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직장인 10명 중 9명은 우리나라 사회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1.7%가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 걸쳐 개혁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개혁이 가장 시급히 이뤄져야 할 분야는 ‘정치’(72.0%)가 꼽혔다. 이러한 조사의 근저에는 정치에 대한 기대가 크고 또한 우리 사회에서 정치가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엉뚱한 이야기지만 우리 사회에서 정치 다음으로 텔레비전도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해 본다. 1961년 우리 사회에 텔레비전이 처음 도입된 이후 거의 모든 가정이 텔레비전을 거실의 중심에 놓고 있다. 70년대 산업화와 80년대 컬러텔레비전의 발전으로 미디어 문화는 급성장을 했다. 특히 90년대 말 이후에는 인터넷 보급까지 확산되면서 텔레비전 문화는 생활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텔레비전의 기술적 측면은 눈부시게 발전하는 것에 비해 콘텐츠는 후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지난 일요일에 있었던 SBS의 ‘런닝맨’은 이러한 예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다른 방송국도 그랬지만 최근 SBS는 일요일 예능프로그램에 집중을 했다. 하지만 타 방송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현상이 뚜렷했다. 그래서 미인계를 썼던 ‘골드미스가 간다’를 서둘러 종영하고, 월드컵 특집 예능 ‘태극기 휘날리며’도 일찍 문을 닫았다. 급기야 위기를 느낀 SBS는 ‘패밀리가 떴다2’까지 조기 종영하고, 부랴부랴 유재석을 등용했다. 즉, 11일 방송되는 ‘런닝맨’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롭게 만든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런닝맨’은 새로움이 저혀 없었다. 김종국, 하하 등 늘 보던 캐릭터가 식상하다. 미션 수행이라는 게임도 지겹도록 보던 틀이다. 농촌이라는 공간만 떠났지, 뛰고 장난치고 하는 것은 여전했다. 가위, 바위, 보를 하는 게임도 더 민망해졌을 뿐 빠지지 않았다. 이효리는 여전히 게임을 하면서 반칙을 즐기고 있다.
SBS뿐만 아니라 KBS, MBC에서 실시하고 있는 예능프로그램도 내용을 바꾸던지 아니면 프로그램을 종료해야 한다. 매주 이곳저곳 찾아다며 잠자리 복불복 게임을 하는 것은 이제 식상하다. 출연진이 고통을 당하는 장면도 한두 번이지 이쯤 되면 너도나도 지겹다. 또 지적하고 싶은 것은 중복 출연이 도를 넘었다. 지금 유재석은 ‘무한도전’, ‘놀러와’, ‘해피투게더’에서 메인 MC를 하고 있다. 거기다 다시 ‘런닝맨’으로 돌아왔다. 이쯤 되면 텔레비전은 지겹다 못해 잔인함이 느껴진다.
이러한 현상은 오직 시청률에 매달리는 방송의 현실이 낳은 결과이다. 시청률은 광고 시장과 직결되어 있어 상업 방송사로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건전한 문화 건설도 중요하다. 방송도 철학이 있어야 하고 그로 인해 대중을 이끄는 역할도 해야 한다. 방송은 공적 도구이다. 대중의 건전한 의식 확산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출연자들이 탄 상금을 기부한다고 공기(公器)로써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주제 선정부터 충실한 정보 전달과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프로그램의 제작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방송국은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진행자와 출연자를 찾고, 우수한 문화 콘텐츠 개발을 위해 발길을 내딛어야 한다.
간혹 텔레비전의 무용론이 대두되기도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텔레비전은 없어서는 안 되는 오락물이다. 오락 프로그램은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진 사람들에게 숨 돌릴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락 프로그램도 품격이 있어야 한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각본도 없이 말장난을 하면서 노는 내용은 방송으로 적합하지 않다.
현대인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일로 피로해진 심신을 달랜다. 이는 현대인들이 텔레비전을 통해서 사회에서 일탈하지 않고 원만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을 얻고 있다. 세상은 더욱 각박해져 가고 있다. 텔레비전이라도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주어야 한다. 또한 인간은 원초적으로 보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이 욕망에 대해 현재로서 어떤 식으로든 텔레비전이 충족시켜야 한다.
건전한 방송을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가장 먼저 방송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필요하다. 시민 단체와 공적 기구를 중심으로 불량 방송에 대한 경고를 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 방송계는 전문가 집단이다. 필요성만 공유한다면 우리 방송계는 놀라운 발전을 할 수 있다. 방송 당국은 방송 인력을 강력한 콘텐츠 개발 목표 중심의 조직으로 바꾸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계획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인프라가 구축된다면 앞으로가 훨씬 편해진다. 변화와 혁신은 처음에는 심리적으로 부담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영속적인 가치를 생산한다. 지난주에 본 프로그램을 이번 주에 보고 그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시 또 보는 것은 식상하다 못해 고역이다. 우리나라 텔레비전도 변화와 혁신의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