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구두 두 켤레 굽갈이를 하였다. 굽이 닳아 보기에 안 좋고 품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잘 손질되지 않은 구두를 보면 왠지 게으름이 떠오르는 것이다. 모 제화회사의 광고 문안 '구두는 패션의 완성'이 각인되어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른다.
신던 구두가 유명제화라 백화점마다 점포가 있다. 하나는 1만 2000원, 또 하나는 1만원의 선불을 주었다. 7월 하순에 맡겨 8월 중순에 찾았다. 구두를 찾고 나서 자꾸 구두를 살펴본다. 뒷굽을 유심히 본다. 혹시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굽갈이 한 것을 눈치채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문득 윤흥길의 단편소설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가 떠오른다. 대학은 나오고 도시빈민으로 전락한 권씨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구두이다. 셋방살림이 어려워도 10켤레의 구두를 깨끗이 닦고 하루에 한 번씩 구두를 갈아 신는다. 어느 날 그는 부인이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주인집을 대상으로 복면 강도짓을 하다 들켜 자존심이 상한 채 가출하여 돌아오지 않는다. 집에는 아홉켤레의 구두만 남아 있다.
필자의 신발장을 살펴보았다. 구두를 세어보니 총 여섯켤레다. 검은색이 네 켤레, 브라운 계통이 두 켤레. 가장 새 것이 3년 전에 산 것이다. 총각 때 신던 것도 두 켤레나 된다. 그러니까 그 구두는 20년이 넘은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바닥에 구멍이 났다. 비 오지 않는 날 가끔 신은 기억이 난다.
나 같은 사람만 있으면 구두점은 다 굶어 죽겠다. 구두굽이 닳았으면, 어느 정도 신어 헌 것이 되었으면 버리고 새 구두를 사야 하는데 구두마다 최소 1회 정도는 구두를 갈아 신으니 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굽갈이를 3회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경험으로 볼 때 구두 수명이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이상하다. 새 구두를 신으면 발걸음이 활기가 차고 음식점 등에서 구두를 자랑스럽게 벗어 놓는다. 그러나 헌 구두는 왠지 감추고 싶다.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다. 검소한 것은 챙피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필자의 유년기, 그 당시 어른들은 구두굽에 쇠징을 박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구두쇠를 박은 것이다.
한 5년 전만해도 집에서 구두닦이가 일상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베란다에서 구두를 닦았다. 솔질을 하고 구두약을 바르고 융 헝겊으로 윤을 낸다. 그리고 얼굴을 비추어 본다. 만족감을 느끼고 신발장에 구두를 정리 한다. 이게 바로 생활의 여유다.
그러나 요즘은 게을러졌는지 생활의 여유가 없는지 정서가 메말랐는지, 나 자신 가꾸기에 관심이 부족한지 구두 관리가 소홀해졌다. 비에 젖었는데도 흙이 묻었는데도 그냥 둔다. 오늘 구두를 살펴보면서 '생활에 대한 애정'을 생각해 본다. 혹시 삶에 대한 활력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