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을 쓰고 누군가 노래를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들과 연예인 판정단들이 출연자들의 노래 실력을 평가하고 최고의 가수를 선정한다. 지난 설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송의 성공 가능성을 인정받고 일요일 저녁 MBC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한 복면 가왕이다. 복면 너머 노래하는 그 사람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 사람이 들려주는 그 노래가 내 마음을 절절하게 감동시키기에 난 복면 가왕을 즐겨본다. 그리고 복면 너머 가수가 누구일까 추측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연예인들의 재담 또한 놓칠 수 없는 재미이기도 하다. 명성과 명함과 스펙과 직위라는 나를 나타내는 이름을 얻기 위해 모두가 한 줄로 서서 달려가는 대한민국에서 복면 가왕이라는 프로는 그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듯하다.
출연자들은 노래 실력 외에 그 무엇도 알아볼 수 없게 꼭꼭 숨기고 오로지 가창력 하나로만 대중의 앞에 서서 자신의 실력을 평가받는다. 나이 어린 여자 아이돌 가수가 노래 경력 십 년이 넘은 가수만이 가능하다는 애절한 감성표현도, 다양한 음역대가 필요한 곡의 소화도 멋지게 해냈다. 아이돌은 노래 실력보다는 춤과 외모로 승부한다는 편견에 멋진 한 방을 날린 것이다. 예쁜 여자 아이돌의 아름다움에 감춰진 back dancer 출신의 남자 가수가 그 누구도 상상 못한 노래 실력을 보여주었을 때 판정단과 시청자가 받은 감동은 누구라는 직위와 이름 뒤에 가려진 누군가를 우리가 얼마나 진심으로 이해하고 알아가려 노력했는지 돌아보게 했다. 때론 평판이라는 또 다른 이름에 속아 너무나 쉽게 누군가에게 가슴 아픈 상처 하나 나도 만들어 주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언젠가 ‘내 명함에 나를 다 담을 수 없어서 나는 명함을 만들지 않는다.’라는 글을 읽었다. 명함은 그 사람의 이름과 직위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 명함 속 자신을 만들기 위해 그 사람이 그동안 기울여온 노력은 그 종이 한 장에 다 채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그 명함이라는 복면 뒤에 만족하는 머무름일 것이다. 복면가왕에서의 복면은 편견에 대한 일침을 가하는 깨달음의 도구였지만 때로 복면은 지금 여기를 소홀하게 하는 자만(自慢)의 불씨가 되기도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학교라는 탄탄한 복면 뒤에서 교사인 내가 만들어 가는 가르침의 무대는 어떤 모습일까? 학교라는 울타리를 떠났을 때 난 누군가에게 진정한 존경심으로 이름 불리는 선생님일까?’ 생각하면 부끄러움이 먼저 떠오른다. 배움의 즐거움을 전하는 교사, 나의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돕는 즐거운 교사로서의 나의 모습이 복면 뒤의 나의 참 모습이길 바란다. 교사로서의 무형의 성숙함이, 무형의 영향력이 오롯이 내 복면 뒤의 나였으면 한다. 복면 뒤의 성숙함과 영향력을 완성해 나갈 자신이 없어서 난 아직 명함을 만들지 못한다. 교사로서 나의 목표를 향한 오늘의 노력, 발전이 보이지 않는 진부한 과정과 결과, 그것이 교사인 내가 걷고 있는 매일매일의 일상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