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공립학교 선생님들은 해마다 3월이 오면 가슴이 설렌다. 생활이 편한 지역에서 그렇지 못한 지역으로 옮길 때나, 열악한 곳에서 생활 근거지가 가까운 곳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내신서라는 것을 쓰고 초조하게 기다리곤 한다.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열 번째로 현재의 학교로 옮겨 왔다. 그래서 선생님들 사이에는 지마 인생(紙馬 人生)이니 혹은, 지일편 인생(紙一片 人生)이라 말하기도 한다.
경산에서 근무 만기가 되어 이를테면 종이 말을 타고 아홉 번째로 내린 곳이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에 있는 경주 디자인 고등학교였다. 일단은 대구에서 통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았고 또 젊은 시절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도 계시고 해서 더욱 반가웠다. 그러나 부임하여 교무부의 업무를 배당 받고 가슴이 답답했다.
교육부 시범학교였던 전임 학교에서의 연구부와 교무부일로 인해서 많이 지쳐 있었고 특히, 신설학교인 이 곳에서 통근을 하면서 교무부를 맡는 다는 것이 그리 마음 가벼운 일은 아니었다. 열 번씩이나 학교를 옮겨 다녀도 처음의 어색함은 줄지 않는다, 이 때 따뜻이 맞아 주신분이 바로 조순호 다니엘 선생님이시다. 첫 인상이 참으로 온화하시고 자상하신 맏형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동향이시며, 중학교 선배이기도 하고 나의 외사촌과는 동기생이시기도 하였다. 디자인고등학교 창설과 더불어 교무부장의 실무 중책을 맡아 신설학교의 기반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시다가 내가 가면서 그 직을 물려 주셨기에 업무상으로나 개인적 정리로나 더욱 가깝게 뵐 수 있게 되었다. 내겐 생애에서 참으로 좋은 인연을 얻은 것이다.
구절초의 기품
나는 들꽃을 좋아 한다. 그 중에서도 하늘 높은 가을날 시냇가에 핀 보랏빛 구절초를 특히 좋아 한다.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우아하지도 않지만 소박한 기품으로 편안함을 주어 좋다. 선생님을 두고 꽃에다 비유해 보고 싶어 이 꽃 저 꽃을 만나 보았더니 구절초가 딱 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구절초를 만나면 선생님을 떠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보현산의 당당하면서도 겸손한 손끝이 머무는 동숭들에 일렁이는 가을바람은 선생님을 연상시킨다. 그 곳에서 유년과 소년 시절을 보내신 선생님은 맑고 깨끗한 자연의 한 부분이었으리라.
어느 술자리에서 풀어내시는 유년의 추억담을 들으면서,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에도 늘 꿈과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사셨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발짝 걸음에도 애정이 묻어나고, 한 마디 한 마디,던져 주시는 덕담에서 깊은 정을 품어 내시는 인품이 오늘의 스승으로 계시게 함이리라. 아침에 출근 하면 맨 먼저 만나시는 분이 선생님이시다. 수수비를 들고 교문을 쓸고 계시는 선생님을 대하면 송구함을 금할 수 없었다. 등교하는 아이들에게도 아침이 살아서 움직이는 느낌을 주었으리라. 그리고 그 넉넉함과 겸손함으로 하루의 평온함이 시작 될 수 있었으리라.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폐품과 쓰레기를 손수 치우고 정리 하시는 그 모습은 교육자이시기 전에 따뜻한 가슴을 가지신 분임을 느끼게 한다.
일층 교무실 계단 밑에 키 보다 높게 차곡차곡 재워 올리신 빈 박스를 보면 얼마나 깔끔하고 정갈하신지 마치 예술 작품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겨자 색 목 긴 셔츠에 갈색 콤비 저고리를 바쳐 입으시길 즐기시는 자유로움을 풍기시는 선생님, 가슴에 국어책을 보듬고 복도를 걸어가시는 모습은 흉내 낼 수 없는 노 교사의 원력(願力)을 보여 주신다. 수업 마치고 나오시다 복도 기둥에 기대서서 아이들에게 따뜻한 권고와 격려를 즐기시는 선생님을 자주 보았다. 그때마다 선생님의 따뜻한 체취가 디자인고등학교의 겹집 어두운 복도가 밝아지는 것 같았다. 선생님의 부드러운 인간미와 제자 사랑은 후배 선생님들의 귀감이란 점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가을날 고향 길에서 만나는 구절초의 소박한 기품과 같으시다.
정한수의 고요한 맛
선생님의 문학세계는 깊이 알 수 없으나 과문한 한 사람의 독자로서의 느낌으로는 단아한 백자에 새벽이슬을 받아 담은 정화수의 맛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선생님의 살아오신 흔적이 곧 문학이란 생각도 하게 한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곱고, 두 팔 벌리지 않고도 아스라이 보듬어 주고, 마치 늦봄 우물가에 탐스런 앵두 같다고 하면 결례가 될까 우려되기도 하지만, 선생님의 시집 ‘천년의 숨결’을 읽으면서 실제 정갈한 숲 속에서 하룻밤 묵고 나온 기분이었다.
‘얼부푼 바위틈에 살포시 고개 드는 노오란 병아리 물기 터는 몸짓으로 이 아침 빛살을 휘감고 눈을 뜨는 숨소리‘ (숨결 중에서)
그야말로 선생님의 고적하고 정갈한 숨결을 느끼게 한다. 선생님의 시 세계는 어쩌면 자연 그 자체이며 곁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조용조용 걸어오신 사도이기도 하다. 고요한 밤 하느님 앞에 정좌하고 올리는 기도인지도 모를 일이다.
‘한 줌 흙이 된다 해도 신앙이든 그 마음
점점이 수를 놓아 한 세상 여기 살고
결 고운 전설로 엮어 연잎위로 떠온다. (효녀 지은 전문)
선생님의 사람 사랑이 아침 이슬처럼 묻어난다. 선생님의 시는 어머니의 새벽 정화수가 분명하다. 그 맑은 영혼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진 세월 한 타래를 두 손으로 꼬옥 잡고 가슴에 응어리진 핏빛 한을 뜯어내며 마침내 비둘기 한 쌍이 소울 하늘 높게 난다.
주름진 살결 틈에 고개 드는 깊은 사연 눈 감으면 고향 하늘 품에 안겨 숨쉬고 이 아침 쏟아지는 햇살 한 반도를 씻어 준다. (만남2)
어찌 조국의 비극만 일까. 어찌 이산의 아픔 만일까. 인생이 만나고 헤어짐 일진데, 선생님의 그윽한 애인심(愛人心)과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선생님의 문학은 그의 바람대로 영혼이 집을 짓고 살 수 있는 시를 쓰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게 한다.
물처럼 흘러
인생은 이렇게 혹은 저렇게 사는 건가 보다. 그 아득한 유년의 꿈으로 인생의 문을 열어 언덕에 올라 푸른 하늘을 향해 목 놓아 울부짖기도 하고 뽀얀 종아리 동동 걷어 올리고 차가운 시내를 건너 왔다.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청춘을 나누어 주고 이순(耳順)의 고개를 넘어 가시는 모습이 임 가신 돌다리 바라보듯 가슴 아리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마 얼마만큼의 제 바람이 녹아 함께 흐르기 때문이겠지 싶어지기도 한다.
선생님 말씀처럼 ‘어디서 왜 왔는지도 모르게 나타났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바람이나 이슬 같은 삶, 한 줄기 연기처럼 부질없는 인생인데 왜 그렇게 여유 없는 삶을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신 선생님의 말씀 속에 한 줄기 가을바람이 지나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만, 이제 거추장스럽던 겉옷을 벗어 놓고 훨훨 천년의 숨결이 흐르는 숲 속을 넉넉한 마음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얼마만큼의 언덕과 개울을 겪으면서 사시는 것이 차라리 아름다운 인생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이제 지고지순으로 살아오신 생의 여백을 마저 채우시면서 겨울 산을 넘어 가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선생님은 시골 간이역에서 만난 정인이지만 그 여운은 제 삶의 갈피 속에 빛바래지 않고 오래 오래 끼워져 있을 것이다. 삶이 피곤하고 어지러울 때마다 꺼내어 다시 읽고 그리워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선생님의 남은 여정에 평화와 행복이 있으시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