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선생님, 선생님도 수년간 역사를 가르치신 경험을 통하여 느끼신 것들이 많지요. 그래서 가르칠 것이 많아 수업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지신 적은 없는지요? 제가 잘 아는 한 교수님은 자신이 8·15 때 짚신을 신고 6·25 때 거리에서 땅콩을 팔았다고 합니다. 이런 경험으로 보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천지개벽에 가까울 정도로 물질적인 진보를 이뤘습니다. 특히 경제 발전과 민주화의 진전은 기적처럼 보이지만, 이런 배경에는 전통적 선비문화의 잠재력이 서양문화와 접목된 결과라고 평가하더군요.
그리고 치열한 교육열, 근면성, 홍익인간의 공동체 정신과 애국심, 신바람의 역동성을 가진 우리 국민의 승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광복 70년은 자랑스러운 성공의 역사이지만, 미완성의 과제가 남아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역사의 광복, 일본의 군국주의 행보, 남북 분단과 심각한 사회 갈등이라고 지적합니다.
역사의 광복은 ‘광복’의 뜻에 맞게 역사를 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지요. 광복은 ‘해방’과 다릅니다. 일제와 봉건제에서 동시에 벗어나서 사회주의로 가는 것이 해방이라면 광복은 주권 회복뿐만 아니라 식민사관과 일제 잔재를 극복하여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하자는 뜻인데 ‘국호’(대한민국), ‘국기’(태극기)에서는 광복이 이루어졌으나 식민사관의 극복은 아직도 요원합니다.
‘대한’은 최초의 근대국가 대한제국이 삼국의 영토를 통합한 대국을 세운다는 뜻이고, ‘민국’은 조선 후기부터 양반국가를 백성국가로 바꾼다는 것으로, 대한제국이 이를 계승하여 국가 목표로 삼았습니다. ‘태극기’도 조선시대 국가를 상징하던 깃발을 개화기와 대한제국에서 국기로 정했다. 3·1운동 때 온 국민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 독립’을 외친 이유가 여기에 있었고, 임시정부의 국호가 ‘대한민국’이 된 것도 그 전통을 계승한 것이며, 이를 다시 계승한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이지요.
대한민국의 국시에는 이런 정통성이 담겨 있고, 자유민주주의에 홍익인간 이념을 접목시켰습니다. 한국은 유엔에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받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광복의 큰 뜻을 모르고, 아직도 식민사관을 따라 망국 이전의 역사를 부끄럽게 여기고 일본이 은혜를 베푼 것처럼 오해하거나 전통을 봉건적 잔재로 치부하고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근현대사를 마치 반동의 역사인 양 바라보는 일부의 시각은 모두 광복의 참뜻을 모르는 잘못된 역사인식이라 생각합니다.
과거의 침략을 애써 외면하고 군국주의로 치닫고 있는 일본의 행보는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평화를 뒤흔들 핵폭탄 이상의 위험성을 띠고 있습니다. 진정 평화와 인권과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시대착오적 행보를 어떤 이유로든 용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일본 군국주의는 뿌리 깊은 ‘칼 문화’에서 연유하므로 나치보다도 위험하고 지속적임을 세계인들은 알아야 합니다. 다만, 선량한 일본 국민과의 교류는 더욱 활성화할 필요가 있기에 교육을 통한 민간교류가 중요합니다.
남북 분단의 근본 원인도 일제의 지배가 제공한 것이지만,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민족적 불행이요, 수치입니다. 통일의 큰 길은 남북이 모두 변화하는 것인데, 북한은 경제와 인권의 낙후성에서 이미 체제의 정당성을 잃었습니다. 핵무기를 내려놓고 중국 수준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남한과 손잡고 민족공동체의 행복을 추구하는 큰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수준에서 북한보다 월등한 경제력을 가진 남한의 행보도 장밋빛만은 아니지요. 심화되어 가는 계층 갈등과 지역 갈등에다 지도층의 도덕적 불감증이 위험 수위를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정치는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미리 갈등요인을 찾아 예방하지 못하니 문제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 밖에는 전쟁터 같은 증오와 욕설과 폭력이 범벅이 되어 난장판이네요. 무엇보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것은 민주주의 후진국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부과된 최대의 과업은 분단된 조국의 통일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민주주의가 성숙되어야 합니다.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가 되지 못하면 힘 없는 사람들이 살기 어렵습니다. 이를 위해 지도자와 시민간의 소통, 통합, 도덕성은 민주주의의 필수요건인데, 이 문제를 외면하면 통일의 동력도 힘을 잃을 것 입니다. 모든 변화는 우리가 먼저 하는 것이 순서라 생각합니다. 내 몸이 건강해야 남을 걱정하고 탓할 수 있지요. 통일된 한국이 이웃 나라와 평화와 행복을 함께 나눌 때 광복은 완성될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