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에게 꼭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 자연, 사랑 같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 나라 대다수의 학부모님들이 묻고 있는 질문은 단연히 공부라 생각한다. 나에 대한 공부, 세상 공부, 자녀의 공부이다. 이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이 바로 내 자녀의 대학에 진학하는 공부이다.
사실 학부모들의 이러한 힘 때문에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을 보고 오바마는 미국민에게 자주 한국을 보고 배우라고 한다. 이 유전자가 우리 몸 속에 흐르고 있다. 그래서 우리 집도 가난했지만 아버지는 나를 공장이나 다른 직장에 빨리 들어가 돈 벌라고 하지 않고 대학에 보내주신 것이다. 오늘의 나는 우리 아버지 덕을 보고, 그 말을 따라 산 결과 오늘의 내가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무한 경쟁사회라면서 공부를 주입하려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에 잘 순종하지 않고,공부에 재미가 없단다. 이에 포기해버린 선생님은 학생이 잠을 자도 깨우지 않는다. 그래서 학교교실은 수업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아이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으면 간단하게 "공부해서 남 주냐? 너 위해 공부하라."고 다그친다. 이러럼 모든 아이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코드가 공부다. 그래서 대한민국 전역에 공부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이로 인하여 대한민국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아우성이다. 이것이 모두 우리 사회와 우리 부모들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공부의 정체는 무엇인가? 장인 공(工)과 사내 부(夫)로 풀이 된다. 사내가 뭔가를 대장간에서 만들듯이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찾아보면 공부(功扶)는 '성취하다'와 '돕다'라는 뜻이 있다. 즉 공부해서 남을 돕자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하수는 나만을 위해 공부한다. 이런 사람은 나를 위해서라도 공부하니 안하는 사람과는 달라 이 세상에서 굶지 않고 살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공부로는 큰 사람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상수는 남을 위해 공부한다. 배운 것이 자신의 일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부를 통해 남에게 베풀게 됨으로 인생의 환희를 느끼게 된다. 배움을 나눠가는 것, 이것이 바로 '배움의 공동체'이다. 공동체는 혼자가 아닌 우리를 바탕으로 한다. 결과적으로 남과의 관계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생각을 만드는 것이 진짜 공부이다. 이것이 자신에게 진정한 행복감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제 지식은 어디에서든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아이들이 수준에 맞게 배워야 할 것을 잘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교육 컨테츠, 즉 교육과정이다. 그리고 가르치는 교사는 배움으로 이끄는 안내자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교사가 지식을 집어 넣어주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배움의 주인공은 학생이다. 미래사회는 학생들도 배움의 공동체를 만들어 서로 질문하고 배움을 만들어 나가는 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래의 학교는 잘 가르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면서 잘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