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항 오어사의 대웅전에서
원효와 혜공. 찬란한 신라 불교의 역사에서 이적과 기행, 파계를 일삼았던 희대의 고승들이다. 두 사람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많이 닮았다. 원효는 한국 불교사에서 가장 커다란 업적을 남긴 승려이다. 그가 지은 대승기신론소와 금강삼매경론, 화엄경소등은 한국 불교사의 커다란 성과이다. 반면에 혜공은 이렇다 할 저서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원효의 저술 활동에 깊게 관여한 흔적이 있다. 혹여 원효의 저서 속에 혜공의 철학과 사상이 용해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천진공의 집에서 여종의 아들로 태어난 혜공은 어릴 때부터 각종 이적을 일삼았다고 한다. 혜공은 천진공의 권유로 불가에 출가하였는데, 작은 절에 살면서 늘 삼태기를 지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스님을 사람들은 부궤화상으로 불렀으며 그가 사는 절은 부개사라고 불렸다고 한다. 걸핏하면 우물 속에 들어가서 몇 달씩 기거하다가 나왔는데 신기하게도 그의 몸이 하나도 젖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신령한 이적을 보인 그는 공중에 떠서 입적했으며 그의 사리는 수도 없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경북 포항의 운제산 자락에는 은린을 자랑하는 물고기들이 유유히 돌아다니는 오어지가 있다. 이 오어지를 앞에 둔 그림 같은 사찰 하나가 있으니 그 이름도 특이한 ‘오어사’이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자락을 뒤로 하고, 원효암과 자장암을 부속 암자로 거느린 소박한 절. 절에는 늘 묘려한 기운이 서려 있는 법. 전국 최대의 방생도량으로 유명한 오어사에는 그립고 아득한 향기가 수채화처럼 흐르고 있다.
원효, 혜공, 자장, 의상 등 신라 4대 고승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천년 고찰 오어사. 신라 진평왕 대에 자장 율사가 창건했다는 이 절의 원래 이름은 ‘항사사’였다. 그런데 원효와 혜공의 장난기에 의해 ‘오어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원효가 물고기를 먹고 똥을 누었는데, 혜공스님이 그 똥을 보고 “네 똥은 내가 잡은 물고기로구나.”라고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 吾’, ‘고기 魚’라는 뜻의 ‘오어사’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오어사는 재미있는 이름만큼이나 볼거리가 많은 절이기도 하다. 경북문화재 제88호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보물 제1280호인 범종이 있으며, 원효스님의 것으로 보이는 삿갓이 보존되어 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모신 주 법당으로 조선 영조 17년(1741)에 중건한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 양식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이 대웅전에서 눈 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연꽃무늬의 특이한 단청이다. 청련과 백련의 꽃살 무늬가 복합문에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호수에서 반사된 은빛이 연꽃에 스미는 모습은 아름다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또한 대웅전 천장에는 두 마리의 학이 정교하게 양각되어 있어 천상의 세계를 보는 듯한 착각을 준다.
청기와로 이루어진 범종각은 대웅전의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범종은 근래에 새로 주조한 것이다. 그런데 원래 오어사에 있었던 범종의 사연이 범상치 않다. 약 800년 전에 주조된 이 동종에는 화려한 당초문과 비천상, 용두조각이 새겨져 있으며, 고려 고종 3년에 순광이 주조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이 동종은 오어지 준설작업을 하면서 발견된 것으로 유명하다. 오어사 측은 일제가 이 동종을 반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스님들과 마을 사람들이 밤에 몰래 계곡에 묻었다고 주장한다. 현재 이 동종은 기념관 안에 보관되어 있다.

사찰 입구에는 단층 한옥으로 된 작은 기념관 하나가 있다. 기념관 안에는 원효대사의 삿갓과 수저, 법화경 4점과 오어사 사적지 2점, 그리고 대웅전 상량문 등 약 20여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원효의 삿갓은 그 신빙성이 다소 떨어진다. 풀뿌리로 짜여 져 있는 삿갓이 1500년의 세월을 내려오면서 원형이 거의 보존되었다는 것이 다소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오어사에서 반드시 가보야 할 곳은 원효암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이다. 대웅전의 왼편에 있는 널따란 공터에 가면 오어지를 가로지는 다리 하나가 나온다. 이 다리 위에 올라가서 호수를 내려다보면 물 반 고기 반을 바로 실감할 정도로 물고기가 많다. 그리고 뒤를 돌아 운제산 자락을 쳐다보면 짙푸른 녹음 사이로 휘돌아가는 맑은 계곡 수를 하염없이 볼 수 있다. 정결하면서도 웅장한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넉넉함이 어찌 그리도 푸근한지!

좁고 가파른 원효암 오솔길에서 만나는 돌탑들에선 민초들의 소박한 심성이 묻어나고, 원효암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숲 속 길에선 피톤치드향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온다. 곧 이어 등장하는 작은 암자 하나. 높다란 담벼락에 핀 넝쿨나무들이 땀을 흘리며 올라오는 중생들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는 포근함이 서려 있는 곳. 만일 눈 내리는 날에 사랑하는 사람과 이 길을 밟는다면 세상에 그 무엇이 부러울까.
돌아가는 길에 다시 오어지를 바라다본다. 오어지에선 여전히 은빛 찬란한 물고기들이 투명한 물속을 거닐고, 멀리 떨어지는 낙엽들 사이로 옛 선인들의 흔적이 곱게 내려앉는다. 문득 일주문 사이로 뒤 돌아본 대웅전. 스님들은 붉게 밝힌 등촉 아래 부처님에게 저녁 공양을 드리고 있었다. 소박한 마음으로 합장하니 마음속에는 어느덧 솔잎의 향기가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