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시간의 비행 끝에 맞은 지구 반대편은 아직 일요일 오전이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허드슨 강을 가로지르는 해저터널 2.2㎞ 통과하여 뉴욕 맨해튼에 진입한다. 거대한 빌딩 숲 맨해튼의 차량 이동은 동서(STREET)와 남북(AVENUE)으로 모두 일방통행이다. 그리고 블록으로 나누어지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틈이 없다. 앞을 내다보며 건설된 도시만큼 규칙과 질서가 있으며 상하수관도 모두 동으로 되어 식수 오염은 걱정이 없다고 한다. 또한, 영화 ‘나 홀로 집에 2’의 촬영지며 650만 마리의 반려견이 함께 사는 만큼 길거리에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이 종종 눈에 띈다.
빌딩 숲 사이에 정차한다. 첫 식사자리인데 낯섦과 함께 찾아온 13시간 시차가 음식 맛도 느끼기 어렵게 한다. 조금 빨리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와 시선을 80도로 높인다. 고층건물이 즐비한 만큼 하늘을 보려면 고개를 드는 수밖에 없다. 오가는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과 패션 속에 선 또 다른 이방인을 보며 정말 타국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오후 2시 빼곡한 빌딩 숲 사이에 있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도착한다. 뉴욕현대미술관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이르는 13만 점의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지하 1층부터 지상 6층까지 전시하고 있는데 5층의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이미 알고 있는 작품이라 그 진품을 보기 위해 발길을 옮긴다. 하지만 미술작품 감상에 무식쟁이인지라 전시관만 기웃거린다. 다행히 고흐, 피카소, 마네, 모네의 작품은 구분할 수 있다. 특히 추상파 작품을 보면서 그 작품 세계를 이해하려면 작가의 처지에서 보는 제3의 마음의 눈이 필요함을 알게 된다. 이는 난해함을 자랑하는 현대 시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과 같은 형태이다.
장시간 비행과 시차가 피곤함과 함께 외로움으로 몰려온다. 냉방 속에 너무 오래 있었는지 몸이 지친다. 잠시 1층 바깥 ‘애비 알드리치 록펠러 조각공원’으로 나온다. 말이 공원이지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에 인공적으로 만든 분수와 나무, 유리창에 반사된 열기, 조형물, 휴식을 취하는 사람뿐이다. 다리도 쉴 겸 잠시 앉은 의자에서 눈을 감는다. 잠깐의 휴식이 생기를 준다.
다시 몸을 일으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으로 향한다. 이 건물은 1929년 기공식을 통해 공사를 시작하여 2년 뒤인 1931년에 공사를 마쳤으며, 1953년 최종적으로 안테나 탑이 설치되어 전체 높이는 443m이다. 그리고 약 41년 동안 세계 최고층 마천루 자리를 지켰지만, 그동안 많은 고층 빌딩이 세워져 3번째로 높은 마천루가 되었다. 하지만 2001년 9·11 테러로 세계 무역 센터가 파괴되자 다시 2012년까지는 뉴욕 시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2013년 신세계무역센터 프리덤 타워가 541m로 공사가 완료되어 뉴욕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빌딩이 되었다. 이 건물은 완공 당시만 해도 명성을 얻지 못했는데 영화 킹콩이 촬영되어 개봉된 이후 뉴욕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한다.
빌딩 전망대로 가는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86층 전망대에 도착한다. 추락방지를 위한 보호 창살 사이로 맨해튼 중심부와 뉴욕시가 눈에 들어온다. 기다랗고 다양한 모습과 색을 가진 직육면체 블록을 이곳저곳에 세워놓은 맨해튼 중심부. 그리고 빌딩 사이로 일정한 구획을 나누어 난 길에 개미처럼 보이는 자동차의 움직임이 혈관을 타고 움직이는 혈구 같다. 우주의 먼지보다 작은 인간이 기계와 도구를 사용하는 호모사피엔스의 기술력으로 이 거대한 빌딩 숲을 만들어 낸 것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전망대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환상의 표정을 지으며 기념촬영에 바쁘다. 하지만 눈은 계속 9.11테러 당시 건물이 있었던 세계무역센터 자리로 향한다. 그 당시 방송을 통해서 생중계된 처참한 광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 아픔을 알고 있을까? 창조와 파괴, 선과 악의 두 모습이 존재하는 인간의 마음을 아쉽게 관조해 본다.
마천루에서 내려와 다시 인파로 분비는 맨해튼 도심을 걸어 저녁식사장소로 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동차 행렬, 관광을 유도하는 호객꾼 여느 도시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런데 많은 차량이 다니지만 버스를 제외한 모든 자동차는 휘발유만 사용하는 것과 지리적으로 바다를 낀 평지여서 공기 이동이 원활하여 미세먼지가 적은 쾌적한 도심을 유지하고 있다. 저녁은 김치찌개에 라면 사리가 곁들인 부대찌개 형태이다. 우리의 전통 김치찌개와 비교할 수 없는 맛이다.
긴 하루의 일정을 접고 숙소로 향한다. 어두워지는 뉴욕시의 하늘, 맨해튼의 마천루를 밝히는 조명을 뒤로 뉴저지 주로 들어간다. 맨해튼의 높은 건물 숲과 수많은 인파와 자동차 행렬이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그리고 무너져간 세계무역센터의 모습이 어둠이 스크린으로 된 하늘에 생생한 눈물로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