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이슬이 발끝을 적신다. 수수한 찔레꽃의 하얀빛은 늦은 밤 개구리 울음소리와 함께 주위를 밝힌다. 푸름은 지쳐서 온 산하를 뒤덮고 그 사이 피어난 붉은 엉겅퀴 꽃은 먼저 가신 님들의 혼일까?
아픈 사연이 많은 여름의 길목인 유월. 보물섬 아이들의 사관학교 병영체험이 열렸다. 사관학교는 보통사람이 생각하는 사관학교와는 다른 지역 내의 예비역 장교 전우회에서 주관하는 나라사랑 체험행사다.
입소 첫날 준비해 준 버스에 나누어 타고 체험장으로 출발한다. 모두 호기심 어린 들뜬 표정이다. 캠프가 설치된 곳은 들 가운데 위치한 청소년 수련원이다. 오래된 폐교를 고쳐 수련시설로 만들었지만 생활하기엔 불편함이 없을 것 같다. 하늘은 더없이 파랗고 수련원 둘레는 지난봄 꽃을 피운 해묵은 매화나무들이 열매를 맺어 보시시 웃고 있다. 입소식이 시작된다. 군복을 입은 군인 아저씨들, 군수님을 비롯한 지역 각 기관대표가 모인 가운데 군악대의 국기에 경례 주악이 울린다. 아이들은 의식 내내 유니폼을 입은 군악대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입소식이 끝나고 처음으로 잔디운동장에서 군사용 텐트 설치 체험이 시작되었다. 아직 한여름은 아니지만,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조별로 남학생 여학생 가릴 것 없이 몰두하는 모습이 교실에서 수업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
한쪽에선 “아저씨! 할아버지” 등 현재 예비군 중대장을 맡고 계신 교관들을 부르며 도와 달라 한다. “밥은 언제 먹어요. 오후에는 무엇을 해요?” 등 여기저기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교관들은 진땀을 뺀다. 나름대로 오전활동이 재미있었는지 점심도 꿀맛이라며 남기는 것도 없이 깨끗이 먹는다.
오후 일정인 바래길 체험이 시작된다. 바래길은 둘레길, 올레길과 더불어 오래전 먹을거리가 부족할 때 먼 마을에서 걸어 걸어서 해안가의 해초와 바지락 채취를 위해 다니던 길이다. 그런 삶의 인고가 묻어 있는 길이 요즘은 관광과 체험코스로 거듭나고 있다. 해안가를 따라서 경운기가 다닐 정도의 구불구불한 농로를 아이들은 재잘거리면서 간다. 보리는 황금색으로 물들어 서걱대고 인동초 꽃, 고들빼기 꽃들이 밭 언덕에 지천으로 늘려 있다. 바다와 육지의 조화가 너무나 예쁘다. PC방 게임기와 컴퓨터에 더 친숙한 아이들에게 자연과 벗하며 이 좋은 풍경을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것이 황홀하기만 하다.
몇 굽이를 돌아서자 휴식시간이다. 교관 아저씨가 조금 떨어진 섬을 가리키며 이전에 저곳에 사람이 살았는데 그 사람은 고정간첩으로 이곳이 남파 간첩들과 접선을 하는 길목이어서 모두 이주를 시켜 지금은 무인도라고 설명하자 아이들은 간첩이 무어냐고 질문을 한다.
아이들은 달린다. 그리고 바닷물에 발을 적신다. 마지막 도착지는 인적이 드문 모래사장이다. 자유롭게 가슴을 열며 거침없는 모습. 이렇게 누릴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뭇 인근 마을 회관에 휘날리는 태극기에 긍지가 느껴진다.
밤이 되었다. 군수님이 직접 오셔서 보물섬과 관련된 연상퀴즈로 수업을 진행하신다. 옛날 군수님이라면 너무나 어려운 분인데, 요즘 군수님은 모든 사람과 어깨를 같이하며 격이 없다. 드디어 기다리던 캠파이어가 시작되었다. 어둠을 몰아내는 불빛을 보며 아이들은 즐거워한다. 저마다 준비한 실력을 뽐내며 하루의 피로를 푼다. 시간이 지날수록 타던 불꽃은 사위어 숯으로만 남고 불꽃은 푸른 빛을 띤다. 저 온도는 엄청나게 높을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만큼.
둘째 날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병영체험이다. 군가와 함께 기상을 하여 체조를 한다. 간밤 노느라 잠을 설친 아이들은 하품을 한다. 그래도 오늘은 제일 재미있는 일이 있다며 언제 시작하느냐고 재촉을 한다. 아이들과 함께 예비군 훈련장에 도착한다. 주의사항과 지킬 일을 들으며 아이들은 긴장한다. 이제 모든 관리는 교관이 맡는다. 화기 위력 시험장으로 간다. 종알대던 아이들도 K1 소총의 총성에 귀를 막는다. 유탄 발사기를 떠난 포탄의 폭발소리에 겁에 질려 있다. 심지어 여학생들은 그냥 울고 있다. 전쟁이 나면 이 소리보다 더 크고 무서울 것이라며 전쟁은 싫다고 한다.
소대별로 나누어진 아이들은 서바이벌 사격, 방독면도 착용, 소총 분해결합 체험을 하며 재미있어한다. 꼬르륵! 배꼽시계가 점심때를 알린다. 오늘 점심은 군부대에서 직접 군인 아저씨들이 먹는 병사식 체험이다. 군대 밥 흔히 '짬밥'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잘 먹는다. 식판마다 붙여진 이름표를 보면서 이상하다고 한다. 학교 급식 때 좋은 식판과 수저를 잡겠다고 고르던 일이 부끄러워진 모양이다. 그리고 자기가 먹은 식판을 깨끗이 씻어 제자리에 둔다. 학교 조회시간이나 체육 시간에는 줄도 잘 서지 않는 녀석들이 군부대 중대장의 통솔에 군기가 바짝 들었는지 줄 서기와 질서를 잘 지킨다. "그래 너희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우리나라의 미래이다."
마지막 일정이 남았다. 보물섬의 최남단 미조면의 레이더 기지에 간다. 아이들은 삼십여 분간 가파른 길을 오르면서 힘들어한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높은 곳에 세워진 기지의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은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 이곳은 곤충의 더듬이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우리 영해와 영공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한눈에 보는 곳이다. 아이들은 각종 전자기기에 눈을 떼지 못한다. 실시간 전해지는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보면서 현대는 전자전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내려오는 길 다리가 후들거린다. 잠깐의 휴식을 하면서 군대에 가고 싶지 않은 사람 손들어 보라 하자 백 명이 넘는 아이들 가운데 한두 명 정도 손을 들까 모두 군대에 갈 것이라 한다. 특히 여학생들은 여군이 될 것이라 하며 눈빛을 반짝인다.
파도가 출렁이는 보물섬 해안을 따라 수료식을 위하여 출발지로 돌아온다. 유월에 접어든 바다는 따스할 것으로 생각하며 2010년 3월 26일 서해의 차가운 바닷물에 북한의 어뢰에 의하여 산화해간 46인의 혼들과 실종자 수색을 위해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를 떠올린다. 그리고 불과 8개월 뒤 연평도를 무참히 포격한 북한 정권의 실체를 생각하니 분노가 끌어 오른다.
수료식장에 아이들이 다시 모였다. 피곤한 모습들이 역력하다. 하지만 집에 돌아간다고 하니 생기가 돋는 모양이다. 수료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속이 조용하다. 곯아떨어져 코를 고는 아이들도 있다.
보물섬 사관학교 체험. 비록 어리지만, 이 행사에 참가한 아이들은 나라와 우리 고장의 소중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평소 버릇없다고 자기뿐 모른다고 나무랐지만 이런 기회를 맞아 새롭게 태어나고 마음을 바르게 함을 보며 대한민국의 앞날은 더 밝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소중한 아이들을 보면서 지금 세대가 자라나는 세대에게 남겨줄 것은 굳건한 안보의식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힘을 길러 주어야 한다고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