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전임교에서 근무하던 교감선생님을 방문하였다. 체격은 작으시나 언제나 힘이 넘치셨고 당당하셨다. 지역교육청 중등과장님으로 발령을 받은 이후 처음방문이었다. 학기가 바뀌도록 미루어 왔던 것은 학위논문을 들고 폼을 잡고 가고 싶어서였고 결실을 이루고자한 의지의 다짐이기도 했다. 건물을 들어서서 거울도 보고 옷 매무새도 확인하니 얼굴이 수척해진 모습을 감출 수는 없었으나 까만 바탕 금장글씨의 학위논문이 더욱 반짝여 금방 표시는 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표시된 안내에 따라 4층사무실에 들어서니 과장님의 얼굴을 뒤로하고 먼저 한소쿠리의 꽃바구니가 시야를 잡는다. 부임 시에 배달 한 보랏빛 스타치스 바구니가 빛만 바랫을 뿐 그대로 였다. 미리와 계시는 다른 한 분의 선생님께도 꽃 속으로 끌여 들여 수다를 떨었다. 과장님께서 이런 심미안이 있었는지를 미처 몰랐다. 다시 둘러본 전경이 한눈에 울산 북구 지역이 들어왔다. 이곳에서 왜 창의가 왜 철학이 창출되지 않겠는가. 원래도 그러하셨지만 언제나 신중하고 우리들의 존재를 자랑스러워 하셨다.
미리 와계신 여선생님을 소개하며 굉장히 자랑하셨는데 교장선생님으로 근무하셨을 때 한 학교에서 근무한 교사로 청소시간 지도, 수업모습 등을 구체적으로 들어가며 아낌없는 격려와 칭찬을 하셨다. 사실 새로 개정된 교사평가 척도도 근무태도와 교수-학습 능력과 생활지도 그리고 자기연구이다. 그기다 자기 장학으로 전공분야 연구까지 열심히하고 용모가지 단정하니 칭찬을 아낄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그랬었다 나도 그런 칭찬을 받고 긍정적인 업무 열정이 마구 일어났었지. 성취감을 경험하며 얼마나 많은 일의 중독에 빠져들었던가. 교육계 선지자 후룩(Hurlock)도 교사의 상벌이 학습동기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실험 했었고, 한 우연한 예언이 자기실현의 수단이 된다는 머튼(Merton)의 자기 충족적 예언에서도, 지식이 높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학생은 결국 높은 지적 성취를 거두더라는 피그말리온 효과에서도 교사가 학생을 보는 관점에 따라 학업성취도는 달라진다고 검정하였었다.
화제 주체가 된 우연히 만난 두 방문객이 ‘우리’가 되었다. 과장님은 퇴근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덕담을 그치지 않으셨고 우리의 스케듈 확인도 없이 그냥 식사를 근사하게 사겠다고 하시며 격조 있는 식당으로 안내하셨다. 학위를 이루고 난 다음의 계획도 점검하셨다. 이제시작이라고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다. 더 공부 할 일이 많아 졌다고.
이어지는 말씀은 잘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철학과 삶의 지표를 어떻게 잡고 가야 하는 것인지와 사람들이 잘못 오해하고 사는 것은 어떤 경우 인지를 밝혀 주셨는데 그 중 와 닿는 건 ‘사람에게 답을 얻고자 하는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며. 곧 지혜를 키워야한다’ 고 하신부분이 오늘도 남는다.
어제 그 과장님 사무실의 빛 바랜 스타치스 대신에 놓여 질 야생화 한 바구니를 배달시켰다. 가을이 물씬한 자줏 빛 대바구니에 황금색 야생국화를, 그리고 미니 카드엔 그토록 대견해 하셨던 부분을 다시 감사드리며 ‘저의 학위를 기념 합니다‘ 가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