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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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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지게의 숨고르기

이른 봄 잎이 피기 전 길을 밝힌 벚나무 잎이 발갛게 물들고 있다. 만개한 꽃보다 더 깔끔한 붉은 색의 조화에 가까이 잎을 보니 군데군데 까만 반점과 벌레에 먹힌 구멍들이 지나온 몇 달의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십일월의 초입 초겨울을 향해 밤낮 기온이 반전을 거듭하자 나무들은 겨울 채비를 한다. 돌아보는 시간! 생활이 녹록지 않았던 시절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하는 일이 겨울용 땔감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깻단, 솔가리, 나무 그루터기, 솔방울 등 불 땔 수 있는 것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렇게 나무를 하는 일이 일상이 되다 보니 인가 근처 산은 비로 쓴 듯이 깔끔하여 땔감을 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저마다 도끼, 낫, 갈퀴를 바작에 짊어지고 먼 곳의 산을 찾아다녔다. 다행히 자기 소유의 산이 있는 집은 그나마 낫지만, 그것도 나무를 누가 해 가는지 산지기 노릇도 해야 하는 가진 자의 불평도 있었다.

몇 년 전이었다. 망운산 망운사로 아이들과 늦가을 산 오르기를 하였다. 높은 곳에서 남해읍이며 강진만을 내려다보며 경치 좋다고 하자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은사님께서 철들어서부터 대학교 다닐 때까지 이곳까지 지게 지고 나무하러 온 일이 수십 번이라고 했다. 또한 여기까지 지게 지고 나무 한 짐 하러 오면 하루가 걸린다고 하였다. 굽이지고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좁은 길을 지겟작대기에 의지하여 참는 일과 쉬는 일을 반복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유일한 운반수단이 지게였으니 그 힘듦을 어떻게 말 할 수 있을까?

지게는 우리 고유의 짐을 옮기는 수단이라고 한다. 어떤 방송에서 지게가 우리나라 사람에게 인내하는 마음을 길러주었으며 삼각형 구조에 의하여 무게중심과 힘의 분산방법이 수학적이며 과학적이란 말을 들은 적 있다. 하지만 지게에 얽힌 우리네 부모님들의 삶은 좋은 점보다는 애환이 더 많다.

어느 지인의 아버지께 들은 내용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보내달라고 사흘 밤낮을 먹지 않고 문고리를 잡고 울었다 한다. 그래도 그분의 아버지는 꿈쩍도 않더라는 것이었다. 젖먹이일 때 어머니 여의고 형님네에 얹혀 살면서 언감생신 학교가 무어냐며 남의 집 머슴살이로 보냈다 한다. 하지만 정작 지인의 할아버지는 읍내에 있는 첩에게 눈이 멀어 좋은 것 다 갖다 주며 자식도 나 몰라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 한을 삯이며 지게를 지고 이를 악물며 수년 동안 모은 새경으로 마을의 방앗간을 사 주었더니만 이번에는 노름에 빠진 형이 방앗간을 말아먹고 객사를 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울분을 참으며 또다시 지겟다리 두들기며 바작에 짐을 싣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광산에 일하여 일가를 이루었지만 본인은 환갑이 되기 전에 세상을 멀리하였다는 한스러운 얘기였다.

요즘은 지게를 보기 힘들다. 무슨 일을 하든지 중장비가 우선이다. 간혹 철물점에서 쇠파이프를 용접하여 지겟발을 끼워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거나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만든 지게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모양이 비슷한 두 그루의 나무를 구해다가 자귀로 다듬고 끌로 구멍을 뚫어 빗장을 조립하고 짚을 엮어 멜빵을 만든 것은 민속촌이나 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다.

내가 지게를 처음 져본 것은 중학생 때였다. 다랑논 천수답에 가을걷이하면 아버지 따라 같이 집으로 볏단을 나르게 해 달라고 조르면 어머니는 겨우 벼 몇 단을 새끼줄로 묶어 등에 지어주셨다. 그리고 아버지를 졸라 내 몸에 맞는 지게 하나 만들어 달라 하였지만 지게 지는 게 무어가 좋다며 거절하셨다. 하지만 성화에 못 이겼는지 결국은 지게를 만들어 주셨지만, 약골이어서 불과 서너 번 져본 기억밖에 없다. 지게는 이런 아픈 추억도 있는가 하면 재미있는 추억도 갖고 있다. 다리가 귀한 시절 비 온 뒤 물이 불어났을 때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가면 항상 개울 근처에서 지게를 태워 건네주셨다. 겁이 많아 언제나 양손으로 지게를 꼭 잡고 눈을 감고 건넜던 일이 지금도 선하다.

지게! 지금을 사는 세대들은 그 의미를 이입하기가 참 어려운 물건이다. 하지만 오늘의 이런 시대는 일찍이 등골이 빠지도록 땀 흘리며 가꾼 우리네 부모님들의 유산이다. 간혹 이 깊은 가을날 둘레길을 걸으며 지천으로 널린 갈비(솔가리)를 보면 욕심이 생긴다. 갈퀴로 모아서 짊어지고 집에 가면 정지문 열고 머리에 수건을 쓴 어머니가 뛰어 나오실 것 같다. 아직도 촌집의 창고엔 아버지가 지셨던 땀과 체취가 밴 지게가 지난날을 기억하여 가쁜 숨을 고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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