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은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2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하나는 메르스와의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메르스 공포 심리와의 전쟁이다. 우선 첫 번째 전쟁에서 우리가 밀리고 있는 느낌이다. 초기 방역의 실패와 비전문가에 의한 전문가의 지휘체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엇박자, 허술한 응급의료 체계, 후진적 병실문화, 낙후된 시민의식 등 우리 사회의 경박함과 몰합리성이 이번 사태로 드러났다.
사태가 심각할수록 혼란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현 상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국이 자료를 집계하고 발표를 할 때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하는데, 이런 면에서 우리 정부의 자세가 아쉽다. 그 결과로 국민들은 주요 책임자들에 대한 신뢰의 결핍을 느끼고 있다.
한국에 상륙한 메르스는 정부와 전문가들이 전하는 메르스와는 딴판이었다. 그러나 아직 비관하기에는 이르다. 우리가 메르스에 대해 알게 된 사실도 많기 때문이다. 변이는 없다는 정부 발표를 믿기 힘들 정도다. 메르스는 2차 감염자부터 감염력이 뚝 떨어져 3차 감염이 없다고 했으나 사실이 아니었다. 이미 4차 감염에 이르고 있다. 메르스 감염력은 1인당 0.7명에 불과하다고 했으나 1번과 14번 환자는 각각 31명과 37명에게 전염시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치사율이 40%라고 했으나 현재 7.36%이고 사망자도 대체로 심각한 질환을 가진 고령자들이었다. 공기감염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에어컨을 통한 에어로졸 형태의 감염 가능성은 제기되고 있다.
메르스가 두려운 이유는 아직 그 정체성을 확실히 모르는 병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중세시대 흑사병, 대항해시대 괴혈병, 산업혁명 시대 콜레라, 20세기 에이즈가 그랬다. 1740년 영국 해군이 아메리카를 정복할 때 배에 타고 있던 1955명 가운데 997명이 괴혈병으로 사망했다. 이때 전투로 인한 사망자는 단 4명. 이 저승사자의 정체는 1928년에 와서야 비타민C 결핍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질병은 극복의 대상은 될지언정 더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메르스도 마찬가지다.
1992년에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이라는 책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교수는 1995년에 <신뢰: 사회적 미덕과 번영의 창조(Trust: The Social Virtues and the Creation of Prosperity)>라는 책에서 경제적인 번영을 이루는 데 ‘사회적 미덕’으로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러 나라와 민족의 예를 들어가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즉, 그 사회의 구성원 사이에 신뢰가 깊을수록 사회 조직의 형성이 쉽고 활발해지며, 보다 큰 자본의 형성도 원활해져 결국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서로가 믿지 못하는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적·경제적 조직과 협력이 어렵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야 하는 큰 자본의 형성도 어려우며, 또한 그 규모도 자연히 작아지기 마련이란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시장이 위축되고 그 여파로 소비가 위축되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다.
우리가 채택한 시장경제체제는 자유로운 계약으로 서로의 권리와 의무를 준수해 가며, 사유재산권을 지켜주는 제도이다. 그런데 정직하지 못하고 남을 속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한 사회에서 사회구성원 간에 신뢰가 두터워지기를 바랄 수 없음은 물론이다.
국가와 시민, 시민과 시민 상호간의 신뢰가 두터운 사회에서는 거짓말로 상대를 기만하는 것을 무엇보다 부끄럽게 생각 해야 한다. 지금 정부가 뚫렸다느니 병원이 뚫렸다느니 이야기기 많지만 진정 뚫린 것은 국민의 가슴이 아닌가! 이에 경제활동이 위축된 현상을 체감하게 된다. 우리들의 경제활동이란 사회생활의 중요 부분을 나타내며, 그 사회를 형성하는 다양한 기준·규칙·도덕적 의무, 그리고 이들 이외의 관습 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후쿠야마 교수는 설명했다.
따라서 경제생활의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어떤 국민의 복지 및 다른 국민과의 경쟁력(결국 국제경쟁력)은 그 사회에 널리 보급되어 있는 문화적 특징, 즉 그 사회의 고유한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직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문화, 환언하면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문화가 그 민족이나 국가의 ‘달성 가능한 번영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정부는 이 위기가 더 이상 신뢰의 위기로 확산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최선책을 찾아 보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