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변화가 무쌍하다. 이런 세상에서 어떤 것을 붙들어야 좋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이 옳은가 생각하고 쫒아갔더니 금방 지나가 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것이 나타나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뿌리 깊은 지식을 찾아야 하는가, 아니면 넓고 얕은 지식을 따라가야 하는가 헷갈리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책을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100% 무명작가였던 채성호가 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지난해 인문학 열풍을 타고 70만 부 가까이 팔렸다고 한다. 2015 종합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 그의 생각을 들여다 보았다.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책이다.
신간 '시민의 교양'도 기세를 이어 가고 있다. 두 책 모두 이 시대를 떠받치는 사회 구조를 들춰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제목 그대로 ‘좁고 깊은’ 전문 지식이 아닌, ‘넓고 얕은’ 교양을 담고 있다. 역사부터 예술까지 인간사의 ‘거의 모든 것’을 굴비 엮듯 술술 풀어 나간다. 옆 사람에게 얘기하는 듯한 대화체도 부담 없다. 그는 “살은 발라내고 뼈대만 간추렸다”고 말했다. ‘지금, 여기, 보통 사람을 위한 현실인문학’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 작가는 “공부와 거리가 멀었다. 고등학교 때 문과 290명 가운데 280등쯤 했다니 말이다. 수학 점수는 최악이었으며, 초·중·고 내내 ‘꾸준히’ 공부를 못했다. 그러다 고2 때 시를 알게 됐다. 시를 쓰는 친구가 멋져 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바로 문예반에 들어갔다. ‘시는 어떻게 쓰는가?’부터 배웠다. 쓰고 쓰다 보니 백일장 장원도 여러 차례 했다.”고 자랑을 한다.
이후 그는 문학을 더 배우고 싶었다. 고3 때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정도였다고 한다. 평소 학습량이 적어 재수를 했다. 친구들은 장난삼아 ‘너는 머리가 새것이라 대학에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학 전고에서는 흥미를 잃었다. 그래서 철학을 복수전공 했다. 그는 3학년 때 학사장교(포병) 입대를 결정했으나 군대에 가기 전까지 시간이 많았다.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살았다. 책만 파고들었다.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는데, 그때까지 ‘말도 안 돼’라며 무시했던 불교·이슬람에서 시작해 정치·경제·예술·과학 등으로 독서 폭을 넓혀 갔다. 평소 몰랐던, 불편해 했던 책을 주로 골라 읽었다. 새 세상과 만났다. 그는 책을 읽으면서 저마다 논리가 탄탄한 것을 발견했다.
그는 고교 시절 시작(詩作)이 큰 도움이 됐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를 쓸수록 동시에 끌렸는데, 동시는 적은 단어로 의미를 전해야 한다. 불필요한 수식어구를 배제해야 한다. 글을 쓸 때 가장 힘든 게 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말하지 않는 거다. 그래야 간결 명료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가르쳐주는 것은 첫째로 학교 성적은 말이 아니었지만 의미있는 인생을 엮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패도 많이 맛보았지만 결고 좌절하지 않고 재수를 통하여 자신의 길을 갔다. 가장 변화를 이끈 것은 아마도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살면서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면서 자신만의 삶의 논리를 발견한 것이라 생각하여 본다. 그리고 단순하게 가르쳐 준 지식만을 배우려 한 것이 아니라 시작(詩作)을 통하여 자신을 만들어 간 것이다. 그 역시 군에서 제대 후에 먹고 살아야 했다. 대입 논술 강사, 화장품 회사 창업, 온라인 쇼핑몰 운영 등을 했다. 주식 전업투자자 생활도 했다. 돈만 아는 유물론자처럼 살았다. 큰돈은 아니지만 벌고 싶었던 만큼 벌었다. 그러나 돈이 문제를 해결하여 준 것은 아니다.
그는 2011년 제주도 여행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동료 둘이 죽고, 한 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고 후 전혀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잠자리에서도 죽은 이들이 내 옆에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다니..... 불안과 환상에 시달렸다. 정신과 치료도 1년 받았다. 그간 해온 일을 모두 접었다. 견고하고 안정된 세계를 찾고 싶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땅이 어떤 곳인지,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정리해 보았다. 2주 정도 걸려 정리한 것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다. 오늘을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