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해가 갔다. 한해가 가는 순간은 아쉬운 마음이 교차한다. 올해는 특히 10년 단위의 시대를 접고, 새로운 10년대가 열리는 순간이기 때문에 감회가 새롭다. 그래서인지 날이 추운데도 보신각 주변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인파가 사라지는 해를 아쉬워했다. 방송에서도 아나운서가 2010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며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같은 시간 표현을 두고 ‘2010년 12월 31일 자정’이라는 표현과 ‘31일 밤 12시’를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어느 표현이 바른 것인가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 즉 ‘자정’은 하루의 시작이니 ‘밤 12시’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이는 특별히 틀렸다고 할 것은 없고 의미를 정확히 알고 사용하는 습관이 필요할 뿐이다.
우선 ‘자정’의 뜻을 새기면
자시(子時)의 한가운데. 밤 열두 시를 이른다.
- 자정 무렵
- 자정이 지난 시간
-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
-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하느라 고단한 것도 잊고 자정을 넘겼다.
- 그는 사업으로 바빠 자정이 넘어서 귀가하는 날이 많다.
사전을 보면 ‘자정’은 자시(子時)의 한가운데 시간으로, 밤 열두 시를 가리킨다. 이런 뜻풀이로 보아 ‘31일 자정’은 ‘31일의 밤 12시’와 같은 뜻이다. 방송에서 아나운서도 새해 1월 1일이 시작되는 분기점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시’는 십이시의 첫째 시임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31일 자정’은 ‘31일 밤 12시’라고 쓸 수 없다고 말한다. 즉 ‘자정’과 ‘밤’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자정’이 하루의 시작인지 끝인지는 화자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느냐와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뜻풀이를 명시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 이는 어떤 절대적 기준을 설정하기 어려운 탓으로 보인다. 결국 사전도 이러한 언어 현실을 반영해 ‘31일 자정’과 ‘31일의 밤 12시’는 같은 시각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때를 31일 0시라고 표현하는 것은 틀린 표현이다. ‘영시(零時)’는 이십사 시간제에서 하루가 시작하는 시각이다. 즉 24시부터 1시까지의 사이다. 그렇다면 정확한 표현은 1월 1일 0시가 된다. 이와 비슷한 단어로 ‘주말’이 있다.
사전을 편찬할 때 일요일이 한 주의 첫날인지 월요일인지 고민이 있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때도 사전은 언어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는 쪽으로 결론을 지었다고 한다. 즉 사전에는 ‘주말’은 ‘한 주일의 끝 무렵. 주로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를 이른다.’고 풀이하고 있다. ‘일요일’은 달력에는 주의 처음으로 보이지만 월요일을 기준으로 한 주의 마지막 날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으로 합의한 것이다.
이날 보신각에서 치러진 ‘제야’ 행사도 정확한 언어 표현이 아쉬웠다. 방송사는 ‘제야의 밤’이니 ‘송년 제야의 밤’이라는 표현을 했다. ‘제야’는 ‘제석(除夕)’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섣달 그믐날 밤’을 뜻한다. 한자 의미를 새겨도 ‘제(除)’는 ‘덜다, 없애다, 버리다’란 뜻이고 ‘야(夜)’는 ‘밤’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제야’는 이미 ‘밤’이 들어 있는 말이다. 따라서 ‘제야의 밤’이나 ‘송년 제야의 밤’ 등은 ‘밤’이 중복되어 있어 어색한 표현이다.
시작한 김에 하나 더 이야기하고자 한다. ‘제야의 종’ 행사 이름을 바꿔보면 어떨까 제안한다. 제야의 종은 12월31일 밤 12시 정각에 친다. 새해를 여는 첫 울림이다. ‘제야’란 섣달 그믐날 밤을 가리킨다. 말 그대로 한해의 끝이다. 우리가 치고 있는 종은 새해 첫날 0시에 울려 퍼지니 ‘해맞이 종소리’가 정확한 의미다.
물론 이것도 모두 음력을 사용하던 시절에 쓰이던 것이라 엄격히 따지면 종을 울리는 행사도 음력을 기준으로 날짜를 잡아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날짜를 잡기 어렵다면 이름이라도 의미에 맞게 ‘해맞이 종소리’ 행사로 바꾸는 검토가 진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