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21 (월)

  • 맑음동두천 13.8℃
  • 맑음강릉 10.9℃
  • 맑음서울 16.7℃
  • 맑음대전 16.7℃
  • 흐림대구 13.3℃
  • 흐림울산 12.2℃
  • 흐림광주 18.3℃
  • 흐림부산 13.2℃
  • 흐림고창 14.5℃
  • 맑음제주 18.8℃
  • 맑음강화 11.4℃
  • 맑음보은 14.7℃
  • 흐림금산 16.4℃
  • 흐림강진군 14.5℃
  • 흐림경주시 12.6℃
  • 흐림거제 13.2℃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문화·탐방

한일 50년의 '새로운 관계'를 향하여

6월 22일은 우리나라와 일본이 국교를 맺은 지 꼭 50주년 되는 날이었다. 50년 전 박정희 정권이 국민의 격렬한 반대를 계엄령으로 눌러가며 한일기본조약에 서명했다. 미국의 강한 개입 아래 소련-중국-북한의 공산세력에 맞서는 반공냉전 체제 구축 차원에서 수교가 이뤄진 탓에 양국에서 모두 반대운동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 없는 수교에 반대하는 운동이 거셌고, 일본에서도 사회당과 공산당 등을 중심으로 한-일 수교를 계기로 냉전의 한 대립축에 포함되는 것에 반발했다.

그 이유는 이처럼 단순하지가 않다. 현실적 제약 때문에 일본에 요구할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불충분하게 타협하였다. 한때 식민지 피지배국과 식민지 본국이라는 특수관계에 있던 두 나라의 수교 50년은 이처럼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또한 1970년대 초인 1973년에는 김대중 납치 사건과 1974년 재일동포 문세광의 육영수 저격 사건으로 단교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 후 세월의 흐름 속에서 한일 양국은 소위 ‘65년 체제’ 속에서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반목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 양국의 갈등이 다변화, 장기화, 구조화, 국제화하면서 화해의 출구를 막고 있다. 특히 전날 외교장관 회담에서 최근 대립의 한 소재가 되었던 일본 근대화 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문제에서 타결을 본 것은 좋은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이런 고위급 차원의 접촉과 움직임이 꽉 막혀 있는 두 나라 관계를 타개하는 전기가 되길 기대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일 수교는 두 나라 모두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한국은 일본이 제공한 경협자금을 잘 활용해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산업화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급속한 경제발전 과정에서도 일본의 기술, 자본, 경영 노하우, 무역 등 여러 방면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역시 한국과의 무역으로 막대한 흑자를 거뒀다. 이렇듯 두 나라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동아시아의 ‘쌍둥이 국가’로 성장했다.

최근의 한-일 갈등은 1965년 한일협정 체제가 시대의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 탓이 크다. 2011년 12월 이명박 대통령-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교토 정상회담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결렬된 이래 양쪽 지도자 간의 불화가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론 냉전 해체와 함께 찾아온 한국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민주화가 과거사 문제 해결 없이 탄생한 한일협정 체제를 흔들고 있다고 봐야 한다. 최대 현안인 위안부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는 이런 맥락에서 불거진 것이다. 근자엔 중국의 급부상에 대한 시각 차이도 주요 갈등 요인으로 등장했다.

두 나라 갈등을 푸는 데 명쾌한 답을 내기는 어렵다. 양국이 서로가 서로가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커진 한국과 작아진 일본의 틀이다. 커지고 작아진 게 단순히 양국의 국력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든 면에서 ‘관계의 판’이 바뀌었는데 ‘사고의 틀’은 바뀌지 않았다. 일본은 제국주의에서 영광을 찾지 말고 패전 이후의 성공과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전쟁은 패전에 대한 아쉬움과 화려한 회고의 대상이 아니라 진솔한 사과의 대상이다.

일본이 과거사에서 이웃국가에 대한 배려와 여유를 회복한다면 더이상 작아질 이유가 없다. 또한, 한국은 사죄 요구 외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기여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인정해야 한다. 무라야마, 고노 담화를 통한 1990년대 이후 있었던 일본의 노력을 평가절하 하고 있다. 한국은 '법적 책임 인정이 아니다' 라며 외면한 것이다. 이는 일본 우익 정치인에게 기회를 주는 요인이 되었다. 이제 한국은 예전의 한국이 아니다. 한국의 성장을 가장 확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이를 솔직하게 수용한다면 한국은 도덕적 우위를 지킬 수 있다.

한편,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채택한 ‘한일 공동선언-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은 큰 시사점을 준다. 이 선언에서 오부치 총리는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반성을 표명했고, 김 대통령은 평화헌법 아래서 일본이 전후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해온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해 나아가기로 했다.

한일은 어떤 관계를 지향해야 할 것인가. 가장 많이 나온 말이 ‘새로운 관계’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이를 위해 한국은 아프지만 넘어서야 할 과거와, 일본은 화려하지만 잘못됐던 과거와 결별해야 할 때가 온 듯하다. 양쪽 모두 미래라는 이름으로…. 누구도 밝은 미래를 장담하지는 못했지만, 과거로부터의 변신은 필요한 시점이다. 국제사회는 두 나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주의와 인권을 공유하는 ‘쌍둥이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 양국 간, 아시아에서, 국제사회에서 협력할 일은 여전히 많다. 한일의 협력 모델은 ‘국제사회의 공공재’가 될 수 있다.

1998년의 정신이라면 두 나라의 어떤 갈등도 풀지 못할 이유가 없다. 두 나라 정상은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발전시키는 데서 앞으로 50년의 미래에 대한 해답을 찾기 바란다.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