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월은 감사의 달이다. 그 한 가운데 15일 스승의 날이 들어 있다. 그러나 요즘 시대에 선생은 많아도 스승은 드물다고 봐야 한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딴지를 건다면 명쾌하게 말해 줄 자신이 없다. 하지만, 선생은 보편적인 명사요. 스승은 정신적인 명사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은 말 그대로 먼저 태어나서 배운 지식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의미가 강한 반면에 스승은 본인의 정신과 삶을 모두 제자에게 전수해 준다는 의미가 크다 하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날 스승은 단순한 지식만 전달해주는 도구로 전락된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안타깝게도 지식 전달자는 차고 넘치지만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주는 스승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세상임에는 틀림없다는 게 세인의 평이다. 그러나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게 스승은 나타나게 마련이라고 했듯이. 배우는 자의 자세 또한 중요하다 하겠다. 공자도 말하기를 三人行, 必有我師焉(삼인행 필유아사언)이라고 했다. 세 사람이 동행하면 반드시 그 속에 내 스승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스승`이라는 단어가 이상하다. "나는 교수다" 또는 "나는 교사다"라고 말할 수 있어도 "나는 스승이다"라는 말을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저분은 제 스승이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의 스승이다"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선생님과 스승을 흔히 동일시하지만, 선생님이 당연히 스승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스승은 선생(先生)이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스승은 오로지 후생(後生)이 인정하고, 지정하고, 그들 입으로 불리는 존재다. 제자와 관계에서만 존재하는 상대적 실체다. 제자 마음속 깊은 곳에 머무는 그윽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승이란 호칭은 선생님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승진이며 영원한 칭호다. 교육자로서 쌓아온 경력과 스펙으로 교직에서 승진하더라도 그것으로 마지막 승진을 얻을 수는 없다. 스승님이란 호칭은 진정한 교육자로서 살아온 모습과 흔적에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학생과 후생들의 순수한 직감으로 느껴지는 모습과 흔적인 것이다.
40년을 넘게 교직에 있으니 필자를 만난 학생과 후생이 얼마나 많던가. 그러나 그중 과연 몇 명이 필자를 스승이라 불러줄까. 스스로는 "○○는 내 제자"라고 자칭하지만 과연 그들은 필자를 "내 스승"이라고 불러줄까. 착각은 자유이다. 이제야 깨달았다. 더 늦기 전에, 아직도 기회가 있을 때 모든 아이들과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자 다짐해 본다. 스승의 날 주고 받는 꽃 한송이가 있어서 기쁘고, 고맙고, 행복하다. 존중을 받는 기쁨을 노래하는 제자, 사랑하는 제자를 가르치는 행복. 아직도 기회가 남아 있어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