선미를 음미하며 산성을 오르는 즐거움은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들만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충청북도 청주시(淸州市) 산성동(山城洞)에 있는 조선시대 석성인 상당산성. 원래 이 자리에는 백제 때부터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대개 우리나라의 산성은 그 연원이 거의가 토성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삼한시대부터 설립되었다고도 하며 일설에는 삼국시대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이런 석성들이 조선시대에 들어와 군사적 필요에 의해 견고한 석성으로 개축된 것이다.

상당 산성 또한 지난 1716년(숙종 42년)에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성벽의 주요 자재는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이며 현재 약 4.2㎞의 성벽이 길게 늘어서 있다. 성벽의 평균 높이는 약 3∼4m 정도 될까. 성벽에 핀 연초록 이끼는 세월의 무상함을 후대인에게 조용히 알려주고 있다.
이곳에는 현재 3개의 성문이 남아 있다. 남문을 비롯하여 동문과 서문이 있으며 이 문과는 별도로 2개의 암문이 그림자처럼 성벽 안에 숨어 있다. 상당 산성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남문으로 오르는 산책로를 조용히 올라가본다. 산책로 옆에는 닭의장풀이며 민들레, 패랭이 등속의 들꽃들이 성하의 햇살을 받으며 밝게 웃고 있었다. 올라가는 산책로는 다소 버겁긴 하지만 남문 앞에 도착하여 앞을 바라보면 널따랗게 펼쳐진 잔디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이마의 땀을 시원스레 씻어준다.
남문 앞에는 재미있는 풍경도 하나 있다. 청주문화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들이 조선 시대 장군복과 병사복을 입은 채 옛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참, 수고도 많지. 이 더운 여름날, 무겁고 둔탁한 장군복을 입고서 오가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학생들. 그들의 얼굴엔 종일 햇살을 받은 검은 흔적들이 검버섯처럼 군데군데 피어 있었다. 그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기념 촬영 한 컷! 밝게 웃으며 작별 인사를 나누고 다시 산성길을 재촉한다.

남문에서 남암문으로 오르는 경사도로. 올라갈 생각부터가 땀에 절게 하는 가파른 길이다. 그러나 주변에 높다랗게 자란 나무들이 그늘과 피톤치드향을 생산하고 있어 그걸 위안삼아 조금씩 걸으니 어느새 남암문 입구에 다다른다.
눈앞에 펼쳐지는 청주시가지의 전경. 저 멀리로 S자 라인의 산성로가 길게 보이고, 그 라인을 따라 장난감 같은 자동차들이 요리조리 달아난다. 남암문 근처에는 예전 병사들이 숨어서 싸울 수 있는 여장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병사들의 육신도 보호하고, 적을 효율적으로 제압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상당산성에는 이런 군사적 장치가 오밀조밀하게 숨어 있다. 3개의 치성이 있는가 하면, 2곳의 장대와 15개의 포루가 설치되어 있다. 또한 성 안에는 군사들의 식수를 조달하기 위한 연못 2개가 있어 장기전에 대비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잠시 몸을 돌려 방금 올라왔던 길을 내려다보았다. 남암문에서 바라다보는 남문은 소나무 숲과 성벽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문득, 하늘을 쳐다보니 옥색 같은 구름들이 태평천하의 세월 마냥 두둥실 흐르고 있었다.
남문 앞에 펼쳐진 잔디밭에서 노니는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들도 보기 좋았고,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음꽃을 피우는 젊은 부모들의 미소도 보기 좋았다. 한마디로 상당산성은 청주시민들에게 가장 큰 휴식을 안겨주는 장소인 셈이다.

다시 남암문을 뒤로 하고 계속 산책을 진행한다. 조금만 걸으니 바로 서문이 나타난다. 역시 빼어나게 아름다운 성벽의 곡선미. 그 곡선이 주는 심미적 쾌감에 눈을 감아 본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방향. 숲 속에서 피어난 각종 꽃들과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조용한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흰이질풀, 패랭이, 돌양지꽃, 짚신나물, 왕고들빼기 등의 야생화들. 그 야생화가 뿜어주는 방향에 어느새 몸도 마음도 나른해진다.
상당산성에는 성벽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 안으로 들어가면 한옥마을이 조성되어 있으며 약간의 편의시설과 문화공연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원한다면 성 안에서 숙박도 할 수 있으니 한 여름의 열기를 식히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건축미가 어우러진 청주 상당산성에서 성하의 열기를 식히는 것도 또 하나의 피서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