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서 열리고 있는 제30회 하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양궁여자단체전에서 7연패(連覇)의 위업을 달성했고 개인전에서도 남녀 선수가 금·은·동메달을 차지하는 낭보(朗報)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 한다. 남자단체전 4강에 올라온 선수의 감독이 모두 한국인 이었고 40개 양궁 참가국 중 12명의 한국인 감독이 활약하고 있는 것은 영국이 양궁의 종주국임을 무색케 하고 있다. 활을 잘 쏘는 우리나라 양궁선수들을 보면 발해연안에서 동양의 문명을 주도하며 살았던 동이(東夷)족의 후예(後裔)임이 분명한 것 같다.
이(夷)자를 파자하면 大 +弓(활에 화살을 합쳐 형상화)한 글자인데 설문해자에 오랑캐 이(夷)자(중국의 변방사람)로 되어있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큰활 이(夷)로 바로잡아 가르쳐야 한다. 은나라 갑골문에 나오는 동이(東夷)는 활을 잘 쏘는 민족으로 명판(明板)에 “夷人不盜”라 했고 夷는 仁也, 大也, 居也라 했다. 동이(東夷)는 君子 不死之國이라고 하여 우리민족은 동이(東夷)족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올림픽을 통해 다시 한 번 증명해주고 있다.
원래 활은 구석기시대 후반에 인간의 생활 수단으로 개발되었던 무기로 사냥과 전쟁에 사용되어 왔다. 활은 한민족에게는 가장 대중화된 무예였고 심신단련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방편으로 활용되었다. 우리의 전통 활쏘기는 국궁(國弓)으로 그 맥을 지금도 이어오고 있다. 사극에서 볼 수 있는 활쏘기는 말을 타고 달려가면서도 목표물을 명중하는 민족이다. 복잡한 장치의 양궁보다는 단순한 활로 사냥을 하였고 전쟁터에서도 무기로 사용하였던 민족이다. 총이 출현하면서 그 위력을 상실하고 오늘날에는 스포츠 종목으로 대중에 보급되었다.
부족국가에서 무기로 사용한 활은 숙신(肅愼)의 호시석노(楛矢石砮), 동예(東濊)의 단궁(檀弓), 고구려의 맥궁(貊弓:각궁)이 있는데 서로 다르다. 호시(楛矢)란 광대싸리로 만든 화살이며 화살촉은 백두산에서 산출되는 흑요석(黑曜石)으로 만들었다. 고구려의 맥궁(貊弓)은 각궁(角弓)이었으며, 신라에서는 나마(奈麻) 신득(身得)이 포궁(砲弓)을 제작하였고, 백제에서는 이 기술을 받아들여 더욱 발전시켰다. 활은 장궁(長弓)과 단궁(短弓)이 있는데, 구조상 환목궁(丸木弓)과 복합궁(複合弓)으로 나뉘는데 한국의 활은 복합단궁(複合短弓)이라고 한다.
양궁은 16세기 영국에서 오락용 활쏘기 대회의 형태로 시작하여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 전파되어 스포츠의 한 분야로 정착되었기 때문에 양궁의 종주국을 영국이라고 한다. 1900년 제2회 올림픽경기대회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가 제외와 재 채택의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겪은 뒤 경기방식과 규정 정립을 거쳤다고 한다. 1972년 제20회 뮌헨올림픽대회부터 정식종목으로 다시 채택되어 올림픽대회에서 남녀 개인경기와 단체경기를 치루고 있다.
1984년 제23회 올림픽경기대회에 처음 참가하여 서향순이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경기에서 김수녕 · 왕희경 · 윤영숙이 여자부 금·은·동메달을 석권하였고 남자부 박성수가 은메달을 남녀 단체전까지 모두 우승하면서 확고한 양궁 강국으로 떠올랐다.
제25회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여자 금메달(조윤정)과 단체 금메달, 제26회 애틀랜타올림픽대회에서 여자 개인 금메달(김경욱)과 단체 금메달, 제27회 시드니올림픽대회에서 여자 개인 금·은·동메달(윤미진·김남순·김수녕)과 남녀 단체 금메달, 제28회 아테네올림픽대회에서 여자 개인 금메달(박성현)과 남녀 단체 금메달, 제29회 베이징올림픽대회에서 남녀 단체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기량을 유지하였고 제30회 런던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활 잘 쏘는 한민족의 국궁(國弓)을 더욱 발전시켜서 올림픽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날이 오기를 기대(期待)하며 심신단련을 위해서라도 국궁을 널리 보급 하였으면 한다. 베이징 대회에 이어 이번 대회에도 남녀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커플로 탄생하게 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동이(東夷)족의 후예임에 자긍심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