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야, 내 모습이 10년 후, 아니 40년 후에는 어떻게 될까? 이를 생각해 보면 다소 겁이 나기도 할 것이다. 네가 만일 장군 옷을 입고 길거리에 나가 본다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그리고 만일 노숙자의 옷을 입고 나간다면... 그리고 지금이라도 노숙자가 나에게 스마트폰을 빌려달라고 요청한다면... 우리는 인간을 판단할 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가정에서, 학교에서 열심히 배웠다. 그러나 현실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세상이다. 냉엄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역시 겉모습도 단정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학교에서는 외모도 바르게 갖도록 복장지도를 하는 것이다.
노숙자와 장군의 옷은 실험으로는 쉽게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항상 입어야 하는 옷이 있다. 장군은 일터에서 장군의 옷을 입을 것이고, 노숙자는 노숙자에 적합한 옷을 입고 있을 것이다. 적절한 나이가 되면 자기의 옷을 입어야 하는 세상이다.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물론 쓰러진 노숙자를 구하기 위하여 시민들이 의식을 바꿔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는 시민의식 부족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우리는 모두 노숙자의 삶에 동정은 표할 수 있지만 내가 노숙자가 되는 현실은 극히 싫어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만일 내 친척 가운데 노숙자가 있다면 그것도 매우 안타깝다. 조금 넓게 보면 우리 주변의 모든 노숙자들도 우리 동포요, 우리 민족이다. 그러나 모두가 이를 도와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이다. 우리나라도 지구상에서는 상당히 잘 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아직도 노숙자는 많이 있다. 우리나라 보다 선진국인 일본, 미국에도 노숙자는 존재하고 있다. 이처럼 가난의 문제는 국가가 완전히 해결하여 주는 것이 바람직하나 모두 다 해결하여 주는 것은 아니다. 아마 복지가 발달한 덴마크나 스웨덴 등은 없을 것도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런 나가가 되는 것이 최고의 목표이다.
우리는 지난 수업시간에 이와 관련된 영상을 봤다. 이런 학습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장래가 왕 대접은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노숙자가 되어 있는 모습은 생각하기도 싫다. 그러나 사람이 생각하지 싫다고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사업에 망하고 현실에 적응을 못하면 순식간에 사람은 이런 상황에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다 좋은 지위를 얻기 위하여 많은 돈을 들여 공부도 하고 시간을 쪼개어 노력을 하고 있다. 차별이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장군과 노숙자의 영상을 본 학생들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자신이 남으로부터 차별받지 않도록 자신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고,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차별하는 세상은 우리가 원한 세상도 아니다. 이 세상에는 출세하지 못한 사람, 실패한 사람도 많다. 이들에게도 인간답게 살아갈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다. 연말을 맞이하여 이런 사람을 돕기 위하여 성금을 내자고 하면 이런 마음에서 우러나와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우리는 오늘도 생각을 집중하고 시간을 아껴 함께 공부하는 것이고 공부에 집중을 하지 않은 학생을 선생님이 나무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단다. 성금을 내자고 하면 마음에서 우러나와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밝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우리는 오늘도 생각을 집중하고 시간을 아껴 함께 공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