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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미워하지 말고 가만히 둬요

“자, 한 학기 동안 수고들 하셨습니다. 오늘 점심은 학교에서 여러 선생님들의 수고에 보답하기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이곳 사정을 다 아시기 때문에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만, 특별히 마련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발령을 받아서 첫 학기를 마치는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통지표를 들려 보내고 이제 방학의 즐거움에 집에 가서 한 달 동안을 살게 될 일이 가슴은 부풀어 있었습니다. 비록 이웃 군이라는 하지만 객지에서 보낸 만 4개월이 퍽이나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한 학기를 무사히 보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도 들었습니다.

이런 들뜬 기분에 참으로 오랜만에 학교에서 사준 점심 한 끼가 가슴 설레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학교는 분교로 본교에 교장선생님이 계시고 여기는 환갑을 맞으시는 분이 분교장으로 계시지만 여러 가지로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본교의 지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여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 학기가 다 가도록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식사를 대접한 일을 이게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전 직원이라고 해봤자 선생님 7분과 학교 심부름을 하는 청부(지금은 기사라고 부르지만 그땐 이렇게 불렀음) 1명이 고작이었습니다. 식사를 준비한 집도 학교 이웃에 있는 주막집이었습니다. 따로 음식점이 없던 1964년의 우리 농촌 학교는 대부분이 이런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도시에 있는 학교도 아니고, 그렇다고 면 소재지도 아닌 리 단위의 학교가 전국적으로 수없이 새로 세워지던 시절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학교에 발령을 받아서 이제 갓 깨어난 병아리 교사가 첫 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상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앉은 선생님들이 밥을 먹기 전에 우선 술을 한잔씩 따르도록 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교사 중에서 막내인 내 몫이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앉아서 공손히 두 손으로 주전자를 받쳐 들고 선배님들의 술잔에 차례차례 한잔씩을 따르고 있을 때였습니다.

“여기 선생님들 계십니까? 2학년 선생님이 누구요?”

나이 40이 넘어 보이는 아이 아버지가 2학년 담임을 찾는 것입니다.

“2학년 몇 반인데요?”

역시 가장 나이 어린 내가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2학년 2반 선생님 좀 불러 주시오.”

누가 보아도 좋은 일은 아닌 불상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고, 찾아오신 분의 차림으로 보아 제법 출입깨나 하시는 분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이런 대화가 오가는 것을 들은 방안에 계시던 선배님들 중에서 이 고장 출신의 두 분 선배 선생님들이 나오시면서 “아니 공 위원장님 어쩐 일이십니까?”하고, 새텃말 선생님이 말씀하시고 인사를 드리자 뒤따르던 봉용말 선생님이 “아니 갑철이 아버지가 무슨 일이십니까?”하시면서 공손히 인사를 하시면서 “그러지 마시고 이리 들어오십시오. 오늘 방학식을 하고 선생님들 점심 먹으려던 참입니다. 이리 오셔서 술도 한 잔 하시고 그러십시다”하고 권하셨습니다.

나는 갑철이 아버지라는 말에 내 반의 말썽꾸러기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또 무슨 일일까?’ 하고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제 갓 발령을 받은 내가 혹시 무슨 실수를 한 것은 아닐까? 만약 잘 못한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짧은 순간에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재빠르게 움직여 가고 있었습니다.

갑철이 아버지는 이 고장의 선생님들이 권하는 것도 들은 척도 하지 않으시고, “어이, 2학년 2반 선생이 누군가?” 묻는 말에 내가 앞으로 나서면서 “제가 2학년 2반 담임입니다만 무슨 일이십니까?”하고 정중히 인사를 드리자, 위 아래로 훑어보시던 학부모님은 “그래요? 선생님 아주 새파란 애송이 같은 데, 우리 아이가 정말 이렇게 공부를 못한 겁니까 아니면 당신이 미워서 그렇게 해 버린 겁니까?” 사뭇 시비조로 따지고 드는 갑철이 아버지를 보고, 같은 마을에 사시는 이 선생님이 나서시면서 말리려 하셨다.

“임형 ! (같은 마을에 사는 분이니까 갑철이 아버지를 이렇게 불렀음) 그게 무슨 말이신가? 이 선생님이 얼마나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노력을 하시고 아이들을 아끼는 분인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데?”하고 말씀을 하시는 것을 가로막으면서 갑철이 아버지는 버럭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그만 두게. 자네도 선생이라고 마을 사람은 제쳐 두고 그렇게 선생 편만 드는 건가?” 이 말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이 선생님이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이제 막 식사가 시작되었는데, 들어와서 같이 이야기 나누면 안 되겠는가?” “누가 자네더러 나오라고 했는가? 자넨 어서 식사를 하게나. 난 우리 아이 담임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겠단 말이네.”

이쯤 되자 이 마을에서 오래 사셨던 대 선배 선생님이 나서시면서 “자네 왔는가? 이제 막 식사를 시작하려는 참인데 이래가지고 어디 밥을 먹겠는가? 이리 들어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밥을 다 먹은 다음에 오면 안 되겠는가?”하시면서 나오시자, 공손히 머리를 숙여 인사를 드리면서 “선생님 소란을 피워서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잠시 담임선생님하고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어서 왔으니, 다른 선생님들은 점심을 드십시오”하자 선생님은 목소리를 가다듬어서 “그게 무슨 소린가? 그래 오늘 같은 날 같이 밥을 못 먹게 저 사람을 불러내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개도 밥 먹을 때는 건드리지 않는 법이야. 이 사람아”하고 나무라시자,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리면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어서 점심들 드십시오. 제가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하면서 얼른 주막집을 떠나 마을 쪽으로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서들 잡수십시오. 제가 가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오겠습니다”하자, 다른 선배 선생님들이 말리면서 “아냐, 저 사람 동네에서도 꼴통으로 소문이 난 사람이니까 이제 우리말을 잘 듣고 가야 돼. 잘 못하면 저 사람에게 혼이 날 거야”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그 말에 더욱 화가 나서 “제가 무얼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사죄하고 잘못이 없다면 당당히 밝혀 주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동네에서 막 나가는 분이라지만 무서울 게 없지 않습니까? 제가 만나고 오겠습니다. 점심들 드십시오”하고서 나는 임갑철이의 아버지를 따라 가면서 불러 세웠습니다.

“저, 임갑철이 아버님, 무슨 일이신 지 교실로 오십시오. 저하고 이야기 나누시죠”하자 저 만치 가던 갑철이 아버지가 다시 되돌아 와서 함께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저 갑철이 담임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무엇이 잘못 되었습니까?”

“그래요. 우리 갑철이가 이렇게 공부를 못한 겁니까, 아니면 선생님이 갑철이가 미워서 이렇게 성적이 나쁘게 된 것입니까?”

이 말을 들은 나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어디 성적을 선생님이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까? 그 때만 하여도 시험을 봐서 시험 성적대로 성적을 매기는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 시험을 보아야 하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초등학교에서도 시험 성적이 무척이나 중요시되었고, 매년 학기말에는 우등상을 주는 일 때문에 아이들은 늘 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미워서 이렇게 나쁜 성적을 주었다니 이런 수도 있다는 말인가 싶어서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면서
“아니 성적은 시험을 봐서 하는 것이지 어떻게 선생님이 마음대로 주는 것입니까? 어디에 그렇게 매긴 성적도 있다는 말인가요?”하고 따졌더니, 당장 불호령이 떨어 졌습니다.

“아니 뭐요? 아주 새파란 젊은이가 어른에게 이게 뭐하는 짓이요?”

“왜 제가 잘못 말씀 드렸나요? 아이 성적이 나쁜 것은 댁의 아드님이 공부를 하지 않은 탓이지 그게 왜 제 탓이란 말입니까? 정 제 말이 못 미더우면 여기 시험 성적들을 적은 기록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래도 못 믿겠다면 저기 시험지들을 일일이 챙겨 보십시오. 아무리 새파랗고 젊은 선생이지만, 제가 그렇게 아무렇게나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전 당당히 밝히고 말겠습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 했는지 찾아서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여기 같이 있을 까요, 아니면 혼자서 일일이 대조해 보시겠습니까?”

이렇게 분명하게 이야기를 하자 조금은 수그러드는 것 같았지만, 나이 드신 분에 대한 대접이 아닌 것만 같아서 “제가 너무 흥분했으면 사죄드립니다. 그런데 시험지와 비교해서 다른 것이 있으면 말씀 하시기 바랍니다. 전 정말 틀림이 없이 한다고 했으니까요”하자, 망연히 앉아 계시던 갑철이 아버지가 나에게 “들어가서 점심 드시오. 내가 제 자식의 공부한 것을 일일이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하는 것을 내가  “아닙니다. 제가 옆에서 일일이 챙겨 드리죠. 못 믿게 하였다면 제 잘 못이니까요”하자, 다시 나를 바라보면서 “선생님은 제 자식이 공부를 안 했다지만, 작년에는 저 아래 본교에서 1등을 했던 아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양, 가'가 수두룩하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글쎄 작년에 일등을 했는지 꼴등을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시험 성적이 그것뿐인데 어찌하란 말입니까? 그렇게 공부를 잘 시키시려면 집에서 좀 가르쳐 주시던가요. 집에서 관심을 안가져 가지고 준비도 잘 해오지 않고 늘 맨 손으로 와서 멍하니 앉아 있기도 잘 하는데요.”

“그거 보시오,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미워하고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럼 준비를 안 해오면 해오라고 안 하셨어요?”

“선생이 뭐하는 사람인데 그런 말도 하지 않고 이제 와서 이렇게 말을 할까요? 동네 아이들에게 물어 보시면 알 거 아닙니까? 제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댁의 아드님이 잘 못해 왔는지 말입니다.”

“그래요. 그럼 시험 성적이 나빠서 성적은 나빴다고 합시다. 특별 활동은 왜 우리 아이가 '하'를 맞아야 하는 거요.”

“방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제 2학년이 무엇을 얼마나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준비는 해 가지고 와서 함께 참여라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맨날 빈손으로 와서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나 부리는데 어떻게 좋은 점수를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자, 아이 성적을 제가 미워서 나쁘게 주었다고 했으니까 확인을 하시고 말씀하시죠. 어디 단 한자라도 제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나는 학급경영록을 활짝 펼쳐서 갑철이 아버지 앞에 펴놓았습니다. 정말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그리고, 진짜 갑철이가 성적이 나쁜 것인지 확인을 해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펼쳐 보이자 더 이상 볼 자신이 없었던지 “성적이고 특별 활동이고 선생님이 그렇게 말을 하니 믿겠소. 그러나 난 지금도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미워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오.”

“전 미워한 적이 없는데요. 제가 댁의 아드님을 미워하고 있다고 하시니 그럼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말씀하시면 그렇게 해 드려야 할 일이라면 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듣자, 갑철이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면서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미워하지 말고, 가만히 좀 놔 둬 주시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무엇을 하던지 그냥 놔줄까요?”

“그래주시오. 미워하지만 말고 말이오.”

“미워하였다고 자꾸 이야기를 하시는데 전 분명히 그렇지 않았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난 믿을 수가 없소. 그러니까 이제 내 아이는 가만히 놔주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공부를 하든 말든, 싸움을 하더라도 갑철이는 나무라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되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래주시오.”

“잘 알겠습니다. 염려 마시고 돌아가십시오. 틀림없이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이렇게 이야기는 끝이 나고 갑철이 아버지는 돌아갔습니다. 선생님들이 점심을 먹는 곳으로 갔을 때는 이미 다른 선생님들의 식사는 끝이 나고 말았었습니다. 내가 들어서자 선생님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였는지 듣고 싶어 하였습니다. 대략 이야기를 전하자 같은 동네 선배 선생님들께서는 고소해 하면서 “자네 대단해. 그 사람 고집에 이긴 사람이 없었어. 누구든지 자기주장을 안 들으면 그냥 두지 않은 사람이거든. 그런데 자네가 그 사람의 고집을 꺾은 거야. 이제 정말 그 사람의 콧대를 꺾어 놓아야 하겠군”하시는 말에 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바라보자 “그 사람 해달라는 대로 정 말 그 아이를 가만히 놔 둘 것인가?”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예, 당연히 가만히 놔 둬야지요. 제가 잘못했다고 가만히 놔 둬 달라고 하는데 그럼 어쩝니까? 그냥 놔 둬야지요. 가만히 놔 둘 겁니다. 싸우건, 숙제를 안 하건, 교실에서 잠을 자건 그냥 놔두어야지요. 숙제를 안 해와도 놔두고 다른 아이와 싸워도 그 아이는 나무라지 않아야지요. 그렇게 해달라는데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와아, 자네 최고야. 정말 그렇게 할 자신이 있는가?”

“물론입니다. 전 할 겁니다. 그냥 놔둬야지요. 어디 함부로 합니까?”

이 말을 들은 세 분의 이 고장의 선배님들은 가만히 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빙긋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2학기 동안에 나는 정말 약속을 지켜내었습니다. 한 학기 내내 갑철이는 자유로운 아이였습니다. 아무런 잘못을 한 적이 없는 듯이 한없이 자기 마음대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잠을 자기도 하고 공부시간에 밖으로 나가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약속을 한 대로 그냥 놔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담임으로 너무 속이 상하고 어떻게 해주어야 할 것만 같았지만,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숙제검사까지도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 앞의 아이까지는 숙제 검사를 하다가도 갑철이 만은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2월말 2학년의 마지막 성적표인 통지표를 받은 갑철이는 더욱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갑철이의 성적은 거의 바닥권 이었습니다. 성적표에 우를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미가 대부분이고 양과 가까지 보였습니다.

나도 이런 성적표를 보면서 한없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무리 관심을 갖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추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정말 무서운 결과였습니다.

새 학기가 되는 3월이 되자, 갑철이 아버지가 학교를 찾아 왔습니다. 3학년 담임에게 선물까지 사들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65년 당시에는 최고급에 속하던 '조광표 와이셔츠'를 한 벌 사 가지고 담임을 찾아와서 “선생님, 제발 우리 아이를 때려서라도 바르게 가르쳐 주시오. 지난해 내가 잘 못해서 가만히 놔둬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저 자식 정말 버릴 것 같소. 잘 부탁합니다. 이제 때려서라도 제 자식 사람 만들어 주시오”하고, 심심 당부를 하였답니다.

이 말을 들은 동네 선배 선생님들은 “자네가 우리 마을 최고 고집을 완전히 꺾었네. 완전히 꼬리를 내렸어. 담임에게 사정을 하더라는 것이 아닌가? 자네 정말 잘 해주었어”하면서 등을 두들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가슴에 꽉 내리 누르는 것만 같은 답답함에 더 이상 좋아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오직 그 아이가 정말 제대로 잘 자라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습니다. 새 학년의 담임선생님께 지난해 내가 했던 잘못을 사과하면서 꼭 제대로 좀 가르쳐 주시라는 당부를 하고 또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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