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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강의 이쪽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바쁘다고 생각할 때는 책을 들지 않는다. 시간에 쫓기다보면 읽기를 중단하고 그러다보면 맥이 끊기기 때문에 집중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때는 글 읽기 근처에도 안 간다.

그런데 김훈의 ‘공무도하’는 달랐다. 바쁜 것과 상관없이 출간 소식을 접하고 바로 달려들었다. ‘남한산성’, ‘현의 노래’ 등에서 이미 벅찬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신작이 궁금했다. ‘자전거 여행’, ‘바다의 기별’ 등 그의 산문은 에둘러 말하지 않고 일상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는 언어 표현이 기다려졌다.

책의 제목 ‘공무도하’(公無渡河, 문학동네 펴냄)는 옛 고조선 나루터에서 벌어진 익사 사건이다. 봉두난발의 ‘백수광부’는 걸어서 강을 건너려다 물에 빠져 죽었고, 나루터 사공의 아내 ‘여옥(麗玉)’은 그 미치광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를 불렀다.

설화 속의 백수광부는 말 그대로 미치광이였다. 그래서 강을 건너다 빠져 죽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단순히 미치광이라고도 할 수 없다. 백수광부는 강의 이편이 혹독한 현실 세계라고 믿었던 것은 아닐까. 저편이 피안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강을 건넌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제목은 이러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다. 김훈의 말대로 ‘강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책은 유기적인 서사적 구조가 없다. 그래서 딱히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도 없다. 작가는 사회부 기자 문정수를 통해 ‘강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군상을 열거한다.
 
노목희를 찾아오는 밤에 문정수는 때때로 추적할 수 없고 전할 수 없는 세상에 관하여 노목희에게 말했다. 문정수는 뱀섬을 부수는 폭격기와 기르던 개에 물려 죽은 소년과 아들의 죽음을 버리는 그 어머니 오금자에 관하여 말했다. 그리고 소방청장 표창을 받은 소방관 박옥출의 업무상 배임과 절도, 해망 매립지의 장어와 민들레, 방조제 도로의 교통사고, 세습농부 방천석의 잠적에 관하여 문정수는 말했다. 밤늦은 시간에, 문정수는 혼자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문정수의 말은 듣는 사람이 없어도 무방할 듯싶었다.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 버린 세상에 관하여 문정수가 더듬거리며 말할 때 노목희는 가끔씩, 그랬겠구나……잘했어……내버려둬……괜찮을 거야……응답해주었다(p. 218~219).

‘뱀섬을 부수는 폭격기’의 상황은 ‘매향리 사격장’ 주변으로 연상된다. 그리고 ‘방조제 도로의 교통사고’는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효순과 미순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베트남에서 시집 온 ‘후에’도 어느덧 우리 사회에 편입된 불쌍한 삶의 일부다. ‘오금자, 박옥자, 방천석’은 강의 이편에서 그럭저럭 살아가는 인생이다. 그들은 노목희의 말대로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더 불쌍한(p. 129)’ 축에 들었다.



작가는 한계적 상황에 빠져있는 인물의 불행과 암울한 내면을 삽화처럼 여기저기 체계 없이 옮겨 놓았다. 그들의 삶은 죽은 사람보다 불쌍하다. 하지만 작가는 어떤 감정 이입도 없이 엮어 나간다. 이러한 작가의 집필 의도는 표지 뒷면이 남긴 말에도 함축되어 있다.

‘공무도하가’는 강 건너 피안의 세계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더러운 세상에서 함께 살자는 노래이다. 인간 삶의 먹이와 슬픔, 더러움, 비열함, 희망을 쓸 것이다.(뒤표지에 있는 작가의 말)

이름 없는 개개인의 불쌍한 삶은 신문 기사에 실리지 않는다. 문정수가 부지런히 취재를 해가도 문정수의 상급자인 ‘차장’이 기사거리가 안 된다고 잘라버린다. 너무나 평범해서 신문에조차 나오지 못하지만, 각각의 곡절과 사연이 있다. 공권력에 쫓기고, 공권력에 짓밟히고, 자기 힘이 센 사람들로부터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그렇다고 저항도 할 수 없다. 그저 목숨을 부지하고 침해당하지 않는 범위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편으로 그들은 더러운 인간이다. 화재 현장에 출동해 귀금속을 들고 나오는 박옥출, 늘 세상에서 겉도는 장철수, 딸의 보상금을 들고 삶의 터전을 떠난 아버지 방천석, 아들의 죽음에 숨어살던 오금자. 이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은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러운(p. 35)’ 범위에 든다.

그렇다고 우리는 그들에게 비윤리적이니 비도덕적이니 하면서 관념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 소설을 통해 말하는 삶의 비루함이란 현실이 빚어낸다. 비루함이란 특정한 생산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몫이란 뜻이다. 따라서 하나의 정형을 지닌 것처럼 느껴지는 비루함이란 인간의 조건이며 동시해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차원에서든 우리는 이 비루함을 통해 인간 존재를 구원하고 동시에 사회를 정화해야 한다. 

  강의 이쪽에 있는 사람들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욕망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약자다. 하나같이 결핍되고 주변화 되고 낙오된 문제적 인물이다. 이들은 모두 타자에게 상처받고, 심신이 감당하기 힘든 삶의 짐을 지고 힘겹게 산다. 인간이 밟고 가야할 곤혹스러움, 몸으로 겪어야 하는 비극적 존재감은 원초적인 인간 상황으로 버릴 수 없는 역사 속의 인간의 모습이다.

개개인이 겪는 고통은 근원을 캐면 함께 사는 사회가 안겨 준 짐이다. 이 말은 문제의 해결도 결국 사회에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거대한 사회는 조그만 개인을 돌보지 않는다. 그들의 고통을 보듬어야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위선의 탈을 쓰고 있다. ‘극동군사령부 샘 워커 중령은 축사에서 해저 고철 인양사업을 장기간에 걸친 군의 공습훈련의 결과가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행복한 사례(p. 311)’라고 말한다. 공습 훈련의 폐해는 감춰두고 경제적 이익이 된다는 강자의 논리로 포장한다. 이는 고단한 삶이 이웃과 사회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번 소설에서 신문사 사회부 기자 문정수를 내세운 것은 의미가 있다. 사회부 기자는 사건 사고 담당 기자로 경찰서, 사건 현장 등을 취재한다. 신문 사회면은 우리의 가장 현실적인 삶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또 신문 기자의 눈은 사실의 촉수가 발달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 문정수가 보는 소설의 내용은 ‘사실이 허구화되었다’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작가가 젊은 시절 신문 기자 경험이 있다는 것도 세상을 꼼꼼히 전달하는데 기여한다. 그래서 작가는 일상을 향해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듯 단문으로 말한다. 자연적인 현상을 만난 것처럼 일체의 감정을 배제하고 건조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김훈은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로 인해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런 점에서 당대의 현실을 향해 초점을 맞춘 이번 소설 ‘공무도하’는 의외의 결과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사라는 것도 결국은 ‘과거의 당대’로 그것도 인간이 살고 있는 오늘의 세상이다. 즉 작가 김훈은 역사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사는 사람들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삶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품고 그 해답을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신문 기자는 사회적 약자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도 선도적 역할을 한다. 따라서 작가 김훈의 글쓰기 변모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넌지시 보여주기 위한 은유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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