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스승의 날을 앞두고 양손 가득 꽃바구니와 선물을 들고 학교를 방문하는 제자들이 많다. 점심시간에 맞춰 나를 방문하겠다는 제자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번호가 폰에 저장돼 있지 않기에 메시지를 보낸 제자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선생님, 점심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
점심시간, 문자를 보낸 제자로부터 전화가 걸러왔다.
"선생님, 지금 어디 계세요?" "미안하지만, 제자 누구?"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교무실 출입문 쪽에 나와 통화를 하는 제자가 눈에 들어왔다. 먼발치에서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제자의 모습이 보였다. 나를 보자, 제자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가왔다.
"선생님, 저 기억나시죠?" "……""○○회 졸업생 ○○○입니다." "그래. 멋있어 몰라보겠구나!"
졸업한 지 오래돼 제자의 이름을 기억하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사실 제자가 자신의 이름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면 제자의 이름을 하마터면 기억하지 못할 뻔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제자는 2학년 때 전학을 와 담임인 나를 포함해 교과 선생님의 주목을 그다지 받지 못했다. 더군다나 성격 또한 내성적이어서 재학 중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제자였다. 제자는 나를 깜짝 놀라게 해주기 위해 문자메시지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제자와 졸업 후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교사휴게실에서 한참이나 나누었다. 제자는 대학 입학하면서부터 그간 있었던 모든 이야기를 터놓기 시작했다.
수도권 대학 경영학과에 합격한 제자는 대학 1, 2학년 때,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 해 방황을 많이 하였으며 심지어 학교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제대 후 깨달은 바가 있어 학업에 전념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부한 것이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운 좋게 대기업 공채시험에 합격한 제자는 이곳에 있는 대기업 연수원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연수를 마친 뒤, 문득 학창시절이 떠올라 학교에 잠깐 들른 것이라고 했다.
학창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제자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모두 지난 이야기인데 뭐."
제자는 지난날 섭섭했던 솔직한 마음을 내게 털어놓았다.
2003년 5월. 연이은 행사로 아이들의 마음 또한 많이 해이해져 있었다. 특히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무단으로 집에 가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이들의 이런 행동을 참다못해 다음 날 아침 도망간 아이들을 회초리로 손바닥을 호되게 때린 적이 있었다. 그 아이들 속에 녀석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손바닥을 잘못 맞아 퉁퉁 부은 손으로 필기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녀석은 이야기 내내 계속해서 자신의 손바닥을 만지작거렸다. 그럴 때마다 녀석에게 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오랜만에 찾아온 제자의 말 한마디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사실 그 당시에는 체벌이 허용된 시기라 학생들이 매 맞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이들 또한 잘못하면 매 맞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때이기도 했다. 그런데 학창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그 어떤 가르침이 아니라 체벌이라는 제자의 말에 교사로서 나 자신을 한번 뒤돌아보았다.
교단에 선 지 23년, 오늘 찾아온 제자처럼 매 맞아 나를 원망하며 생활하는 제자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한편 어떤 이유에서든지 학생지도에 체벌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거의 한 시간 동안 제자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문까지 배웅해 주겠다는 내 제안을 제자는 완강히 거절했다. 그러나 졸업 후 몇 년 만에 찾아온 제자라 조금이라도 더 석별의 정을 나누고자 제자와 교문까지 동행했다.
교문까지 걸어가면서 제자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마도 그건, 학창시절 체벌에 대한 그 어떤 미안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교문에서 제자는 다시 찾아뵙겠다며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난 뒤 뒤돌아서 갔다. 나는 제자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런데 제자를 배웅하고 난 뒤, 학교로 올라오는 내 마음이 너무나 홀가분한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