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형, 갑작스런 지진으로 일본 구마모토가 적이 없는 전쟁을 치루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말로 위로를 하여야 할 것인지 몰라 머릿속이 하얗게 된 느낌입니다. 특히, 구마모토시는 제가 3년 반 동안 아이들과 생활을 하였고 동포들을 돌아보면서 인연을 가진 분들이 많은 곳이랍니다.
5년 전 동일본 대지진으로 1만8000여 명이 희생되자 한국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근무한 광양의 중학교에서도 학생들이 " 힘 내, 빨리 회복되기를!" 내용을 담은 위로의 편지를 써 피해지 학생들에게 보내기도 하였으며, 과거는 과거고 인간적으로 일본을 돕자”는 글이 인터넷을 뒤덮더니 삽시간에 적십자에만 성금 456억원이 모였습니다.
이보다 5배 가까운 8만7000여 명이 희생된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때 걷힌 돈은 46억원이었답니다. 그러고 보면 동일본 대지진 때가 10배 가량 모인 셈이지요. 한국인의 중국 선호도가 일본보다 약간 높던 때였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요. 이는 한·일 간 애증 관계 탓이라는 게 전문가 진단입니다. 애증은 친밀감을 주는 상대가 섭섭하게 굴면 생기는 감정이지요. 이럴 경우 상대가 잘되면 밉지만 너무 잘못되면 애정이 튀어나오게 됩니다. 옛 애인이 성공하면 배 아프지만 불행해지면 동정심이 샘솟는 이치와 마찬가지이지요.
지금은 어딜 가도 일본 요리, 만화가 넘치는 한국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대일 거부감이 강해도 한국인의 의식 속에는 “좋은 점도 많은 친숙한 나라”란 인식도 공존하는게 현실입니다. 대지진 때는 이런 애증의 메커니즘이 작동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랬던 민심이 이번 구마모토 강진 때는 변한 것 같습니다. 이는 애증 속에서 사랑이 증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번에는 “모금이고 나발이고 10원짜리도 주면 안 된다”는 모진 글도 보입니다. 정 많은 한국인이 왜 이리 됐는지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결코 양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염려가 됩니다.
하지만 이같은 책임은 양국 정치 지도자들에게 있다고 봅니다. 대지진 당시 일본 민주당 정권은 이웃과의 화해에 애쓴 결과, 2011년 일본에 대한 “호감을 느낀다”(41%)와 “느끼지 않는다”(44%)고 답한 한국인 비율은 비슷했습니다. 반면 아베 정권의 과거사 수정이 본격화된 지난해에는 비호감(74%)이 호감(17%)의 4.4배로 나타났습니다. 박근혜 정부도 한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대일 외교도 없다”는 입장을 고집해 양국 관계를 경색시켰습니다.
더 큰 악재는 구마모토 지진 발생 후에 “한국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헛소문이 일본 SNS에 번졌다는 뉴스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15만여 명이 희생된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똑같은 소문이 퍼져 한국인 6000여 명이 학살됐던 참담한 기억이 민심을 자극했다고도 봅니다. 사연 모르는 일본인이라면 한국인의 분노를 이해 못할 것입니다. 동북아역사재단에 따르면 일본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는 관동대지진 때의 한국인 피해를 희석시키는 쪽으로 개편 중이라 하니 더욱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이런 추세라면 서로 간의 무지와 오해는 확대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하여 누가 앞장 설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올바른 생각을 가진 민간인의 한·일 가교 역할이 중요한 때입니다. 양국이 서로 양국민의 감정을 이해하고 자연으로 인한 지진 피해 복구에 국경을 넘어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평상시에 한일 양국민의 마음을 자극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노력이 한층 필요한 시점이며, 국경을 넘어 인류공동체로 살아가는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양국 시민들이 배움을 시작하여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