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다’와 ‘늦다’는 의미가 비슷하지만, 문맥에 따라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 단어의 뜻을 살펴보면,
‘느리다’ 1. 어떤 동작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다. - 행동이 느리다. 2.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나 기간이 길다. - 그 환자는 회복이 느린 편이다. 3. 기세나 형세가 약하거나 밋밋하다. - 느린 산비탈. 4. 성질이 누그러져 야무지지 못하다. - 그는 성미가 느리다. 5. 꼬임새나 짜임새가 성글거나 느슨하다. - 새끼를 느리게 꼬다. 6. 소리가 높지 아니하면서 늘어져 길다. - 멀리서 느린 육자배기가 들린다.
‘늦다’ Ⅰ. (동사)정해진 때보다 지나다. - 그는 약속 시간에 항상 늦는다. Ⅱ (형용사) 1. 기준이 되는 때보다 뒤져 있다. - 시간이 5분 늦게 간다. 2. 시간이 알맞을 때를 지나 있다. 또는 시기가 한창인 때를 지나 있다. - 우리 일행은 어제보다 늦게 도착했다. 3. 곡조, 동작 따위의 속도가 느리다. - 그는 다른 사람보다 서류 작성이 늦다.
‘느리다’는 어떤 동작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빠르지 않다는 뜻이다. 반대말이 ‘빠르다’이다. 반면 ‘늦다’는 시간적으로 이르지 아니하다는 말로 반대말은 ‘이르다’ 이다. 이 둘은 반대말을 생각하면 쉽게 구분된다. 이를 토대로 다음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검토를 해보자.
1. 행사가 너무 늦게 진행되어서 지루하다. 2. 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모두 늦게 움직이고 있었다. 3. 이 아이는 성장 속도가 남보다 느리다. 4. 그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두 시간 느리다.
위의 예문 1은 문맥으로 보아 ‘행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이나 기간이 길다.’라는 의미다. 따라서 이때는 ‘느리게 진행되어서’라고 해야 한다. 이 문장에서 ‘진행되어서’ 대신에 ‘시작되어서’를 사용한다면, 기준이 되는 때보다 뒤에 시작해 지루하다는 뜻의 표현이니 ‘늦게’라는 부사를 쓸 수 있다. 즉 ‘행사가 너무 늦게 시작되어서 지루하다.’라고 하면 바른 표현이 된다.
2도 마찬가지다. ‘움직이고’라는 표현에서 보듯, 이 표현의 의도는 ‘어떤 동작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다.’이다. 그렇다면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표현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여기서 이 표현도 틀린 어법이 아니라고 우길 수 있다. 즉 ‘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모두 늦게 움직이고 있었다.’라는 표현이 맞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는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정해진 때보다 늦게 움직였다는 세밀한 해석이 뒤따라야 한다.
3은 아이가 커야 하는데, 크지 않고 있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이는 클 때를 지났다는 의미다. 이때는 ‘늦다’라는 형용사가 자연스럽다. ‘올해는 꽃이 느리게 핀다.’라는 문장도 같은 맥락이다. ‘꽃이 느리게 피는’ 진행 과정이 아니라면, ‘꽃이 늦게 피는’ 때를 정확히 말해야 한다.
4도 ‘느리다’가 잘못된 표현이다. 시간이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속도로 간다. 따라서 ‘그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두 시간 느리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처럼 어떤 기준이 되는 시간보다 뒤져 있다고 말할 때는 ‘늦다’가 맞는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