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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동화로 돌아본 교단 50년(49) 기나긴 하룻밤

기나긴 하룻밤

벽에 걸린 시계는 쉬지 않고 째깍거리며 가느다란 초침을 열심히 돌리고 있었습니다. 꼬마전구에서 나오는 뿌연 불빛은 밤이 깊어지면서 점점 더 밝아지는 듯 눈이 부셔오고, 째깍거리는 시곗소리가 고막을 울리는 듯 점점 크게만 느껴집니다.

경수는 시곗소리가 지하철이 몰려오는 소리마냥 크게 울려서 두 손으로 귀를 틀어 막았습니다. 꼬마전구의 불빛이 눈이 부셔서 두 눈을 꼬옥 감았습니다. 옆에 웅크리고 누운 훈식이도 몹시 불안한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엎치락뒤치락하는 눈치입니다.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끊이지 않고 덜컹거리는 열차의 소음이 끊임없던 지하철역이지만, 막차가 몇 명 되지 않는 손님을 싣고 졸리운 듯 걸음을 재촉하며 휑하니 떠나고 난 지금은 이젠 무덤 속보다 더 조용하고 괴괴하기까지 하여, 작은 숨소리마저 천장이 들썩일 듯 크게 들리는 세상에서 제일 조용한 곳으로 변하여 버렸습니다.

경수는 점점 피곤하고 견딜 수가 없으면서도 눈만은 더욱 말똥말똥해지고, 곁에서 옷자락만 움직여도 그 소리에 놀라 깨어나곤 하는 자신이 무척이나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어서 이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계의 초침이 가는 것을 바라봅니다.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초침의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고장난 시계가 아니라면 어느 시계나 똑같은 속도로 가고 있을 것이라는 것쯤은 세 살 먹은 아이도 알고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경수의 눈에는 이 시계가 느림보라고 생각이 됩니다. 왜 이렇게 시간이 느리냐고, 시간이 이렇게 느리게 갈 수가 없다고 소리라도 치고 싶습니다. 눈을 감으니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환한 얼굴로 양팔을 벌리고 안아 주려고 오시는 어머니,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칭찬을 해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자 그만 눈에서 눈물이 핑돌고 맙니다. 경수는 울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어머니가 더 보고 싶어지고 어머니의 품에 꼬옥 안기고 싶습니다.

땀냄새와 어우러져 풍겨오던 어머니의 냄새가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다른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귓가에서는, “경수야! 어딨니? 경수야, 어딜 가서 무얼하고 있니?”하는 어머니의 외침소리가 맴을 돌고 있습니다.

눈물이 쏟아지는 눈앞으로 맛있는 반찬이 가득한 밥상을 들고 어머니가 빙긋이 웃으시며 다가오는 듯 합니다. 어쩌면 무서운 얼굴로 잔뜩 꾸중을 하실지도 모르지만, 지금 어머니의 품에만 안길 수 있다면, 쪼르륵 소리가 나는 배고픔도, 무서움도, 이토록 가슴이 미어지도록 보고 싶음도 모두 다 해결이 될 것만 같습니다.

그냥 벌떡 일어서서 달려가고 싶습니다.
“어머니!”
하고 외치며 달려가고 싶습니다.

경수가 학교에 입학하던 날은 경수네 집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경수 아버지가 나이가 많이 들어서야 결홍을 했기 때문에 이제 겨우 국민학교에 입학을 하는 경수의 나이 일곱 살인데, 아버지는 마흔살이나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친구분들은 벌써 중학생이 된 자녀들 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니 경수의 입학이 얼마나 반갑고 대견스러운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양쪽에서 경수의 손을 잡고 경수가 바라는 대로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을 사주면서 즐거워했습니다. 또 가방, 신발 주머니, 실내화도 사주었습니다.

경수의 학교 생활은 날마다 즐겁고 신나는 날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꼭 엄마처럼 아이들을 귀여워했고, 쓰다듬고 안아 주면서 재미난 이야기와 노래로 싫증이 나지 않도록 보살펴 주었습니다.

4월이 되어서 교과서의 공부가 시작될 무렵부터 어머니는 경수를 따라 학교에 나오시던 일을 멈추었습니다. 그 대신 학교까지 걸어서 다닐 수가 없다고 아침마다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시고, 버스를 태워 주면서 차비와 용돈을 주셨습니다.

경수는 버스에 올라서 기사 아저씨 옆에 달린 요금통에 5백원 짜리 동전을 딸랑 집어 넣으면서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는 노란 유치원 가방에 유치원 모자를 쓰고, 마을 앞에 나와 있으면 유치원 통학차가 실러 와서 이 동네 저 동네를 돌면서 친구들을 싣고 달려가곤 했습니다. 어쩌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시장에라도 따라 가려면 어머니는 언제나 어머니의 차비만 달랑 내셨습니다. 아직도 어린 경수의 차비만 달랑 내셨습니다. 아직도 어린 경수의 차비는 안 내어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자기도 차비를 내고 차를 타게 된 게 어른이 된 것만큼 기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또, 반가운 건 차비 80원을 내고, 나머지 거스름돈과 집에 돌아갈 때의 차비 80원만 남기고 마음놓고 군것질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부터 경수는 친구들에게 자기의 과자를 나누어 줄 수 있고, 좀 달라고 손을 벌리는 친구위 손에 알사탕 한 개라고 나누어 주고 나면 그 기뻐하는 모습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경수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런 친구들에게 경수는 자기 차비로 몽땅 과자를 사서 나누어 먹기도 하고, 걸어서 집에 오기도 하고, 심술이 나면 혼자서 과자 봉지를 들고 기찻길을 따라 걸으면서 먹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차비까지 몽땅 과자를 사먹고 터덜터덜 걸어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가 몹시 기다린 모습으로, “아니, 왜 이제야 오니? 이렇게 늦게까지 어디서 뭐했어?” 하시며, 걱정을 하셨습니다.

“엄마, 돈을 잃어버려서 찾다가 할 수 없이 그냥 걸어 왔단 말이야.”
경수는 자신도 모르게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것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술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니, 그랬어? 그럼 좀 빌려 달라고 선생님한테 말씀드리지 그랬니? 언니들한테라도 빌려 달래지. 그럼 엄마가 갚아 줄 텐데…….”하시며, 몹시 걱정을 해주셨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경수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차비도 남기지 않고 몽땅 털어 사먹어 버리는 버릇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학교 주변을 맴돌다가 다시 학교로 들어가서,
“선생님, 차비를 잃어버렸어요.”하면, 선생님이 백원짜리 동전 한 닢을 주십니다.

그거면 집에 올 수가 있으니 걱정이 없습니다. 그래도 자꾸만 거짓말을 할 수가 없으니, 가끔씩 써 먹는 방법입니다. 언젠가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고, 자꾸만 잃어버리자 어머니도 꾸지람을 하셨기 때문에 또 그런 방법을 쓸 수는 없습니다.

이제 경수는 돈을 함부로 쓰는 버릇이 고칠 수 없도록 깊게 배어들었습니다. 하루라도 돈이 없으면 힘이 없고 맥이 주욱 빠지는 것 같습니다. 뭔가를 사지 않으면 그날은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뭘 사먹고 친구들하고 나누어 먹어야만 합니다.

어느 날은 어머니가 아프다고 자리에 누워 계셨습니다. 경수는 이제 2학년이 되었으니 아픈 엄마더러 돈을 달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가만히 나오는 순간 어머니의 돈지갑이 보였습니다. 경수는 지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어머니의 돈이지만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어머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경수는 인사를 하고서 달리듯 집을 빠져 나왔습니다. 온종일 걱정이 되어서 공부도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친구들과 맛있는 떡볶이를 사 먹을 때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경수는 걱정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머니는 간신히 일어나셔서 집안일을 하시고 계셨지만 돈 이야기는 하시지 않았습니다. 경수는 ‘후유’하면서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심을 하였습니다.

2학년 가을부터 경수네는 서울 신촌 시장에 조그만 반찬 가게를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아서 아침에 집안일을 마친 어머니는 경수가 학교에 간 뒤에 아버지를 도우려고 간단한 점심 준비를 해가지고 집을 나서십니다. 저녁 열 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도와서, 저녁때가 되도록 함께 가게일을 하시다가 돌아오면 저녁 일곱 시쯤 됩니다.

경수가 집에 돌아오면 집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어머니가 아침에 놓아두고 가신 경수의 점심상과 전자자에 들어 있는 밥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경수는 입에 맞는 반찬이 있으면 밥을 많이 먹지만 보통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숙제를 합니다. 물론 과자나 뭐 그럴듯한 군것질을 준비하여 먹어가면서 말입니다.

전자 오락기로 게임을 하기도 하고,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 온 재미난 만화와 무술 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경수네 집에 자주 놀러 옵니다. 경수 어머니도 경수가 혼자 외톨이가 된 것이 미안해서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노는 것을 그다지 말리지는 않았습니다.

도리어 큰 말썽을 부리지 않고 혼자서도 잘 자라주는 귀여운 경수가 그저 고맙고 대견스럽기만 하였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런 경수가 자신들의 꿈이며, 내일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보다 휠씬 특별한 아이로 자라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해달라는 건 모두 다 해주고, 남보다 더 좋은 옷, 좋은 학용품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경수는 더욱 더 용기를 내어 친구들과 사귀고 무서운 줄 모르고 마음껏 돈을 쓸 수 잇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 말씀만 드리면 친구들과 사귀며 쓸 만큼의 돈을 주시기 때문에 걱정이 없습니다.

가끔씩 어머니의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하나쯤 가져다 쓰더라도 어머니는 그걸 눈치채지도 못하고, 또 그쯤은 하루나 이틀이면 모두 없어지고 마는 작은 돈이니 항상 경수에게는 돈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지갑에서 돈 2,3만원을 가지고 나온다 해도 아버지, 어머니는 눈치를 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게 되었으니 그깐 돈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만 돈을 훔치는 버릇이 생긴 자신이 자꾸만 미워지지만 그래도 학교에 나가기만 하면 또 돈을 써야만하니 어쩔 수 없이 돈은 필요합니다. 경수는 며칠 전 유선 방송에서 보여준 프로그램의 사이사이에 비친 양념통닭의 광고가 지금까지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그 곳에 가서 한번 실컷 먹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경수는 지난 일요일에 어머니의 지갑에서 3만원을 꺼내서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수요일에는 오전 수업으로 끝나는 날이니까 학교가 끝나는 대로 제일 친한 친구 훈식이와 함께 서울로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수요일 아침에 훈식이는 머리가 아프다고 책상 위에 엎드려 있다가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경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돌아가 책가방을 놓아두거서 누군가와 함께 서울에 가자고 할 계획으로 학교 부근에 되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훈식이가 교문 앞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경수는 훈식이에게 다가서며,
“훈식아, 서울 가자. 신촌 로터리에 있는 켄터키 치킨 집에 가서 켄터키치킨 사먹고 오자.” 하고 훈식이를 끌었습니다. 지난번에는 경수와 함께 양념통닭을 먹은 적이 있었으므로 별로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둘은 나란히 치킨 집에 들어가서 한 마리를 시킨 후 몽땅 먹어 치웠습니다. 아직도 돈은 충분합니다. 호주머니에 든 돈을 어디에 쓸까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 전자 오락실에 가자.’
경수는 훈식이의 손을 끌고 전자 오락실에 들어가서 5천원을 바꾸었습니다. 신나는 놀이가 많았습니다. 태권도․권투․야구등 갖가지 놀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했습니다. 더구나 동네에서 놀 때는 해가 저물어가면 곧 어두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곧장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실내이기 때문에 밖이 어두운지 밝은지조차 알 수가 없는 데다가 신나는 오락기에 정신을 몽땅 빼앗기고 있습니다. 벌써 5천원이 다 떨어졌고, 다시 5천원을 동전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돈을 바꾸는 것을 보고 있던 고등학생쯤 되는 형이 경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더니 귀에 바짝 입을 대고는, “야, 꼬마야. 잠시 좀 나올래, 조용히 좀 나와 응.” 하며, 앞장 서 나갔습니다. 경수는 따라 나갔습니다. 으슥한 골목으로 끌려간 경수는 그 형에게 단돈 백원은커녕 한 푼도 남김없이 모두 빼앗겼습니다. 차비만 남겨 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조금도 사정을 보아주지 않았습니다.

경수는 힘없이 오락실 문을 열고 들어 섰습니다. 훈식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습니다. 그 뒤에 가서 가만히 지켜보던 경수는 훈식이가 놀이를 끝내자 가만히 어깨를 잡고 말했습니다.

“훈식아 가자. 돈을 몽땅 뺏겼어.”
경수가 기운이 빠진 모습을 보이자 훈식이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부랴부랴 밖으로 나와서 보니 벌써 거리는 사람의 발걸음이 뜸해지고 있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열한시가 넘어서 열두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경수와 훈식이는 몹시 걱정이 되어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벌써 버스는 끊어진 시간이었고, 집에 가려고 해도 돈도 한 푼이 없습니다.

이제 집에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지하철을 타고 종점 구파발까지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무작정 지하철역으로 들어가서 매표구의 눈을 피해서 살금살금 검표기계밑을 통과하였습니다. 무작정 플랫폼에 들어오는 전철을 탔습니다.

그런데 몇 정거장을 가도 구파발이 아닌 시내로만 가고 있었습니다. 다시 내려서 반대편 차를 타고 갔습니다. 3호선을 어디서 갈아 타야 하는지 모르는 경수와 훈식이는 귀를 기울이다가 충무로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막차가 떠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역무원아저씨에게 끌려서 역무원 숙소에 들어선 경수와 훈식이는 겁에 질려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밤새 그냥 쭈그리고 누워서 시곗소리와 전등 불빛 때문에 잠을 못 잔다고 생각하고 누워 있습니다. 집에서 야단이 났으리라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날이 밝으면 차를 태워 보내줄게.”
아저씨의 말만 믿고 무섭고도 기나긴 밤을 지새고 있는 것입니다. 쭈그리고 누워서 시달리던 경수는 그만 깜빡 잠이 들었는지, 덜커덩거리는 지하철 소리에 눈을 번쩍 떴습니다.
이제 겨우 다석 시가 조금 넘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벌써 지하철을 타고서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습니다. 경수는 이제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해 피곤해서 벌떡 일어나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시끄러운 소음이 들려오는 속에서 다시 잠이 든 경수는 여덟 시가 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간신히 일어나서 훈식이를 깨우고 간단히 세수를 한 후 밖으로 나섰습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구파발을 향하는 전철을 타고 달려서 구파발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아홉 시가 훨씬 넘어 있었습니다. 눈치를 살피며 살금살금 나와서 역을 빠져 나왔습니다.
약 8킬로미터 가야 하는데 차비는 한 푼도 없으니 버스를 탈 수가 없습니다.

이쩔 수 없이 걸어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경수와 훈식이는 고픈 배를 움켜쥐고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학교에서는 두 아이의 행방을 찾느라고, 온통 벌집을 쑤셔 놓은 것만 같았습니다. 본 사람이 있는지, 어디고 갔는지를 추리하며 전교생이 야단이 났고, 보았다는 사람들이 교무실로 모여 들었으나 결론은 점심을 먹은 뒤에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는 것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쉬지 않고 전화벨이 울리고 갖가지 소식이 몰려왔지만 특별히 참고가 될 만한 것들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열두시가 거의 되어서 겨우 어느 부락에서 아이들이 학교로 오고 있어서 확인하고, 지금 곧 데리고 오겠다는 연락이 들어 왔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돌아오고 부모들이 달려와서 서로 부둥켜 안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그제서야 안심을 하고,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경수는 어머니가 보이자, 두 팔을 벌리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습니다.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서 어머니의 냄새를 가슴 속 깊숙히 들이마시면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경수야! 어디서 무얼 했어?”
어머니는 목이 메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경수와 훈식이 어머니에게 식사 준비를 하도록 미리 보내고 나서 아이들을 불러들였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너희 멋대로 행동하니까 어떠니? 어제 낮엔 재미있고 신났었지. 하지만 어젯밤부터 오늘까지는 그렇지 못했지.”

아이들의 얘기를 주욱 듣고 나신 교장 선생님은 두아이를 번갈아 보면서 말씀을 이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 처음 비를 맞으면서 밖으로 나서면 빗방울이 이마에 떨어졌는지, 콧등에 떨어졌는지를 다 알 수 있고, 깜짝 놀랄 만큼 차갑게 느낄 수 있지만, 계속 비를 맞으면서 걷고 있노라면 비가 오는지 어쩐지를 몰라서 그냥 걸어가면서 맞아도 비를 느끼지 못하게 된단다. 너희들이 처음에 작은 잘못을 저질렀을 땐 곧 그 잘못을 깨닫고 이런 짓은 하지 말아야지 했을 게다. 하지만 그걸 깨닫기도 전에 일은 점점 눈덩이처럼 커졌지. 너희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이어서 앞으로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더 이상 나쁜 짓은 하지 않도록 조심들 해야 한다. 알겠니?”하고 두 어린이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경수는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잘못을 스스로 반성을 해보면서 어머니가 자신에게 해온 일이 자신에게 잘해 준 게 아니라 망쳐 놓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어머니는 돈이 얼마나 많으면 내가 몇 만원씩 돈을 훔쳐도 모르실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체하고 있었을까? 그래서 결국 나는 자꾸만 훔치게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경수는 곧 다르게 생각해 봅니다. 모든 문제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제는 정말 착한 사람이 되어야지.’하고 스스로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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