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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시 읽는 선생님(1)

아내는 가끔 미역국을 싱겁게 끓인다.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초등학교 박천호 교장의 시

나이도 들만치 들었고
손맛도 있다고 하는 아내가
미역국을 싱겁게 끓였다
청정한 남해안 미역에
한우 등심 넣었는데도
제 맛 나지 않는 미역국
입안에 한 숟갈 넣으며
슬그머니 푸념을 한다
간장이며 소금도 있고
마늘도 넉넉히 다져놓았는데
미역국을 왜 이리 싱겁게 끓였누?
목구멍 가득 궁금증 차오르기 전에
문득 떠오른 기억 하나
아, 오늘이 딸아이 생일이었구나
객지에 나가 챙겨주지 못한
어미 마음 미역국에 담았구나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
훌쩍 식은 미역국에 떨군다
그제야 간이 맞는다


손맛 있는 아내가 오랜 세월 다져진 솜씨로
갖은 양념 다 갖추어진 부엌에서 끓인 미역국이 싱겁기만 하다.
늘 먹던 맛깔 나는 그 맛 사라진 미역국 먹으며 푸념 한 마디 던지려는데 떠 오른 생각
객지 나가 공부하는, 객지 나가 고생하는 딸 아이 생각하다
소금 넣는 걸 잊어버렸나보다.
그래 오늘이 그 아이가 내게 와준 날이구나 생각하니
정성 다해 키우지 못한 아빠의 미안함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 흐른다.
그런데 그제야 국의 간이 맞는다. 단 맛이 나도록 국의 간이 맞는다.

지겨운 세상, 아픈 세상, 내 손으로 스스로 이별을 고하고 싶은 세상조차도
다시 제 맛 나게 하는 건 날 사랑해주는 날 걱정해주는 그 사람의 눈물이다.
아버지가 딸을 생각하며 흘린 눈물, 그 눈물이 아내의 부족한 요리를 맛나게 만들었듯이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위해 흘린 눈물의 양만큼 세상은 아름다워진다.

교사라는 이름으로 내가 만나는 내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으로 가는 날개를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나 교사의 눈물이다.

임용고사 합격 후
실패라는 이름표 다시는 없을거라 자신했던 교사들이
스스로 찾아서 붙여 가야할 이름표는
내 제자들의 학업에의 실패, 내 제자들의 우울증이란 실패,
내 제자들의 폭력성이라는 실패의 이름표다.

제자의 실패에 가슴 아파 울 수 있는 교사들의 눈물이
학부형들의 마음에 살맛이라는 간을 더한다.

눈물은 그에 대한 나의 공감이고 희생이다.
그래서 울 수 있는 교사는 울지 못하는 교사보다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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