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한 국가 간 경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식을 가진 자와 그러하지 못한 자 간의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최근 교육과학기술부와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가 ‘스마트 교육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이 ‘전략’에 의하면 2015년까지 초․중․고교의 교과서가 디지털화된다고 한다. 기존의 교과서뿐만 아니라 각종 참고서, 문제집, 사전, 보충학습 자료가 모두 개인용 컴퓨터에 저장된다. 종이책이 없어지고 공책이나 연필, 지우개, 필통도 필요가 없어진다. 학생들은 등교할 때 달랑 컴퓨터 하나만 들고 가면 된다. 정부가 이런 ‘전략’을 수립한 이유는 학생들의 가방 무게를 줄여주고,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2025년까지 국가 경쟁력을 세계 3위로 끌어올린다는 것이 정부가 설정한 목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책가방 무게가 그렇게 큰 문제가 된다면 사물함을 활용하는 등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국가 경쟁력 문제는 보다 깊이 생각해야 한다. 끝없는 정보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단편적인 지식 사이를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검색하는 컴퓨터를 통한 지식 사냥이 과연 미래를 밝게 해줄까?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오래 집중하고 깊이 사색하는 능력을 저하시키고 인간 고유의 창의적 사고를 방해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인터넷이 계속 더 자주,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방해하고 있다. 얼마 전 가족과 함께 피서를 갔는데 모두 각각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치느라 가족이라는 배가 파산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이처럼 인터넷에만 의존하는 것은 지식을 함양하는 존재가 아니라 숲의 사냥꾼이나 수집가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은 삶을 변화시키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국가 경쟁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컴퓨터식 사고를 강요하는 것이 과연 장기적 안목으로 볼 때 진정한 국가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학교가 어디 지식만 전달하는 곳인가? 학생과 선생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 교실이 아닌가?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청소년들의 도덕 불감증을 치유할 수 있는 곳은 그래도 학교 밖에 없다.
학교는 학생이 묻고 선생은 답하는 가운데 사람 냄새가 나야할 곳인데, 사람 냄새는 나지 않고 기계 소리만 가득한 삭막한 디지털 교실에서 어찌 도덕적 불감증이 치료될 수 있겠는가? 학생과 선생 사이의 최소한의 예의마저 사라진 지금, 디지털 교과서가 이를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아닐까 염려하는 소리도 들어야 한다.
이번 ‘스마트교육 추진 전략’의 전체적 맥락에서 보면 작은 문제일 수 있지만, 연필로 상징되는 필기도구의 실종이 나에게는 더욱 충격적이다. 이 ‘전략’에 따르면 손글씨가 사라진다. 손으로 글씨를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글씨에는 그것을 쓴 사람의 혼이 담겨있다. 얼마 전 모 일간지에서 초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손글씨를 쓰게 했더니 차마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더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런 판국에 이 ‘전략’이 실행되면 학생들의 손글씨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다. 우리가 정보화를 통해 얻는 것도 많지만 지키지 못하고 잃는 것도 많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수정․보완할 필요가 있다.
여러 분야에서 기계에 침식당하다 보면 인간 냄새가 나는 것을 그리워할 시대가 올 것이다. 이미 무거운 책가방을 가지고 학교에 다니는 시대는 지났다.
국가 경쟁력이 전체적으로 교육에 달려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보가 흘러넘치면 오히려 무엇이 진짜인지 구분하기 어렵고 처리하기가 곤란하다. 모든 것들을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의 심력 증진에 힘을 쏟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