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의 정기편에 “浴量他人(욕량타인)인댄 先須自量(선수자량)하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남을 헤아리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먼저 나를 헤아려 보라”는 뜻이다. 이어서 나오는 말을 보면 남을 헤아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다. “傷人之語(상인지어)는 還是自傷(환시자상)이니-남을 해치는 말은 도리어 자신을 해치는 말이다”라는 말이 남을 헤아리는 것에 대한 예시다.
또 하나의 예시가 나온다. “含血噴人(함혈분인)이면 先汚其口(선오기구)니라.-피를 머금어 남에게 뿜자면 먼저 제 입을 더럽히게 된다.”라는 말이다. 피를 토할 정도로 남을 더럽히는 것이 바로 자기 입을 더럽히게 되고 자신을 죽이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피를 토할 정도로 분을 품으며 남을 해치고자 함이 결국은 자기를 해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은 남을 헤아리는 것(量)이 말로써 하는 것에 대한 것이지만 여러 가지의 의미가 있음을 보게 된다. ‘量(량)-헤아리다’의 뜻을 가진 한자(漢字)들이 많이 있다. 料(료), 揆(규), 勘(감), 忖(촌) 등이 모두 헤아리다의 뜻을 가진 한자(漢字)다. 이들의 뜻이 '헤아리다'의 뜻도 있지만 ‘달다, 재다, 되다(되질하다)’의 뜻도 있다. 이런 말들은 남에 대하여 마음대로 되질하여 깎아내린다는 뜻이다.
자기는 높이고 남을 깎아내리는 것이 바로 남을 헤아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기의 입장에서 남을 달아보는 것이 정확한 기준이 될 수 있겠는가? 곡물을 파는 이들이 되질할 때 조금이라도 이득을 남기려고 자꾸만 곡물을 깎아내리지 않는가? 그렇지만 그게 이득이 되겠나? 그 뒤부터는 그 사람에게 곡물을 사러 오겠나? 돌아서서 얼마나 욕을 많이 하겠나? 나쁜 사람이라고.
마찬가지다. 자기가 조금 이득을 보려고 남을 깎아내리고 자기가 높아지려고 남을 낮추고 하면 그게 도리어 자신이 손해를 보고 자신이 오히려 낮아짐을 알고 남을 헤아리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신을 냉정하게 되질을 하면서 자신을 깎아내려보면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이 썩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남도 되질을 하게 되면 자기의 마음 이상으로 상할 것임을 알고 남을 되질하거나 깎아내리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量(량)’은 ‘절단하다. 쪼개다’의 뜻이 있다. 남을 절단내기 전에 먼저 자신을 절단내어 보라. 남을 쪼개기 전에 먼저 자신을 쪼개 보라. 남을 난도질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난도질해 보라.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어찌 사람이 자기 자신을 난도질하면서 자신을 망가뜨릴 수가 있겠나? 그럴 수 없을 것이다.
‘量(량)’은 '힐문하다'의 뜻이 있다. 자기가 자신에게 먼저 힐문해 보라. 과연 견뎌낼 수 있겠는가? 괜히 트집을 잡아 거북할 만큼 따지고 들면 좋겠는가? 상대방을 힐문하는 것은 결국 싸움을 걸고 상대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학교 내에서 폭력이 일어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친구를 힐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量(량)’은 ‘미루어 생각하다.’의 뜻도 있다. 그러므로 친구를 보면서 먼저 자신을 생각해 봐야 한다. 주위의 친구들에게서 부족한 점, 비판, 비방, 판단, 욕설, 낮추거나 왕따시키는 것을 보면서 먼저 자신이 부족한 점이 없는지? 친구를 비판한 것이 없는지? 친구를 비방한 것이 없는지? 친구를 판단한 것이 없는지? 친구를 욕한 적은 없는지? 친구를 낮춘 적이 없는지? 친구를 왕따시킨 적은 없는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길 중의 하나가 친구들을 보면서 자신을 미루어 생각하는 것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