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56년.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으며 지역 명문고로 승승장구하던 우리 학교에 진한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7월 2일 공중파 방송에서 아침뉴스로 나오더니 이어 인터넷에 갑자기 '00고 살인사건'이란 제목으로 우리학교 비방관련 내용이 뜨기 시작했다. 다음(daum)의 아고라, 네이트의 판, 네이버의 블로그 사이트마다 조회수가 급증하더니 급기야 며칠만에 학교명이 순위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도 우리 학교를 비방하는 게시글이 하루에 200여건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 달에 겨우 한두 건 올라오던 게시 글이 200여건씩으로 늘어나 거의 접속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세상인심이란 참으로 야박해서 엊그제까지만 해도 명문이라며 추켜세우던 여론이 한 순간에 살인학교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명문학교 좋아하시네. 사람 죽이는 게 명문이냐?' 대부분이 이런 음해성 글들이었다. 아무리 염량세태(炎凉世態)가 세상인심이라지만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했다.
심지어 학교가 중심이 되어 이번 사건을 은폐 조작했다는 입소문도 인터넷에 떠돌았다. 생전 처음 겪는 학생사망사건을 맞은 학교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제자를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도 부족할 시간에 언제 어떻게 사건을 은폐하고 왜곡할 수 있다는 말인지……. 정말 어이가 없었다. 큰 사건에는 늘 악의적인 소문이 따라다니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지만 이번 사건을 겪으며 다시 한번 유언비어의 무서움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한번은 사건이 일어나고 한 달여가 지나서 결재 받을 일이 있어 교장실을 찾았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수척해진 얼굴을 한 채 이러다간 대인기피증에 걸릴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무슨 모임에만 나가면 사람들이 모두 학생 사망 사건에 관해서 묻는다고 했다. 물론 사람들이 위로삼아 건네는 말이겠지만 사건이 일어난 학교의 책임자로서 그런 질문은 정말 곤혹스러운 질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송과 힘겨운 재판 그리고 책임 추궁
사건은 시내에 있는 S경찰서 강력계로 넘어갔다. 중대한 사망사건이기에 엄정한 수사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피해자가 사망함에 따라 가해학생은 학교장 직권으로 즉시 등교가 정지되었다.
그 날부터 검경 합동으로 강도 높은 조사가 진행되었다. 우선 야간자율학습감독 교사와 학생간의 대질조사부터 시작해서 야간자율학습일지점검, 교실과 교무실과의 거리 측정, 근태 상황, 근무자 수칙 준수 여부 등등. 학교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 정신이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해자 측에서는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자 7월 19일을 기해 피해보상금으로 2000만원을 법원에 공탁했다. 이것이 피해 학생의 부모님을 격노하게 만들었고 그 격노의 화살은 가해학생의 부모와 학교로 직접 겨냥되었다. 이미 피해학생의 부모님은 이성을 잃은 듯했다. 그 무슨 말로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사건은 이제 형사고소와 함께 민사로도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가해학생의 부모님과 더불어 학교법인과 야자감독교사에게도 거액의 피해 보상금이 청구되었다. 재판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게 오랫동안 진행되었고 그 사이 가해 학생과 그의 부모님, 학교 그리고 피해자의 부모님과 가족들 모두 점점 피폐해져 갔다. 단 한순간의 우연한 실수가 이처럼 모두를 황폐하게 만들고 말았다. 정말 끔찍했다.
아물어가는 상처, 그리고 희생을 딛고 피어나는 성숙
수기를 쓰는 지금, 비극의 그 사건이 일어난 지 꼭 1년하고도 100일이 지났다. 아직도 그 날의 충격과 안타까움이 생생하게 남아있고 또 법률적인 문제도 서서히 마무리되어가지만 그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제일먼저 학교에 아담한 양호실이 만들어졌고 간호학과 출신인 양호선생님과 전직 경위로 퇴직한 경찰출신 아저씨가 학교지킴이로 채용되었다. 또 위급 상황 발생 시에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수 있는 자동제세동기도 양호실에 비치되었다. 학교 복도와 건물 구석구석에는 고성능 CCTV를 설치했다. 그리고 전교직원들은 대부분 '4분의 기적'이라는 CPR(심폐소생술)에 관련된 생명연수를 S소방서로부터 받았으며 선생님들을 위한 학교폭력예방에 관한 길라잡이연수를 이수했다.
또한 한 달에 한번 꼴로 전교생들을 대상으로 폭력예방 특강을 실시하고 있다. 아무리 사소한 육체적 장난일지라도 상대를 다치게 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킴으로써, 또 다시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다. 무엇보다도 갑작스레 소중한 친구를 잃고 공황상태에 빠졌을 당시 1학년 2반 학생들에 대해서는 외상후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심리 상담치료가 세심하게 병행되었다.
이제는 우리학교 구성원 모두, 생명의 소중함과 건강의 귀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다만 너무 큰 희생과 대가를 치른 후에야 깨달은 것이어서 더욱 안타까운지도 모르겠다.
수기를 마치며…
전국에서 한 해 동안에만 약 10여명의 학생이 학교폭력으로 사망하고 직접 피해자는 32만1000명에 이른다고 한다(2012.11.17일자 조선일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실 우리도 이런 비극이 발생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막상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아이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든 사건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번 우리의 사례가 일선 학교들에서 학교폭력을 예방하는데 조그마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수성아, 네가 떠난 빈 교정에도 노란 은행잎은 여전히 피고 지고 선생님들의 마음에 데인 상처는 아직도 아물 줄을 모르는구나. 수성아, 먼 훗날 우리 다시 만날 그때까지 부디 천국에서나마 행복하길 빌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