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등학교 1학년 신입생 담임을 하는 교사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과중한 업무에 강제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금지로 방과 후 아이들 생활지도까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담임선생님의 손이 가지 않으면 학급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이다. 심지어 청소하는 방법까지 가르쳐주며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오죽하랴.
신학기 교사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행동이 낯설고 어설프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 아이들의 행동을 무관심으로 일관할 수만은 없다. 이럴 때일수록 담임선생님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조금은 귀찮고 짜증이 나겠지만 아이들 스스로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때까지 도와줘야 한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듯 아이들의 이런 행동을 지켜보며 아이들과의 상담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들과의 상담시간이었다. 과다한 수업시간으로 일과시간을 활용하여 상담하는 것도 무리였다. 그렇다고 자율학습을 하지 않는 아이들을 야간에 남겨 상담하는 것도 아이들로부터 불만을 갖게 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였다. 우리 학급의 경우, 자율학습을 하겠다는 학생이 20여 명도 채 되지 않았다.
다년간 고3 담임을 역임하면서 느낀 바, 입시지도에서 중요한 것은 대학이 아니라 적성에 맞는 학과라는 것을 알고 있다. 가끔 적성이 맞지 않는 학과 때문에 고민하다가 학교를 그만둔 제자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픈 적이 있다.
월요일 아침. 1교시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 내려오자 책상 위 두고 온 휴대폰 액정 위에 올해 졸업한 제자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여러 번 찍혀 있었다. 그리고 연락이 되지 않자 제자는 긴 문자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문자에서 제자는 학교를 그만둔 것에 죄송하다며 조만간 찾아뵙겠다는 말을 남겼다.
2월 말. 입학식과 더불어 서울로 올라간다며 내게 안부 전화를 했던 그 아이의 말이 떠올려졌다. 대학을 합격시켜 준 것에 고맙다며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 은혜를 갚겠다며 대학 새내기로서의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였다. 사실 고3 담임을 하면서 제자로부터 그와 같은 인사를 받는 것만큼 보람된 일은 없다.
그런데 한 달도 채 되기도 전에 대학을 그만두겠다는 그 아이의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렵게 합격한 대학인만큼 신중하게 생각해 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잠시 뒤, 그 아이는 이미 부모님과 상의가 끝냈다며 재수를 하게 되면 많이 도와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이미 모든 결정을 내린 듯 연거푸 죄송하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문득 수시모집에 모두 낙방하여 실의에 차 있던 그 아이의 작년 모습이 떠올려졌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국립대학만 고집했던 그 아이는 자신의 내신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몇 개의 국립대학에 원서를 냈으나 운이 따르지 않았는지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그 후유증이 수능에까지 영향을 미쳐 결국 수능마저 망치게 된 것이었다.
무엇보다 정시모집은 수능 성적이 당락을 결정하는 만큼 수능 성적이 좋지 않은 제자에게는 모든 것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정시모집에서 내신을 많이 반영하는 대학을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가 받은 수능성적표를 꺼내놓고 철저히 분석하여 정시모집에 도전해 보기로 하였다.
가군은 학과를 고려하지 않고 내신반영률이 많은 대학만 보고 원서를 냈으며 수능 반영률이 높은 나군과 다군은 본인이 원하는 학과가 있는 대학에 각각 원서를 냈다. 그러나 정시결과, 제자는 나군과 다군 모두 불합격했고 가군만 합격하게 되었다. 결국, 제자는 선택의 여지없이 가군에 등록해야만 했다. 다행히 기숙사까지 합격하여 대학 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했다.
그간 제자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기에 내심 대학 생활을 잘하고 있는 줄만 알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자는 한 달간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 공부를 하는데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고민 끝에 학교를 그만두고 본인이 원하는 학과에 가기로 했다고 하였다. 조금은 혼란이 있었지만 그나마 결정을 빨리 내린 것에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가고 싶은 대학과 학과를 조사해본 결과, 아직 아이들 대부분이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조금은 이른 감이 있지만 신학기 담임으로서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의 적성이 무엇인지를 찾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듯 아직 고등학교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잘 모르는 1학년 신입생들이 빠른 시일 내에 고등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지난 주, 학부모 회의에 참석한 한 어머니의 말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