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쑥하지 못하고 민첩하지 못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꼬집을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다. ‘어리숙하다’라는 말이다. 이는 언론 매체에도 보인다.
○특히 김춘추는 어리숙한 얼굴 뒤에 숨은 독기와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비쳤던 비담의 첫 등장과 흡사했다(조이뉴스24, 2009년 9월 16일).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시금 주목 받고 있는 김종민은 경직된 모습이 약간은 어색해보이지만 여전히 어리숙한 표정과 말투로 일련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조선일보, 2010년 1월 7일).
○그 중 이시영은 주인공 남녀를 괴롭히는 전형적인 악녀. 하지만 다소 어리숙한 모습과 귀여운 이미지를 담아 ‘욕만 얻어먹는 못된 악녀’란 오명에서는 한 발짝 비켜나 있다(스포츠조선, 2010년 5월 11일).
하지만 ‘어리숙하다’는 잘못된 말이다. 이는 ‘어수룩하다’가 바른 말이다.
‘어수룩하다’
1. 말이나 행동이 매우 숫되고 후하다.
- 그 사람은 어수룩한 시골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서 많은 돈을 모았다.
2. 되바라지지 않고 매우 어리석은 데가 있다.
- 네게 호락호락 넘어갈 만큼 그녀는 어수룩하지 않다.
3. 제도나 규율에 의한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 매우 느슨하다.
- 세상이 그렇게 어수룩한 줄 알았니?
이 단어는 김유정의 ‘봄봄’이라는 소설에도 보인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내가 일도 참 잘하고 그리고 사람이 좀 어수룩하니까 장인님이 잔뜩 붙들고 놓질 않는다’며 장인이 점순이와의 성례를 시켜주지 않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어수룩하다’를 써야 할 자리에 잘못된 ‘어리숙하다’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어리석다’라는 형용사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즉, ‘어수룩하다’를 ‘말이나 행동이 매우 숫되고 후하다’라는 의미를 이용해 인물의 상황을 표현할 쓸 때는 ‘어리석다’의 의미와 통한다. 그러다보니 두 단어의 일부 음절이 이루어져 ‘어리숙하다’는 엉뚱한 말이 만들어졌다.
참고로 ‘주머니 따위에 돈이나 물건이 줄거나 없어져 적다’는 단어로 ‘쌀자루가 허룩하다’처럼 ‘허룩하다’는 형용사를 쓴다. 이에 대한 표현은 박종화의 ‘다정불심’에서도 ‘산같이 쌓인 명주 필이 허룩하게 줄어들고 비단 필을 찢는 소리는 삼현 육각 틈에 휘파람 소리같이 쏟아진다’는 표현이 보인다.
‘헙수룩하다’라는 형용사도 있다. 이는 ‘머리털이나 수염이 자라서 텁수룩하다(헙수룩한 머리를 질끈 동여맸다. 수염이 헙수룩한 늙은이가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라고 쓰거나, ‘옷차림이 어지럽고 허름하다(헙수룩하게 차린 아주머니 한 분이 차비를 좀 빌려 달라며 다가왔다)’라고 사용한다.
그런데 ‘허룩하다’나 ‘헙수룩하다’ 대신에 ‘허수룩하다’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사전에 없는 말이다. 국어사전에 없다는 것은 현실에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뜻이다. 가려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