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공동생활을 하면서 규칙을 어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에는 말로 타이르지만, 계속 규칙을 어기면 벌을 내려야 한다. 벌을 받으면서 규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규칙을 어겨도 벌을 주지 못한다. 벌을 주는 것이 인권과 관련이 있다. 말 그대로 체벌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을 하면 당연히 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그 교육조차도 체벌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벌은 분명히 교육이다. 교육은 학생의 미래 삶을 다듬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벌이 학생의 행동과 생각에 내면화되어야 한다. 올바른 사람을 만들기 위해 선생님은 끊임없이 담금질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간혹 ‘벌을 세운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벌’이 목적어이고, ‘세우다’가 타동사로 쓰인 것이다. 이 어법은 이상하다.
‘벌’ 잘못하거나 죄를 지은 사람에게 주는 고통.- 엄한 벌. - 벌을 내리다. - 벌을 받다. - 벌을 주다. - 벌이 무겁다. - 나는 오늘 숙제를 안 한 벌로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되었다.
흔히 ‘벌’을 ‘세우는’ 것으로 말할 때, ‘벌을 서다’라는 관용구가 보여야 한다. 위 사전의 용례에서 보듯, ‘벌’은 ‘서다’라는 동사와 호응하지 않는다. ‘벌’은 ‘받다’와 ‘주다’만 호응한다. 그리고 ‘서다’가 목적어를 취할 때는 ‘들러리를 서다./보증을 서다./주례를 서다.’ 등의 예만 보인다. 따라서 ‘벌을 세우다.’는 쓰지 말아야 한다. ‘벌’과 관련된 동사는 ‘벌서다’와 ‘벌쓰다’가 있다.
‘벌서다’ 잘못을 하여 일정한 곳에서 벌을 받다. - 수박 서리하다 들킨 아이들은 원두막에서 한두 시간 벌서곤 하였다.
‘벌쓰다’ 잘못이 있어 벌을 받다.
‘벌을 세우는’ 것은 ‘벌서다’의 표현에서 영향을 입은 듯하다. 즉 ‘벌서다’의 사동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벌서다’의 사동사는 ‘벌세우다’이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학생을 벌세웠다.’라고 해야 한다. ‘벌쓰다’의 사동사는 ‘벌씌우다’이다. 역시 ‘선생님은 학생을 벌씌웠다.’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이때의 ‘쓰다’는 ‘죄를 입다.’, ‘형구나 굴레 따위를 목에 걸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 ‘누명쓰다’나 ‘칼을 쓰다’의 ‘쓰다’처럼 사용한 것이다. ‘벌서다’와 ‘벌써다’를 사동사로 사용할 때는 ‘학생이’ 목적어가 된다.
일부 사전(한글학회편 ‘우리말 큰사전’, 1992)에는 ‘벌서다’는 올라 있지 않다. ‘벌쓰다’만 올라 있다. 그래서 ‘벌서다’는 표준어가 아니고, ‘벌쓰다’라고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등에 ‘벌서다’가 표제어로 올라 있다. 많이 사용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참고로 ‘벌을 씌우다’라는 관용구가 있다. 이는 ‘벌을 받게 하다.’라는 뜻으로 ‘당장 걱정이 담임선생이 남아 있으라고 했는데 무슨 벌을 씌울 일이 있는 것도 아닐 것이요 집에 같이 가자고 할 것인데….’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