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총액 제한 제도 혹은 출자총액 규제란 재벌 소속 기업이 그룹 내 다른 계열사에 출자하는 규모에 법적 제한을 두는 제도다. 대기업 집단에 소속한 회사가 같은 대기업 집단에 소속을 두는 다른 계열사의 주식을 사들이는 형태로 출자할 경우 주식 매수액에 공정거래법상 한도를 둔다.
대기업에 대한 출자총액 규제 완화 및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재연되면서 출자총액 제한제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재정경제부가 최근 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위해 출자총액 제한제를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데다 재계도 출자총액 제한제 폐지를 거듭 요구하는 등 주무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2일 재경부·공정위와 재계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기업의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출자총액 제한제의 현 틀을 유지하되, 3년 뒤 재벌의 투명경영 성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폐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는 태세다. 출자총액 제한제는 재벌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기 위해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에 속한 회사가 순자산의 25%를 초과해 다른 국내 회사의 주식을 취득·보유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제도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1일 공정위 창립 23주년 기념사에서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의 원칙과 일정에 따라 일관성 있게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며 출자총액제를 고수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재경부는 그러나 출자총액 규제가 기업의 투자를 막고 있다는 재계의 주장을 수용, 출자총액제 적용을 받지 않는 예외 부문을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는 입장이어서 공정위와의 기(氣)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이헌재 부총리겸 재경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10대 신성장동력산업 등에 대한 출자총액제 예외 인정 등을 발표하면서 출자총액제가 기업의 실질적인 투자 활성화에 제약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이동규 공정위 독점국장은 “공정위도 투명하고 공정한 기업 지배구조 시스템 마련을 위한 출자총액제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기업의 투자 활동에 최대한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창용(경제학) 서울대 교수는 “출자총액제는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을 규제할 것인지,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 부담을 완화해 줘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를 놓고 정부가 선택할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공정위는 1일 대우건설·신세계·LG전선을 새로 출자총액규제 기업집단에 포함하고, 외국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GM대우를 계열사간 상호출자와 채무보증이 금지되는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문화일보> 2004년 4월 2일 [PAGE BREAK]출자총액 제한 제도란
출자총액 제한 제도 혹은 출자총액 규제란 재벌 소속 기업이 그룹 내 다른 계열사에 출자하는 규모에 법적 제한을 두는 제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재벌은 속칭이고 공식 명칭은 대규모 기업 집단이다. 대기업 집단에 소속한 회사가 같은 대기업 집단에 소속을 두는 다른 계열사의 주식을 사들이는 형태로 출자할 경우 주식 매수액에 공정거래법상 한도를 둔다.
이 제도는 자산 총액이 5조 원 이상 되는 규모의 재벌 계열사에만 적용된다. 해당 기업들은 다른 계열사에 대한 출자액 합계가 자사 순자산 규모의 25%를 넘으면 안 된다. 여기서 순자산이란 기업의 직전 사업연도 말 자산 총액에서 부채 총액과 계열사로부터 출자받은 부분을 뺀 금액이다. 순자산 계산은 장부가액 곧 시가가 아닌 취득가로 한다.
예를 들어 순자산이 1천억 원인 어느 재벌 계열 기업이 계열사를 5개 거느리고 있다 하자. 이들 5개 계열사에 대한 이 회사의 출자액은 총계로 따져 회사 순자산의 25%인 250억 원을 넘을 수 없다. 이 규제를 어기면 공정거래법상 초과 주식 보유액의 10% 범위 안에서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단, 계열사가 아닌 다른 회사의 주식을 투자 목적으로 소유하는 경우는 예외다. 출자총액제한 제도가 적용되는 대기업 집단은 매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해 발표한다. 올해 4월 1일 새로 지정된 곳은 삼성, 엘지, 현대자동차 등 18개. 소속 계열사 수는 모두 378개다.
재벌의 출자를 규제하는 이유는
재벌 기업의 그룹 내 출자를 규제하는 이유는 뭘까? 재벌 계열사간 출자가 너무 많아지면 국민경제에 문제가 생긴다고 보기 때문이다. 재벌의 계열사간 출자는 여러 형태가 있다. 가장 흔한 형태는 순환출자다. 기업 A의 대주주가 은행에서 자금을 빌려 마련한 돈으로 B사를 세운다. B사도 비슷한 방식으로 돈을 마련해 C사를 세우고, C사도 같은 식으로 A사에 출자한다. 이런 식으로 꼬리를 물고 출자를 되풀이하다 보면 A, B, C사 모두 자본금 규모가 부풀어 오른다. 그런데 이렇게 불어나는 자본금은 실은 부채가 순환출자를 통해 자본금으로 둔갑한 것이다. 장부상 자본금이 불어나기는 하나 실은 가공으로 부풀어, 그룹 전체에 가공자본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기업은 모두 전보다 자본금이 불어나는 데다 그 덕으로 부채비율까지 낮아져 겉보기에 재무구조가 건전해지는 효과를 본다. 부채비율은 자기자본 금액에 비해 부채액이 얼마나 큰지 비교해 산출하는데 자기자본이 불어나면 부채비율은 낮아지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이렇게 불어난 자본금 규모와 낮아진 부채비율로 건전성 외모가 개선된 장부를 내밀고 은행에서 융자를 더 받거나 회사채 발행 한도를 늘릴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더욱 순환출자를 늘릴 수 있고, 결과적으로 가공자본은 한층 부풀어오른다.
그룹 총수는 이런 순환출자를 통해 계열사도 늘리고 여러 업종으로 문어발식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 많은 계열사를 하나로 결속시킬 수 있고, 순환출자망을 통해 주요 회사 지분만 갖고도 수십 개씩 되는 계열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문제는 순환출자가 출자 관계에 있는 회사들 전체를 부실하게 만들기 쉽다는 데 있다. 순환출자 관계에 있는 기업들은 모두 가공으로 자기자본을 부풀리고 은행 차입을 늘린다. 때문에 실질 부채 규모가 외양보다 크고 그만큼 경영 환경의 부침에 따라 부실해지기 쉽다. 게다가 그룹 내 출자관계에 있는 회사 중 일부가 영업을 잘 못해 이익도 못 내고 빚도 제대로 갚지 못해 부실해지면 출자관계로 맞물려 있는 다른 계열사들까지 꼬리를 물고 부실해지기 십상이다.
[PAGE BREAK]이런 취약점은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집중적으로 드러났다. 외환위기 전만 해도 국내 재벌들은 순환출자로 그룹의 자본 규모를 부풀리고 그룹 내 일부 기업이 부실해지면 오히려 무리하게 빚을 져가면서 순환출자를 늘려 부실을 메우고 경쟁력 없는 계열사를 유지시켰다. 개별 회사의 부실을 전체의 부실로 확산시키는 잘못된 경영을 한 것이다. 그러다가 그룹 계열사 전체가 부실해져 결국은 여러 그룹이 일시에 꼬리를 물듯 무너졌고 국민경제에 큰 피해를 끼쳤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이처럼 재벌의 문어발식 계열사 출자가 문제를 안고 있으므로 지나친 그룹 내 출자를 규제하려는 뜻에서 도입됐다. 재벌들이 계열사 출자를 많이 할수록 출자 총액이 자꾸 늘어날 테니 출자총액을 제한해 과도한 그룹 내 출자를 억제하자는 취지다.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87년 출자총액 한도는 순자산의 40%였다. 그러다가 95년 순자산의 25%로 규제가 강화됐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초에는 적대적 M&A(인수합병)가 제도적으로 허용되면서 기업들이 적대적 M&A에 대응해 경영권을 방어할 수단으로 그룹 내 출자가 필요하다는 뜻에서 제도를 잠시 중단했다. 그러나 이후 적대적 인수합병은 한 건도 일어나지 않고 대기업의 계열사 출자만 늘어났다. 그래서 99년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면서 제도를 부활, 2002년 4월부터 다시 시행하고 있다.
규제 강화냐 완화냐 계속 논란중
출자총액 규제는 제도가 만들어진 이래 존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기업 등 재계와 시민단체, 정부 사이에 제도의 존폐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규제에 예외를 두는 폭도 갈수록 넓어지는 추세다. 이 제도의 존폐 논란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재계가 제도 폐지를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는 출자총액 규제가 폐지하거나 완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출자총액 규제는 기업의 운신 폭을 좁히고 투자 의욕을 떨어뜨리며 신규 사업 진출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출자총액 규제는 요즘 같은 글로벌 경쟁 시대에 우리 나라에만 있는 제도로, 국내기업에만 적용되는 역차별성이 강하고, 투자에 관련된 규제를 완화하는 세계적 추세와도 배치되는 제도라고 본다. 국내 기업들만 출자총액을 제한하는 바람에 우리 기업들이 외국의 적대적 M&A에 노출되는 경향도 강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펴면서 경제 5단체는 지난 4월 1일 정부에 출자총액 규제 조기 폐지를 골자로 하는 43건의 규제 완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재계는 특히 올해 작심하기라도 한 듯 동시다발적으로 출자총액 규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은 경기 침체가 오래 지속되고 있는 데다 청년 실업 문제가 악화일로여서 일자리 창출의 필요성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니 이 참에 출자총액 규제를 폐지하자는 의도가 엿보인다.
반면 시민단체와 공정거래위 등 정부 일각에서는 출자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하기는 아직 이르다며 반대한다. 국내 재벌 그룹에는 그룹 총수가 그룹 전체를 선단처럼 이끌며 경영을 전횡하는 낙후한 기업지배구조가 온존되어 있는데, 이런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재벌의 그룹 내 출자가 지난 외환위기 때처럼 부실 경영과 국민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규제 완화는커녕 그나마 존재하는 규제도 예외를 폭 넓게 인정하는 추세라서 오히려 제한을 강화해야 할 지경이라는 주장이다.
출자총액 규제가 국내기업만 대상으로 제재한다는 재계의 역차별 주장도 반박한다. 강철규 공정위원장은 지난 4월 8일 연세대 법무대학원 특강에서 외국기업이라도 국내에서 대기업 집단을 형성하고 자산 규모가 관련법에서 정한 규모에 해당되면 출자총액 규제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외국계자본인 GM대우 그룹도 올해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되어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규제를 받고 있으니, 역차별이 아니라는 증거로 충분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출자총액 규제가 기업 투자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재계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는 게 공정거래위의 주장이다. 투자로 연결될 수 있는 신설회사 출자는 대부분 출자총액 규제 제도에서 적용 제외나 예외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PAGE BREAK]재계와 공정위간 입장이 다르지만, 학계의 평가로는 출자총액 규제가 기업 투자에 장애가 된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쪽이 우세하다. 그러나 여하튼 출자총액 규제를 둘러싼 찬반론이 가열되면서 정부 입장이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로서는 투자 촉진과 기업개혁의 동시 추진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 부처간 시각차가 드러나기도 한다.
대체로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는 기업의 투자를 조장해야 하는 부처인 만큼 출자규제가 기업의 투자를 제약하지 않아야 한다는 식의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에 비해 공정거래위는 출자와 투자는 다르며 출자총액 규제가 투자에 걸림돌이 될 것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