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4일 전파를 타기 시작한 KBS 대하드라마 ‘광개토태왕’이 4월 29일 종영되었다. 당초 100부작을 92회로 줄여 끝냈다. 이를테면 조기 종영인 셈이다. 후속 드라마가 바로 이어 방송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예고마저 볼 수 없어 조기 종영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다.
그럴망정 ‘광개토태왕’은 한 마디로 ‘장하다’는 평가를 해도 될 드라마이다. ‘공주의 남자’나 ‘해를 품은 달’처럼 시청률 대박을 담보한, 이른바 팩션의 유혹을 뿌리치고 꿋꿋한 정통 대하드라마로 약 11개월이나 방송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영방송 KBS만이 해낼 수 있는 ‘위업’이기도 하다. 특히 사극의 경우 시청률이라는 함정에 빠져드는 순간 팩션이니 퓨전이니 하여 역사를 비틀어대기 일쑤인 현실을 떠올려보면 그 점은 명백해진다. 요컨대 시청률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정통 대하드라마였기에 장한 것이다.
시청률 면에서도 크게 뒤진 것은 아니다. 방송 초반 13.6%(전국 시청률기준), 12회 만에 17.4%를 기록한데 이어 지난 해 11월엔 20.3%로 오르기도 했다. 최종회까지 17.0%를 기록하는 등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정통 대하드라마로선 괜찮은 시청률이다. ‘광개토태왕’을 정통 대하드라마라고 하는 것은 김종선 PD가 말한 “논란의 여지가 없도록 고증에 충실한 스토리” 때문이다. 물론 역사연구가 황원갑의 “왕자시절 후연과의 전쟁때 요동성에서 맹활약했다거나 말갈족과 목숨 걸고 싸웠다는 이야기는 지나친 상상력이 빚어낸 날조”(조선일보,2011.8.9)라는 지적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논란의 근저엔 ‘강한 군주 그려내기 압박감’이 자리하고 있는 듯 보인다. 드라마는 크게 왕자 담덕과 군주시절로 나뉘어 전개되었다. 그런데 최고의 영토를 확장한 정복 군주 광개토태왕이 되기도 전인 왕자 내지 태자시절부터 그 점이 부각되었다. 가령 담망 태자의 죽음에 아버지 고국양왕이 행차했는데도 담덕은 칼을 든 채 포효하며 설쳐대는 행동(8월 20일 방송)을 예로 들 수 있다.
사실(史實)엔 담망 같은 형이 없다. 드라마처럼 있다해도 그 죽음에 가장 슬픈 사람은 아버지라야 상식적 아닌가? 그런 아버지, 더구나 현재 임금인 아버지를 제치고 그려낸 왕자 담덕의 우애 극대화 따위 광개토태왕의 위대성 부각은 좀 그렇다. 오히려 고구려는 그렇듯 ‘싸가지 없는’ 나라였는지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그 위대성 부각인지 몰라도 거의 매회 지속된 광개토태왕의 포효나 책상 내려치기 역시 그런 식은 곤란해 보인다. 살아있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아버님’ 호칭도 여전해 이맛살을 찌뿌리게 했다. ‘소장’을 ‘소인’으로 지칭하는 등 오류도 마찬가지다.
또 하나 애써 지적해둘 것이 있다. 지난 연말연시 특집프로에 밀려 무려 4회(12.24~25,12.31~1.1방송분)나 결방된 점이 그것이다. ‘광개토태왕’의 4회연속 결방은 1983년 방송평론가로 데뷔하여 활동한 이래 처음 보는, 어느 지상파 방송에서도 볼 수 없던 전무후무한 ‘편성 오류’라 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