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비행기는 삶과 같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비행기를 학생들과 날리는 그의 얼굴은 아직도 꿈 많은 소년이다. 실제 비행기든 모형항공기든 그에게는 자식같은 존재다. 거의 40년간 모형비행기와 함께 살아오고 있는 그는 전국항공스포츠대회 고무동력기부문 은상을 비롯해 수십차례 전국대회에서 입상한 베테랑이기도 하다.
경기성남 서당초등교 은정남 교장. 안락한 소파는 없고 교장실 구석구석이 모형비행기와 관련 파일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는 모습에서 그의 열정이 느껴진다. 교장실 바로 옆은 작업실. 방과후면 학생들과 학부모와 함께 나무를 깍고 접착제를 붙이는 곳이다. 난생 처음 보는 커다란 모형비행기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아이들에게 모형비행기를 교육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끈기력과 과학적 창의력을 키우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분야죠. 공부와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집중력도 키우고 꿈을 기를 수 있습니다. 작동 원리들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훌륭한 과학교육 분야가 됩니다."
그의 지도 덕택에 이 학교 학생들은 관련 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있다. 그렇지만 은 교장은 각종 관련 대회에 불만이 많다. 교육적인 효과보다는 상업적인 경향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모형항공기 창작은 클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관련 대회들이 특정제품만 사용하도록 하는 곳도 많고 크기도 작게 제한되기 일쑵니다. 종이까지 지정하는가 하면 엉터리 상들도 남발되고 있습니다. 창작이라는 것이 없고 반복 연습과 상타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셈이죠. 짜 맞추기 식으로는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은 교장은 대회를 아예 만들어 버렸다. 지난 18일 분당고와 함께 개최한 은빛날개배 학생·교사 대회가 그것으로 올해로 3번째를 맞았다. 교육자가 나서서 알찬 대회를 개최하자는 취지였다. 이 대회는 글라이더부의 경우 주날개 길이를 190cm 이상으로 제한했다. 상품화된 모형비행기는 사용할 수 없고 순수 창작품으로만 참가가 가능했다.
"폐품을 재활용해서도 얼마든지 훌륭한 비행기를 만들 수 있는데 이런 대회를 보면 너무 가슴이 아팠다"는 은 교장은 직접 가정에서 쓰는 랩을 이용해 날개를 만든 2미터에 달하는 비행기를 직접 운동장으로 가지고 나가 시범을 보여줬다.
은 교장은 비행기에 대한 꿈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됐다. 항공분야에 도전하기 위해 공군사관학교에 지원했지만 신체조건 때문에 탈락했다. 하지만 교사가 되서도 꿈은 이룰 수 있다고 판단했고 이제 이 분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현재 많은 학교에서 학교를 찾아와 은 교장에게서 제작을 배우고 있다. 안양공고 학생 26명이 한달에 2번씩 방문 교육을 받고 있으며 부곡고 10명, 대진고 7명을 비롯해 안양 신성고, 낙생고 등에서도 교육을 받으러 오고 있다. 재료비만 내면 은 교장이 무보수로 가르쳐 준다. 원리부터 제작까지 강의와 실습을 병행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처음에는 초등학교 수준에서 별다른 것이 있을까 하지만 와서 보고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재학생들도 희망을 받아 가르치고 있으며 교사, 학부모의 참여 열기도 뜨겁다. 이 학교 교사들도 이번 대회에 14명이나 참가했다. 연구학교나 실험학교도 아닌 곳이 모형비행기 교육의 메카가 된 셈이다.
1년 동안 교육을 받았다는 6학년 고종운 학생은 "교장선생님과 함께 제작하고 직접 비행기를 날리고 상도 받을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은 교장은 "내년이면 정년이지만 모형항공기와의 인연에는 정년이 없을 것"이라며 "학생들의 창의력 교육에 끝까지 도움을 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은 교장은 2001년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