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11월 18일) 십여 일을 앞둔 고3 교실은 한 점이라도 더 올리려는 아이들의 향학열로 불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일찌감치 수시모집에 합격하여 수능시험이 무의미해진 아이들이 막바지 수능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아이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능과 관계없이 학교 내신과 면접, 적성검사, 논술 등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이 수학능력시험일 이전에 합격자를 발표함에 따라 수시모집에 최종 합격한 아이들의 경우, 지난 9월 초에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원서를 낸 아이들은 수능포기각서와 관계없이 구태여 수능시험에 응시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합격 이후, 아이들의 해이해진 마음이 막바지 최선을 다하고 있는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 앞선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 수시모집에 합격한 아이들을 무작정 귀가시키는 것도 문제가 많다. 그렇지 않아도 연말연시 기분이 들뜬 시기에 입시에 대한 해방감으로 아이들의 행동이 무질서해질 수가 있다.
본교의 경우, 아이들 대부분이 수시모집에 합격한 상태(11월 01일 기준)이기 때문에 수능시험을 꼭 치러야 할 아이들(수능 최저학력 만족)은 실제 20퍼센트에도 못 미친다. 따라서 수시모집에 합격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특별 프로그램(영어회화, 일본어회화, 한자쓰기, 컴퓨터교육 등)을 짜서 운영하고 있지만, 교사들은 수시모집에 합격한 아이들의 생활지도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대학진학지도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을 알면서도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시도교육청은 수시모집에 합격한 아이들이 수능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공문을 보내고 있지만 어느 정도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 지가 의심스럽다. 아이들을 설득시키는 것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법. 설령 아이들을 설득시켜 시험을 치르게 한다 할지라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최근 2학기 수시모집 전형에서 전문대를 포함해 4년제 대학 세 군데에 합격한 한 여학생이 담임인 내게 우스갯소리로 한 이야기가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아이의 말이 그다지 기분 나쁘게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선생님, 수능시험 꼭 봐야 하나요? 그리고 시험을 보지 않으면 수능응시료 환급해 줘야 하지 않나요? 돈 때문이라도 시험 봐야 되겠죠?”
그런데 그 아이의 마지막 말은 교사로서 한 번쯤 생각해 보는 대목이었다. 사실 수능원서 접수일이 수시모집 전형일자보다 앞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학합격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비싼 응시료(3개 영역 이하 3만7000원, 4개 영역 4만2000원, 5개 영역 4만7000원)를 내면서까지 수능원서를 제출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국가는 수시모집에 합격한 아이들이 수능시험에 응시하지 않을 경우 전형료 일부를 돌려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수시모집에 지원할 기회를 많이 부여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로 인해 학부모가 부담해야 할 전형료 또한 만만치 않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수도권 일부 사립대학이 2011년 수시모집 전형료로 벌어들인 수익금이 무려 수십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국가와 대학이 수험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장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수시모집에 12개 대학에 지원한 우리 학급의 한 아이는 수시모집 전형료로 약 80여만 원의 돈을 지출했다. 더군다나 지원한 모든 대학에 면접과 논술을 보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까지 가는 경비를 포함해 숙식비까지 수시모집에 지출되는 총비용이 무려 100만 원이 훨씬 넘어 학부모의 부담이 이루 말할 수 없다. 학부모의 부담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라도 국가 차원에서 명확한 대책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아무쪼록 이십 여일도 채 남지 않은 대학입시를 위해 불철주야 최선을 다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수시모집 부작용으로 마음이 멍들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무엇보다 수시모집에 합격한 아이들이 응시원서를 낸 만큼 꼭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배운 지식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는 장(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