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슬기로운 생활 공부를 할 때였습니다. 우리 마을을 그림지도로 그리는 공부를 하려고 동서남북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해가 뜨는 것을 제대로 알까 궁금했지요.
"동쪽이 어딘지 손으로 한번 가리켜 볼까요?"
그러자 모두들 손을 들어 자기가 생각한 방향을 가리켰지만 제대로 자신 있게 가리키는 아이는 드물었습니다.
"그럼, 해가 뜨는 모습을 본 적 있나요?" "예, 선생님. 저는 아버지랑 운동하러 갈 때 보았어요."
그것도 딱 한 사람만 보았다고 했습니다.
과학의 시작은 생활 속에서
아침 밥도 늦잠을 자느라 먹지 못하는 아이들조차 있는 현실입니다. 슬기로운 생활은 3학년의 과학으로 이어지는 전 단계임을 생각하면 관찰하는 능력이나 호기심은 매우 중요합니다. 잠시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칠판에 산을 그리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초등학교에도 다니기 전, 어린 나는 아침 일찍 일하러 가시는 아버지와 반드시 아침 식사를 해야했습니다. 그 시각이 언제나 해 뜨기 전이라서 해를 보는 것은 하루의 시작이었던 시절입니다.
이른 잠을 깨는 어머니 목소리에 억지로 일어나면 방 걸레를 세숫대야에 담아서 동네 앞 시냇가로 가는 일은 즐거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집에는 물이 없으니 걸레 하나만 빨 일이 있어도 시냇가로 가야 했습니다. 추운 겨울 아침이면 그게 싫어서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차가운 냇물에 걸레를 빨 때 떠오르던 해는 참 반가웠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그 해가 뜨는 위치가 같은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해가 지는 방향도 늘 다르다는 것까지 관찰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해는 날마다 생겨서 저녁이면 날마다 땅속으로 들어가서 죽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공부의 시작이 되어서 늘 생각하는 버릇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학생
그 생각의 끝은 늘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끝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어릴 적 고향 마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늘 꽃상여가 나가는 것을 구경할 수 있었고, 결정적으로 우리 집 강아지의 죽음을 본 충격이 컸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죽는데 죽은 다음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습니다. 잠을 자다가도 그 생각만 하면 무서워서 잠이 오지 않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죽으면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그 다음은 썩고, 그 다음은 어떻게 되지? ' 그 다음은 그대로 모든 것이 정지한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무서웠던 기억은 지금도 계속되어서 배움을 향한 갈망으로 이어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종교나 철학, 심리학, 과학 등등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으니 인간은 죽는 날까지 학생으로 살다 간다는 당위성에 공감합니다. 무지로부터 해방되는 꿈을 꾸면서.
방위를 정확하게 알려 주기 위해서 과학실에서 나침반을 가져 왔습니다.
"2학년, 선생님이 퀴즈를 낼게요. 맞춘 사람은 칭찬 포인트를 줍니다. 이것은 세 글자랍니다. 이것은 일정한 방향을 가리킨답니다. 아마 1학년 때 배웠을 것 같은데 무엇일까요?"
"선생님, 나침반입니다."
우리 반 호기심 박사인 신류재가 대답했습니다.
"잘했어요. 그런데 나침반은 왜 항상 같은 방향을 가리킬까요? 힌트를 주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 )이기 때문입니다. 두 글자인데 뭘까요?"
아이들이 생각하는 사이, 역시 호기심 박사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지구는 자석입니다. 그런데 태양도 자석입니까?" "네 맞아요. 지구가 자석이라 나침반이 항상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나는 태양이 자석이냐고 묻는 질문에 얼른 답을 하지 못했고 마침 점심 시간이라서 어정쩡하게 수업을 끝내고 말았습니다. 집에 가는 동안 호기심 박사의 질문이 귀엽기도 하고 엉뚱해서 웃음이 나오면서도 즐거웠습니다. 정말 단 한 번도 태양이 자석인지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꼬마 박사는 거기까지 생각해냈으니까요.
제자 덕분에 공부를
집에 가자마자 태양에 관한 자료를 뒤져보았습니다. 새삼스럽게 접하는 우주물리학의 어려운 과학적 사실 속에서 태양은 거대한 자석임을 알았고 주변지식까지 얻어서 행복했습니다. 선생이라는 자리는 늘 배우는 자리라서 더욱 감사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제자 덕분에 우주물리학 냄새도 맡았습니다. 무너진 교실은 없습니다
문득 요즈음 '교실이 무너진다'는 기사를 접하며 우울하고 어두웠는데 우리 반 아이 덕분에 마알간 샘물을 마신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설 자리가 좁아진 교단, 억세진 학생들, 작은 일도 확대 재생산되어 오해와 불신의 늪은 갈수록 깊어진 학교 현장의 슬픈 모습. 비록 내가 가르치는 반 아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해져 오는 절망감의 여파는 오래 갈 것같아 답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함을 생각했습니다. 남의 동네 이야기로 치부하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서는 변화를 가져 오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타산지석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지혜를 모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노력이 학교와 학부모, 학생을 비롯한 모든 사회가 마음을 모아서 함께 고민하여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노력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이나 인터넷을 보면 모든 학교가 그런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학교나 교실, 학생들은 오늘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마에 겐이치는 '지식의 쇠퇴'에서, "교사가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다. 'teach'의 개념은 교육에 맞지 않다. Teach란 답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북유럽은 오히려 학생이 Learn 하게 돕는 것을 교사의 역할로 보는 추세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공감합니다. 폭발적인 지식을 선택적으로 공부하며 공부하는 방법을 알고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도록 돕는 역할이 바로 선생님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한 숙제를 주었답니다. 일주일에 적어도 3번 이상은 해가 뜨는 모습을 보면서 살자고 말입니다. 내일 아침 숙제 검사 시간이 기대됩니다. 과연 몇 아이가 그 숙제를 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해가 뜨는 방향을 보고 해 뜨는 시각을 적어 올 것인지. 그 태양 덕분에 우리의 삶이 기적적으로 가능한 것까지도 알고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감사기도까지 드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까지 얹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