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선을 앞두고 정치교수가 넘쳐나고 있다. 각 캠프의 공식 자문 교수만 약 2백 명, 앞으로 추가될 교수들을 합치면 5백여 명으로 어지간한 대학의 몇개 규모다. 선거 때마다 학생 수업에 지장을 주면서 캠프를 기웃거리는 철새 교수들에 대한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폴리페서(polifessor)란 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의 합성어로 주로 국회의원과 교수직을 겸임하는 정치인을 일컫는 신조어로 정치권에 진출해 정치적 욕망을 실현하려는 교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이 정계에 나가 있는 동안 학생들의 수업권이 침해될 뿐 아니라 후배 학자들의 교수 진출 기회도 가로막히는 만큼 휴직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치권에 따르면, 19대 총선에 출마한 현직 대학 교수는 학생 수업 부담이 크지 않은 총장이나 석좌ㆍ초빙ㆍ겸임ㆍ특임교수를 제외하더라도 여야 합쳐 20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이 교수 직함을 그대로 갖고 선거운동을 하고, 일이 잘 돼 당선되면 4년간 학교를 휴직한다.
문제는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연 800만원이 넘는 비싼 등록금을 내고 수업조차 제대로 들을 수 없다면 학생의 수업권은 무엇인가. 교수들의 정계진출은 안정적인 학사 운영에 차질은 물론 학생들의 수업권이 침해받고 있다.
폴리페서가 반드시 나쁜 건 아니다. 순기능도 많다. 미국에선 대학교 교수들이 포진해 있는 싱크탱크와 정당간 교류가 일상화되어 정당원 학계 연구결과를 정책에 흡수할 수 있고, 전문가들은 이론을 현실에 적용해서 수정, 보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수들은 정당이 아니라 후보 개인과 ‘사적 통로’로 캠프에 들어가고, 또 후보들은 정책노선보다 ‘대중적 지명도’가 높은 사람을 끌어들이다보니 결국 정치에 지식이 이용당하는 꼴이다.
폴리페서들은 다른 전문직과 마찬가지로 교수 역시 공직 진출 기회가 막혀선 안 된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폴리페서 금지법까지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고등교육법은 주로 대학교수들이 참여해서 그런지 그들에겐 매우 관용적인 법이다. 유아교육법이나 초·중등교육법은 교원들의 정치적 중립과 겸직을 엄격히 유지하고 있다. 물론 대상이 미성년이라는 이유라지만, 사실 초·중등학교 보다 대학교육은 학교교육의 완성이라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요즘처럼 반값 등록금까지 외쳐대는 상황에서 교수가 교육해야 할 강의를 정치로 인하여 소홀히 한다는 것은 교육자로서 정말 무책임한 일이다. 더군다나 졸업과 동시 취업 전선으로 나가야할 절박한 이들에게는 대학교육이야말로 인생이 달려있는 것이다.
물론 폴리페서들도 다른 전문직과 마찬가지로 공직 진출 기회가 막아서 안 된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교수는 마치 예외주의의 특권 대상인 것처럼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정계에 진출하고 싶다면 교수직을 과감히 버리고 가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의 피해를 최소한 줄일 수 있는 교육자의 양심이라 생각된다. 아무리 능력 있는 교수라 하더라도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는 없는 것이 인간의 능력이다.
섣부른 폴리페서의 피해자는 애꿎은 학생들뿐이다. 당장 선거캠프에 들어가면 학교수업도 소홀해져 휴강이 잦고, 시간강사에게 맡기다보니 교육의 질도 뻔하다. 일부 대학에선 정치교수들 인하여 학생 강의와 포럼 등 교수 간 공동 연구까지 차질을 빚는다는 것이다.
낙선하면 교수직으로 돌아간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당선되면 국회로 가서 좋고, 안 돼도 학교로 돌아가면 그만’이라는 자세는 너무 안일하고 무책임한 생각이다. 또한 외도를 맞본 교수들의 마음이 철만되면 다시 콩밭으로 향하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비록 다시 돌아온다 하더라도 그 동안 공백으로 인해 학생지도의 집중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더 큰 문제는 학생들이 이미 정치교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점이다. 낙선은 교수 개인적인 상처뿐 아니라 학생들에겐 스승에 대한 실망감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교수는 정치인이 아니라 학생을 가르치고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정치의 꿈을 위해 교단을 버리고 선거판에 뛰어들어도 된다는 생각이 교수사회 안에서 은근슬쩍 자리 잡아서는 안 된다. 무책임한 폴리페서는 학생들의 수업권 침해는 물론 교수사회 후진들에게도 장애물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지식인들이 국가의 중심에 서야 나라가 흔들리지 않는다. 최고의 학문인 대학의 교수로서 본연의 일에 충실함이 스승의 바른 자세이다. 그리고 학문적인 당당함과 학생들로부터 받는 교수로서 존경심과 자존심을 잃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