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하다. 분명히 서울 한 복판에서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데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서울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지방의 어느 한 도시처럼 생각이 되는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 3일간의 일정으로 '선생님을 위한 시장 경제교실' 연수(주관 대한상공회의소, 조선일보)에 참가했다. 연수 장소는 서울역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걸리는 대한상의였다.
지하철 서울역에서 나와 지상의 서울역을 뒤로 하고 숭례문을 바라보며 길을 가는데 영 느낌이 서울이 아닌 것이다. 시야에 펼쳐지는 광경이 익숙하지 않다. 마치 어느 지방의 낯선 도시 같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당연히 보여야 할 숭례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숭례문은 전소되어 가림막으로 가려진 상태에서 지금 한창 복원 작업 중이다. 서울의 상징하면 숭례문이다. 그 숭례문이 보이지 않으니 서울 기분이 나지 않는 것이다.
서울의 자랑하면 현대식 높은 빌딩과 어울리는 조선시대 건축물이 아니던가!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모습, 그것이 우리의 자부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몇 백년 전의 문화유산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자체가 자랑이었다.
그런데 그 자랑스런 숭례문이 보이지 않는다. 서울 시민의 자존심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이 크게 상처를 입은 것이다. 가림막에 가려진 숭례문의 잔해를 보니 마음이 불편하다. 영 개운치가 않은 것이다. 마음이 우울해진다.
한 사람의 몰지각한 사람에 의해 전소된 숭례문.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크나큰 손실이다. 국민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 이제 어느 정도 기일이 경과되면 복원이 되겠지만 복원된 숭례문은 과거의 그것이 아니다.
지금 숭례문 근처로 각종 차량들이 쏜살같이 질주하고 있다. 가림막 일부가 개방되어 있어 사진을 찍었다. 숭례문의 밑부분 화강암과 그 속에 있던 흙이 보인다. 이 상태로 보아선 완전 복구가 되려면 오랜 시일이 걸릴 것 같다.
숭례문이 없는 서울은 서울이 아니다.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그 기능을 하고 있겠지만 필자의 눈에는 서울이 서울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어느 도시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문화재는 정해진 위치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에게 위안과 편안함을 준다. 국격과 함께 나라의 품위를 유지시켜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건재할 때 고마움 자체를 모른다. 없어지거나 훼손되고 난 후에 문화재의 존재를 실감하는 것이다.
숭례문이 보이지 않는 서울은 내게 있어 서울이 아니다. 가림막에 가려진 숭례문을 보니 마음 한 구석에 휑하니 뚫린 것 같다. 마음이 허전한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아, 숭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