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대회 때 보여준 열정이 대학입시 끝날 때까지 이어지길 4월 초 꽃망울을 머금고 있던 벚꽃이 기다렸다는 듯 춘계체육대회가 열리는 날(4월 9일, 목요일)에야 비로소 그 꽃망울 터뜨렸다. 교정 여기저기에 핀 벚꽃은 마치 체육대회를 축하라도 하듯 그 자태를 마음껏 뽐냈다.
오전 9시 30분. 교감선생님의 개회선언과 교장선생님의 축사가 끝나자마자 체육대회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가 울러 퍼졌다. 고3 아이들에게 있어 이번 체육대회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못내 아쉬워하는 듯했다.
예전에 비해 종목이 많이 축소되기는 했으나 짧은 시간과 공간을 고려한 종목들(계주, 줄다리기, 놋다리밟기, 단체 줄넘기, 족구, 2인 3각 등)이 채택되었다. 체육대회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차원에서 학년 별로 진행된 각 경기에서 우승을 할 경우, 학교 측이 예년에 비해 적지 않은 상금을 내건 탓인지 우승을 위한 담임선생님과 아이들의 노력이 남달랐다.
담임을 할 때마다 내가 제일 비중을 두는 종목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학급별 줄다리기였다. 물론 모든 경기가 다 중요하겠지만 학급의 단합된 힘을 보여주는 데는 줄다리기만큼 좋은 것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체육대회마다 내가 맡은 학급 아이들은 줄다리기에서 우승해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그런데 올해 아이들은 그다지 힘쓰는 아이들이 없어 보였다. 내심 올해는 우승을 하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일주일 전부터 줄다리기에 대한 나의 철학을 아이들에게 주입하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줄다리기에서 우승을 할 경우, 피자 열판을 사주겠노라고 약속까지 하였다.
종목마다 아이들은 최선을 다했다. 가끔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이 왠지 대견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사실 매일 밤 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으로 지쳐있는 아이들이기에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충분한 연습이 제대로 되지 않은 터라 내심 아이들의 안전이 신경 쓰였다. 고작해야 체육시간을 통해 연습한 것이 전부였다. 자칫 잘못하여 다치기라도 한다면 공부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무리하지 말고 요령껏 경기에 임하라고 신신당부하였다. 그러면서도 줄다리기 시합을 나갈 때는 죽을힘을 다해 싸울 것을 요구하였다. 모순이었다. 줄다리기에 대한 나의 지나친 집착이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했던 대로 아이들은 모든 종목에서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고 탈락하고 말았다. 담임을 하면서 모든 종목에서 이렇게까지 참패를 당해본 것도 처음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오후에 치르게 될 줄다리기 하나 뿐이었다. 그런데 그다지 기대되지 않았다. 차라리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오후 일정에 따라 학년별 줄다리기 예선이 시작되었다. 1, 2학년 예선이 끝나고, 예선을 치를 다음 학급이 호명되자 왠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리고 시합에 나가는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힘내라고 주문했다. 줄다리기 예선전은 단판이기 때문에 지게 되면 바로 예선탈락이다. 무엇보다 줄다리기는 기선제압이 중요한 만큼 심판의 호각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호흡을 맞춰 줄을 당기라는 시늉까지 보여주며 줄다리기에 대한 나의 집착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마침내 시합이 시작되었다. 심판의 호각소리가 떨어지자 일제히 아이들은 줄을 잡아 당겼다. 막상막하(莫上莫下)였다. 그리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줄이 팽팽하여 어느 팀이 이길 것인가를 예측할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어느 팀이 정신력과 집중력이 더 우위에 있는지가 중요했다. 아이들 옆에서 계속해서 응원을 했다. 그러자 아이들도 구령에 맞춰 힘을 냈다.
잠시 뒤, 그 팽팽했던 줄이 우리 쪽으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힘을 내기 시작하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우리 반의 승리였다. 심판의 판정이 떨어지자 아이들은 마치 줄다리기에서 우승이라도 한 듯 얼싸안고 좋아하였다. 심지어 기쁨에 못 이겨 울음을 토해내는 아이들까지 있었다. 결승전 같은 예선전이었기에 왠지 느낌이 좋았다.
예선전의 기세로 우리 반은 준결승에서도 상대 학급을 가볍게 물리쳤다. 3전 2승제인 결승전, 일대일 무승부에서 다소 불안했으나 예선전에서의 뒷심을 발휘해 우승을 차지하였다. 경기가 끝난 뒤,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아이들 하나 하나를 포옹해 주었다.
학창시절 마지막 체육대회에서 우리 반 아이들은 내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줄다리기에서 보여 준 아이들의 정신력과 집중력이 대학입시까지 이어진다면 모름지기 2010년 대학입시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