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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비끼다’와 ‘비키다’

‘비끼다’와 ‘비키다’는 음운의 차이처럼, 의미에도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다. ‘비끼다’와 ‘비키다’의 정확한 뜻을 알기 위해 표준국어대사전을 검색하면,

‘비끼다’
1. 비스듬히 놓이거나 늘어지다.
- 밤하늘에 남북으로 비낀 은하수
- 이윽고 검은 그림자가 푸른 달빛에 비끼었다…(김동리, ‘사반의 십자가’).
- 밖은 그동안 훤히 동이 터서, 하늘에 비낀 구름들이 연보랏빛으로 곱게 물들었다(홍성원, ‘육이오’).
2. 비스듬히 비치다.
- 주막의 눈썹차양에 하오의 마지막 햇살이 느슨하게 비끼기 시작했다(문순태, ‘타오르는 강).
- 놀이 짙게 비낀 유리창이 먼저 명훈의 눈을 찔러 왔다(이문열, ‘변경’).
3. 얼굴에 어떤 표정이 잠깐 드러나다.
- 그의 눈가에 차가운 웃음이 잠시 비꼈다.
- 나는 차성희의 얼굴에… 홍조가 비낀 것을 보았다(이병주, ‘행복어 사전’).
4. 비스듬히 놓거나 차거나 하다.
- 유리창이 덜거덩거리는 다방 안은 웅성거리고, 바로 앞에는 분노에 찬 숙이가 고개를 비낀 채 앉아 있고…(황순원, ‘나무들 비탈에 서다’).

‘비키다’
1. 무엇을 피하여 있던 곳에서 한쪽으로 자리를 조금 옮기다.
- 길에서 놀던 아이가 자동차 소리에 깜짝 놀라 옆으로 비켰다.
2. 방해가 되는 것을 한쪽으로 조금 옮겨 놓다.
- 통로에 놓였던 쌀독을 옆으로 비켜 놓았다.
3. 무엇을 피하여 방향을 조금 바꾸다.
- 종수는 얼른 대답을 하지 않고 질천이를 조금 비켜 저쪽으로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송기숙, ‘자랏골의 비가’).
- 나는 힘차게 어깨를 흔들어 누나의 손을 뿌리쳤다.
- 그리고 사람들을 비켜 가며 빨리빨리 걸었다(김승옥, ‘염소는 힘이 세다’).
4.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있던 자리를 피하여 다른 곳으로 옮기다.
- 상여가 지나가자 그들은 묵묵히 길을 비켜 주었고 배행하는 문상꾼 삼십여 명의 동학 군사들도 그냥 통과시키고 있었다(유현종, ‘들불’).
- 젊은이들은 웅보한테 인사닦음을 한 뒤에 슬그머니 방에서 나갔다. 오랜만에 만난 형제를 위해 자리를 비켜 주는 듯싶었다(문순태, ‘타오르는 강’).



‘비끼다’는 ‘남북으로 비낀 은하수’나 ‘푸른 달빛에 비끼었다.’라는 표현처럼, ‘비스듬히 놓이거나 늘어진’ 상태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비키다’는 ‘놀던 아이가 자동차 소리에 깜짝 놀라 옆으로 비켰다.’나 ‘쌀독을 옆으로 비켜 놓았다.’라고 하는 것처럼, 주체나 객체가 자리를 옮기는 상황을 표현한다.
이와 어울려 ‘태풍이 비껴가다.’라고 하기도 하고, ‘태풍이 비켜 가다.’라고 하기도 한다. 이는 어느 말이 바른가? 이를 위해 다시 ‘비껴가다’의 뜻을 새겨야 하고. ‘비켜 가다’는 ‘비키다’의 뜻에서 도움을 얻어야 한다.

‘비껴가다’
1. 비스듬히 스쳐 지나다.
- 감방의 천장에 매달린 듯한 봉창에 하루의 마지막 햇살이 비껴가는 것이 보였다(문순태, ‘타오르는 강’).
- 각도는 좋았으나 공은 골대를 살짝 비껴갔다.
2. 어떤 감정, 표정, 모습 따위가 얼굴에 잠깐 스쳐 지나가다.
- 그의 눈가에 후회하는 빛이 비껴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 나는 모든 슬픔이 그녀의 얼굴을 비껴가기를 바라며 살았다.

‘비껴가다’는 ‘비끼다’와 의미가 비슷한 동사로 사전에 따로 올라 있는 단어이다. 반면 ‘비켜 가다’는 ‘비키다’라는 동사에 보조용언을 덧붙여 사용한 표현으로 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태풍이 피해를 안 주고 지나갔다는 표현을 할 때는 ‘비껴가다’라고 해야 한다. ‘비껴가다’에 ‘비스듬히 스쳐 지나다.’라는 표현과 관련된다. 다시 말해서 태풍이 한반도에 비스듬히 스쳐 지난 상황이 적절한 표현이다.

혹자는 ‘비키다’가 ‘무엇을 피하여 방향을 조금 바꾸다.’라는 의미가 있으니, ‘태풍이 비켜 가다.’라는 표현도 바른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미를 따져 보면 그렇지 않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비키다’는 동작 주체가 의도를 가질 때 사용하는 말이다. 태풍이 한반도를 피해가는 것은 어떠한 의도가 내재되어 있지 않다고 볼 때 ‘태풍이 비켜 가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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