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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교육과 솔로몬의 지혜

박삼서 | 교육인적자원부 장학관


서울대는 2004학년도 1학기 대학국어 수강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자어 기초 실력 평가 결과 50점 미만이 60%가 된다고 발표했다. 중·고등학교 교육과정 상 한문과목이 개설되어 학교에서 한자, 한문교육을 하는데도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것은 일면 한글전용화란 시대의 추세를 실감하게 하는 단면이라고도 하겠다.
우리에게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문자환경의 특수성이 있다. 한글창제 이후에도 양반층에서는 여전히 주된 기록의 도구로 한자를 사용하였으며, 갑오경장에 이르러 정책적 배려로 한글을 장려함에 따라 사용이 역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광복 이후 일제시대 우리말 압박에 대한 반작용으로 한글사랑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 한글전용화는 법률적 뒷받침을 받게 되었다.
65년부터 교과서에 한자를 혼용하기도 했지만, 68년 한글날에 특별 담화로 대통령이 한글전용 촉진 7개항을 지시하여 교과서를 한글전용으로 개편하는 등 70년도부터 한글전용은 탄력을 받게 되었다. 병행하여 72년에는 중·고등학교에 한문교과를 필수로 신설하고, 한문교육용 1800자를 제정하여 한자·한문 교육을 독립하여 도맡도록 하였다. 75년도부터 국어 교과서를 중심으로 한자를 다시 병기하였으며, 제6차와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한문이 과정별 필수나 선택과목으로 되었으나 한자·한문 교육은 정책적으로 그 의미가 약화되지는 않았다.
그 동안, 한글전용 정책을 무리없이 정착시키면서 문자생활에 취약점을 상보하는 차원에서 한자, 한문 교육이 이루어져 왔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한글전용이나 한자를 본격적으로 가르치자는 국한혼용이라는 대립되는 주장의 양상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현재로서는 입시에 한자 문제가 출제되지 않아 한자교육에 관심이 없고, 한자 실력이 떨어진다는 현실적인 진단과 해결 방법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자존심은 우리말에 대한 자존심과 다르지 않으므로 이 시점에서 민족의 생존과 결부하여 우리말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고, 미래 지향적인 정책설계에 다음 몇 가지를 고려하여 한자교육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한글전용과 국한혼용 모두 자기 주장의 논리에 상대의 것을 흡인하려고만 하지 말고 거시적 차원에서 그 간극을 좁혀야 한다. 우리말이 가지는 두 가지 특장(特長), 즉 표음적 자질과 표의적 자질을 어떻게 조화시켜 교육의 장으로 수렴시킬 수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둘째로, 한자교육을 국어교육에서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가는 좀더 세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한자는 ‘분해적 연관어 학습’으로 어휘력을 효율적으로 신장시키는 데에는 유용하다. 그러나 어휘교육이 국어교육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국어교육의 본질을 해명하는 차원에서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셋째로,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이 실시되면 만사가 해결된다는 인식에 변화가 필요하다. 아동의 인지발달과 지식 수용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한자교육이 또 다른 소질의 계발(啓發)을 가로막거나 짐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의의 장을 초등학교로 좁혀 놓으면 해결의 실마리는 멀어 보인다.
넷째로, 학습자 스스로의 학습 열망과 함께 한자교육과 한문교육을 구분하여 현안 문자교육 정책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자교육, 한문교육을 동시에 해결하려 하면, 현안으로 대두한 문제의 원천적 해결 방법이 서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한자교육의 관심 못지 않게 한글의 세계화에도 힘써야 한다. 한글은 소리글로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므로 한자교육은 한글의 세계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상보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PAGE BREAK]한글전용이 우리 민족의 궁극적 이상이긴 하나, 급작스런 한글전용 강행은 문화적 단절과 국론의 분열을 가져올 우려가 많다. 모든 문화현상은 점진적, 단계적으로 발전·개선되어야 전통의 단절을 피할 수 있다. 따라서 한글전용의 실현은 장기적,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같은 맥락에서 새로운 세기에는 한자·한문 교육도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①한자·한문교육에 적합한 교수-학습의 개발과 적용 ②새로운 평가 도구의 개발과 수행 ③사회변화에 부합하는 교과서 개발 ④학교교육에서 사회교육에로의 시야 확대 ⑤문화교육, 정체성 교육의 가시화 등에 대하여 새로운 발상과 바람을 불어넣어야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고 공부하리라고 본다.
교육의 문제는 흑백 논리로 접근하면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네가 있으니 내가 있고, 내가 없으면 너도 없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에서 한자교육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21세기에는 민족의 궁극적 이상을 실현하고 한글전용과 국한혼용 양자의 장점을 모두 살릴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때임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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