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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고교 살리는 입시안, 대학이 나서야 한다

고려대 이기수 총장이 “2012년 대입시 자율화가 부여되면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획기적인 입시방법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최근의 입시 경향이 내신, 논술에서 서열을 중시하는 수능 중심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목할 만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나비 효과’라는 말처럼 대학에서 만든 입시안은 일선 고교교육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그 파급력이 크다. 대학이 만든 입시안이 치열한 경쟁을 요구하는 방식이라면 고교교육도 경쟁 위주로 갈 수밖에 없고, 경쟁보다는 잠재력이나 소질 등 개인의 창의적 능력을 중심으로 하는 방식이라면 고교교육도 그에 따라가게 마련이다.

2008년도부터 대학입시 업무가 교과부에서 대교협으로 이관되면서 사실상 대학입시는 자율화의 과정을 밟고 있다. 2010학년도 입시는 기존과 큰 차이가 없지만 당장 2011학년도부터는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대학들도 2012학년도의 대입완전자율화를 앞두고 나름대로 유리한 방안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현재 대교협을 통하여 묵시적으로 합의하고 있는 3불(본고사 금지, 고교등급제 금지, 기여입학제 금지)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징후를 올해 입시에서 일정 부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부 대학에서 내신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특목고 출신을 우대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으며, 논술고사도 인문계는 영어 지문이, 자연계는 본고사형 풀이과정이나 정답을 요구하는 문항이 출제됐다.

이와같은 상황을 감안한다면 대입자율화가 이루어지는 2012학년도 입시부터는 본고사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내신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고교등급제가 도입될 개연성이 높다. 상위권을 중심으로 한 대학의 경우, 우수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방안으로 본고사나 고교등급제에 대한 유혹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본고사나 고교등급제가 도입되면 공교육이 파행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이다. 본고사는 사교육이 강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자칫하면 공교육이 교육수요자로부터 외면당할 개연성이 높다. 또한 고교등급제가 시행된다면 명문고와 비명문고의 구분이 확연해져 고교간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은 물론이고 중학교 더 나아가 초등학교까지 입시 열풍에 휘말리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대학이 전형 방법을 결정할 때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안도 중요하지만 공교육이 처한 상황과 그에 따른 부작용까지 충분히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고려대 이기수 총장이 공교육을 살리는 입시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은 대학의 사회적 책무성과 공교육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시의적절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 방안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지는 더 지켜보아야할 문제이지만 공교육 정상화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입시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앞으로 대입자율화가 단계적으로 진행되면서 공교육 활성화의 관건은 정부도, 대교협도 아닌 대학 스스로의 결정에 달려있음은 불문가지다. 물론 대입자율화는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 그렇지만 자율에는 반드시 엄격한 사회적 책무가 따른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대입자율화는 대학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수 학생을 선점하기 위한 구실이 아니라 오히려 교육수요자에 대한 애정과 배려를 통하여 공교육을 살리는 방안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고려대 이기수 총장의 발언을 계기로 다른 대학들도 어떤 전형 방법이 진정 이 땅의 교육을 반석위에 올려 놓을 혜안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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