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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선운사 뒤 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 ‘선운사 동구’ 모두 / 서정주 -

선운사에 가본 적이 있나요. 고창 선운사요. 미당 서정주의 고향이기도 하고 동백과 상사화가 붉은 노을처럼 피어나는 아름다운 곳이지요. 그러나 고창은 선운사의 동백과 상사화만이 유명한 곳이 아닙니다. 선사시대의 고인돌도 있고, 성곽돌이로 유명한 고창읍성도 있습니다. 또 판소리 여섯마당을 정리한 신재효도 있습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선운사 하면 미당이 떠오르고 동백이 떠오릅니다.

미당의 위 시를 읽다보면 한 여인이 떠오릅니다. 육자배기를 구성지게 목이 쉬도록 부르는 막걸리집 여자가요. 선운사 동구엔 동백장이라는 여관이 있고 그 유명한 풍천장어집도 즐비하게 서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동백꽃을 보지 못한 아쉬움에 허름한 막걸리집을 찾습니다. 그곳에서 구슬프고 애절한 육자배기 가락 한 소절을 듣습니다. 어쩌면 시인은 아직 피지 못한 동백에서 피기도 전에 술집을 전전하는 한 여인의 모습을 봤는지도 모릅니다.

선운사의 정취를 느끼려면 직접 선운사에 가봐야 합니다. 특히 동백이 하늘을 향해 툭툭 터지는 소리를 들으려면 서둘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냥 가면 맛이 떨어집니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로 시작되는 송창식의 ‘선운사’라는 노래를 들으며 가면 제격이지요.

사실 송창식의 노랫말은 어떤 시인의 시어보다 선운사의 동백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이란 구절은 동백꽃에 서린 아픔을 말해주고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붉은 동백 터지는 선운사 뒤 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그래서인지 선운사를 노래한 시인들의 시들엔 동백꽃과 이별과 그리움이 선운사 도솔암 오르는 길에 피어있는 안개처럼 물씬거립니다.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 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 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선운사 동백꽃’ 모두 / 김용택 -

여자에게 버림받은 남자는 왜 선운사에 왜 갔을까요. 그것도 동백이 필 무렵에요. 눈물을 감추기 위해 간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라는 조금은 진부하고 통속적인 말을 중얼거리면서 남자는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 안에 가서 엉엉 울어버립니다. 그런데 참 절묘하지요. 남자의 ‘엉엉’ 우는 소리를 통해 동백의 ‘톡톡’ 터지는 소리를 연상할 수 있잖아요.

그렇습니다. 선운사의 동백꽃은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역할도 합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최영미 시인은 ‘선운사에서’란 시를 통해 이별한 임을 잊지 못하고 끙끙대는 모습을 노래하기도 합니다.

꽃이 / 피는 건 힘들어도 / 지는 건 잠깐이더군 /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 아주 잠깐이더군 / (중략) /꽃이 / 지는 건 쉬워도 / 잊는 건 한참이더군 / 영영 한참이더군

사랑을 할 때도 어렵지만 이별은 잠깐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이별이란 게 쉽지만 그 사랑을 잊지 못함을 시인은 꽃이 피고 짐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만나서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잖아요. 그리고 또 만나고요. 그런데 그 이별이란 게 참 아픈 겁니다. 그래서 잊기가 쉽지 않고요.

선운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솔암 오르는 길

그럼 선운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은 어디일까요. 도솔암 가는 길이랍니다. 너무나 아름다워 김영남이란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만약 어느 여자에게 이처럼
아름다운 숲속 길이 있다면
난 그녀와 살림을, 다시 차리겠네
-‘선운산 도솔암 가는 길’의 한 부분 / 김영남 -

도솔암 오르는 길이 얼마나 아름다우냐면 아침이면 노란 새소리가 아침을 깨우고, 낮에는 이깔나무 잎으로 하늘을 경작하다가, 천마봉 노을로 저녁밥을 지어 살림을 차린 여자와 귀여운 암자를 지어 살겠다고 합니다.

도솔암 오르는 길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또 다른 시가 있습니다. 석전 박한영 스님의 시(한시)입니다. 시인은 선운산 도솔암의 풍경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꾀꼬리 울음 숲을 뚫고 / 풀 향기 길에 가득하여라/ …… / 찬 샘에서는 푸른 구슬을 뿜고 / 굴마다 메아리 울려 퍼져라 / 옷 잡고 꼭대기 올라서니 / 붉은 햇살물결처럼 굽이치네

오늘 눈이 왔습니다. 선운사의 아름다움은 봄뿐만이 아닙니다. 겨울의 설경도 무척 아름답습니다. 많은 시인 묵객들이 봄의 선운사를 노래하지만 겨울의 선운사를 노래하기도 합니다. 그런 선운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다면 시집 <꽃이 지고 있으니 조용히 좀 해주세요>(김화영 엮음 / 시와 시학사)를 읽어보세요.

이 시집엔 선운사를 노래한 미당의 시와 여러 시인들의 시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선운사에서 수도했던 고승들의 시와 비명, 전각과 다시(茶詩), 한시(漢詩) 등의 시편들이 도솔암 오르는 길에 걸려있는 구름처럼 맑게 들어있습니다. 혹 선운사에 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송창식의 노래를 들으며 이 한 권의 시집을 손에 들고 가면 멋진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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